1899년 12월 20일 남웨일즈에서 태어나서 1981년 3월 1일 세상을 떠나 “활짝 열린 문을 통해” 천국에 입성한 데이비드 마틴 로이드 존스는 사역 당시 “영어권 강단에서 최대의 강해설교자”(윌버 스미스 교수)라고 불리웠고 그의 설교는 “개혁주의 설교의 극치”(에밀 부룬너 교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목회사역 시작부터 특별한 성령의 기름부음이 함께했기에 그 실상을 살펴보고 오늘 우리에게 주는 도전을 나누고자 한다.

 

어려운 시대에 시작한 목회의 길
그는 본래 의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27세 때 목회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다. 25세의 젊은 나이로 영국 왕립의학회 회원이 되었고 당대의 유명한 왕실 주치의로 알려진 호오더 경에 의해서 조수로 발탁되어 앞날이 보장된 젊은이였으나 1년 6개월의 고민 끝에 저항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으로 목회를 시작했다. 정식 신학 교육을 받지 않은 채 같은 내과 의사였던 아내 베탄과 함께 고향 남웨일즈 탈보트 항구의 아베라본에 있는 베들레헴 전진장로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당시는 소위 세계 제1차 공황기로 알려진 어려운 시기였고 아베라본은 가난한 탄광도시요 항구도시였다.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실직 상태에 있었고 제대로 차린 식탁을 대했다는 것은 화제가 될 만큼 어려운 시대였다. 게다가 영적인 기류도, 한때 왕성했던 칼빈주의적인 분위기는 쇠퇴한 지 오래였고 당시는 구 낙천적 자유주의가 판을 치고 있었다. 그러므로 첫 목회를 시작하는 그는 ‘때를 잘못 알고 태어난’ 사람 취급을 당해야 했다.

 

진리로 새롭게 소생되는 교회
그러나 그가 부임한 즉시 웨일즈의 베들레헴 전진교회는 ‘부흥’하기 시작했다. “부흥이란 성령께서 비상하게 역사하실 때 교회의 생활 속에서 체험되는 것”이라는 정의에 따라서 평가해도 그것은 부흥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련의 현상들이 있었다. 로이드 존스는 부흥이란 신자들의 소생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부흥이란 거의 죽어가는 무력한 교회가 깨어나며 활기를 되찾고 생명의 기운이 소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거의 죽어가던 성도들에게 성령의 능력이 어느 날 갑자기 임하여 머리로만 믿던 진리를 새롭게 깨닫게 되며, 겸손해지며, 죄를 통회하며, 자신들의 상태를 보고 두려워하게 되며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역사 앞에 자신을 내어맡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새로운 생명의 힘을 얻게 된 결과로, 성도들은 기도하기 시작하고 목사들은 능력 있는 설교를 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며 이제까지 교회 밖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회심하게 되는 것을 부흥의 양대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로이드 존스 자신의 정의와 설명에 따라 살펴보면 그의 첫 사역지 아베라본의 그 교회는 사역 초기부터 부흥을 경험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설교에 대한 분명한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몇 개월이 지나서였고 그때부터 서서히 성도들의 숫자가 늘기 시작하여 교회가 세워진 지 일 년 반이 되었을 때는 중이층 좌석까지 사용하게 되었다. 교회 내에 있는 이름뿐인 신자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된 사람들 중에는 로이드 존스를 청빙하는 일에 앞장섰던 장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그 교회의 서기였고 사회주의에 심취한 노동당원이기도 했다. 그 나름대로 복음적인 교회원으로 자처했으나 개인의 중생만으로는 하나님의 나라가 올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들으면서 자기 생각에 대한 의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더 이상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에 설 수 없어서 노동당을 떠났다. 이제 더 넓고 영광스런 사상의 지평을 가지게 되고 로이드 존스 부임 8개월 동안의 교회 분위기의 변화에 비로소 함께할 수 있었다.

 

부흥은 가정에서부터
교회 내부의 변화를 증거하는 또 한 사람은 로이드존스의 아내 베탄이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고 기도회에도 정규적으로 참석한 열심 있는 신자였다. 언제나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여긴 것은 물론이다. 그러던 중 모든 사람은 다 똑같이 죄에서 구원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는 남편의 삭개오에 대한 설교를 듣고 충격을 받게 된다. 충격이라기보다는 자신도 신앙이 없는 사람과 똑같은 처지에 있다는 가르침을 거부하고 혐오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다가 결국 진리를 깨닫게 된다. 그런 체험을 하기까지 2년간 남편의 목회 현장에서 열심히 기도한 성도임에 틀림없다.

 

후일 그녀는 이렇게 고백했다. “일요일 밤마다 나는 어떤 사람이 회심하게 되기를 늘 기도하곤 했습니다. 회심이란 술주정뱅이나 창녀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술꾼들이 회심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면서도 때로는 그들의 기쁨이 충만하고 자유를 누리고 나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그들을 보면서 마음속으로는 시기하기까지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통해서 거리의 악명높은 사람들의 회심이 계속되었다. 그때의 분위기를 알기 위해서 몇 사람의 예를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때는 광부였고 소일거리로 주로 돈을 받고 싸워주는 일을 했었던 메칸이란 사람이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자기가 먹을 빵을 애완용 개가 먹어치웠다고 빵을 자르는 칼로 개의 목을 자른 끔찍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예배당에 찾아나온 첫날 하나님의 성령에 사로잡혔다. 두번째 예배에 참석한 후 엄숙한 기쁨 가운데서 주님의 이름을 믿기로 고백했다.

 

또 빠뜨릴 수 없는 한 사람은 “스테포드셔의 빌”이란 별명으로 보통 통하던 윌리암 토마스이다. 그는 거의 매일 밤마다 선술집을 출근하는 사람으로 더러운 말을 입에 붙여놓고 살던 질 나쁜 사람이었는데 교회에 발을 디딘 첫날밤 심판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 사람 속에 일어난 변화는 모든 사람이 알아볼 정도로 뚜렷했다. 그가 나타나지 않는 어느 날 밤, 앞서 말한 술집에서 어떤 사람이 물었다: ‘왜 노인이 요즈음 보이지 않느냐?’ 그러자 ‘당신은 아직도 모르고 있었냐’고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그 할아버지는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듣고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 할아버지를 변화시킨 설교라면 우리들도 한번 가보자며 다른 술꾼들까지 모여들기 시작했다.

 

악명높은 남자들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유명한 무당노릇을 하던 여자도 복음을 위해 그녀의 유일한 생계수단을 포기했다. 그녀는 매주일 무당들의 모임을 인도하는 대가로 3기니의 돈을 받았었다. 그런데 몸이 아파 나가지 못한 어느 주일 날 자기 집 앞을 지나 베들레헴 전진교회로 가는 사람들을 보며 갑자기 예배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서 교회에 가게 되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변화되어 여생을 주를 위해 살았다. “제가 예배당에 들어가서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는 순간 나는 우리 무당들의 모임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어떤 초자연적인 능력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예배당 안에 있는 영은 ‘깨끗한’ 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거리가 온통 부흥의 물결로
1931년 축복의 밀물이 밀려올 때 20세기 초의 웨일즈 부흥을 기억하는 한 나이든 성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오, 이것이 부흥이다. 성령의 능력이 1904년보다 지금 여기서 더 강하게 역사한다.” 그 당시 샌드필즈에서 있었던 집회에서는 참 부흥에서 나타나는 회개의 역사들이 나타났다. 죄의 깊이에서부터 솟아나는 구원의 역사는 더욱 크고 기쁜 것이었다. 이와 함께 교회 생활도 전폭적으로 변화되었다. 기도회의 열기가 더 뜨거워졌으며 성도들은 모이는 일에 더욱 열심이었다. 그 즈음에는 저녁 예배 한 시간 전부터 좌석이 차기 시작했고 예배 30분 전에는 빈 좌석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성도들의 새로운 삶의 모습은 그 지역 주민들 사이에 새로운 화젯거리가 되었음은 말할 여지도 없다.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삽시간에 온 지역에 펴졌다. 여자들은 시장을 보며 남편들의 신앙 성장에 대해 나누었고, 어떤 남학생은 선생님에게 자기 아버지가 회심한 것에 대해 자랑하기도 했다.

 

부흥의 양대 특징인 교회 밖에서부터 줄을 잇는 회심과 교회 안에서의 이러한 변화를 통해서 11년 반 동안 그곳의 사역은 놀라운 열매를 맺었다. 1931년에는 교인 수가 135명이 늘었는데 그 가운데 128명은 ‘세상에서’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부임 당시 93명의 등록교인 가운데 50여명이 출석하던 교회가 11년 반만에 등록교인 530여명, 평균 출석교인 850명으로 거의 10배나 성장한 셈이다. 물론 한국적인 상황 속에서는 놀랄 만한 수치는 아니다. 그러나 해마다 교인 숫자가 감소하고 문을 닫는 교회가 속출하는 그 당시의 영국 상황에서 볼때 이는 부흥의 증거임에 틀림없었다.

 

그의 부흥 사역은 단지 첫 사역지 베들레헴 전진교회에 대한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흥의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일들은 그의 웨일즈 지역 순회 설교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주간에 그는 인근 교회들의 초청을 받아서 설교를 하곤 했는데 공고된 예배 시간보다 두 시간 먼저 가지 않으면 자리에 앉는다는 것을 포기해야 할 정도였다. 중이층이 있는 교회는 사람들이 거기까지 너무 몰려와서 무너져 내릴 것을 염려하기도 했다. 한번 어느 교회에서는 늦게 도착해서 예배당에 들어갈 수 없게 된 사람들이 교회당의 유리창을 떼어달라고 요청까지 했다니 얼마나 이례적인 현상이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물론 사람들을 모으는 것만 생각한다면 청중이 듣기 원하는 것을 들려줌으로써 모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심층 욕구를 외면한 채 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설교는 결코 청중의 인기에 영합한 것이 아니었다. 자연인의 영적인 상태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영적으로 죽어 있고 영원한 파멸의 위험 속에 잃어버린 그들의 처지를 생각할 때, 타고난 유머 감각을 가진 로이드 존스였지만 강단에서 농담이나 웃기는 만담을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진지하고 열정적인 그의 설교를 통해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기에 우리는 이것을 부흥현상으로 분류하고자 하는 것이다.

 

부흥의 기초석이 된 기도모임
그는 사역초기부터 이웃에 있는 동료 목회자들과 기도서약서를 만들고 부흥을 위해 기도모임을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 부흥은 누구도 이룰 수 없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라야 그 이름에 합당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뜻을 같이하는 형제들과 서로 교제하며 작은 모임을 결성해서 부흥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합의 문항 가운데에 매일 30분 동안 두 가지 특별 기도제목을 놓고 하나님께 간구하기로 선서하고 있다. 그 첫째 제목이 신앙부흥(A revival of religion)이었다.

 

그는 부흥을, 동일한 하나님의 권능이, 회심하는 많은 사람에게 동시에 확산되는 것으로 보았다. 어디든지 참된 기독교가 있는 곳에는 현존하는 동일한 생명이 같은 시기에 확산되고 흘러넘치는 것으로 보았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에게 알려질 수 있는 꼭 같은 성령이 많은 사람 위에 부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흥의 시대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일상적으로 하시는 사역과 본질적으로 다른 사역은 아니다. 다만 예외적으로, 견줄 수 없는 정도의 범위로 그리스도의 영광이 크게 나타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부흥을 위한 진정한 열심은 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바라는 열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흥을 가로막는 요인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흥에 관한 관심이 없는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태도에 대해 그 이유 몇 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그 첫번째 요인은 개혁신학의 퇴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거의 본능적으로 주권자 하나님께 겸손히 무릎을 꿇던 방식에서 떠난 것을 지적한다.

 

두번째로는 찰스 피니의 영향으로 소위 전도 집회를 “부흥회”라고 부르면서부터 혼동을 가져오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영적으로 메마른 시기가 닥치면 하나님께로 돌아가 기도하겠다고 본능적으로 생각하는 대신 이제는 부흥회를 열기 위해 강사를 섭외하고 홍보를 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은 관점이 와전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세번째 이유로는 신학교육 문제를 들고 있다. 이전에는 영적 생명과 설교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목사를 도와 설교를 했었는데 이제는 학식을 갖춘 사람들을 우선시하는 풍조가 대두되고 영성과 학식이 서로 공존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도 되는 듯이 많은 학식을 갖춘 사람은 영적인 일에 덜 관심을 갖게 된 현상을 말한다. 한마디로 신학교의 증가가 부흥쇠퇴의 이유 중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개혁파에 속한 사람들이 부흥문제에 대해 관심을 상실한 이유를 상세히 분석한다. 이들은 이론적이고 지적인 접근에 치우쳐서 바른 교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나머지 생활에 대한 부분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영적인 생명이 결여된 현상을 가져왔다고 본다.

 

그 다음으로는 지난 세기에 현대주의와의 싸움에 너무 탈진한 나머지 교회가 방어적이 되어서 성령의 적극적인 역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신학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감정을 신뢰하지 않는 경향을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서 오순절 운동에 대한 지나친 반작용을 들고 있다.

 

또한 핵심적인 이유로서 청교도들 자신이 부흥에 관해서 별반 가르치지 않은 것을 들고 있다. 그러나 청교도들의 입장은 직접 체험을 강조하고 신비주의로 기울어진 사람들과 싸운 그들 시대의 상황에서 볼 때 이해할 만하다. 청교도들의 주관심사는 목회적이고 경험적이었기에 양심의 문제를 분석하는 일, 의심을 해소하는 일,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는 그들보다 앞선 사람들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늘 우리와 달랐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특별한 난제는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는 부흥을 위해 기도하라는 가르침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는 신약교회는 영적인 교회이고 성령의 능력이 충만한 교회였던 것을 지적하고, 그들 가운데는 바른 교리와 함께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있었던 것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신약교회는 성령충만과 성령세례를 받은 교회라는 역사적인 정황 속에서 서신서를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흥과 일반적 사역간의 균형잡기
현실적으로는 항상 부흥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과 교회 내에서 일상적이고 정규적인 사역을 강조하는 사람들로 양분된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의 입장은 예외적이고 비상한 것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일반적이고 정규적인 사역만 주장하는 것만큼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며 부케넌 교수의 글을 인용한다.

 

“성령께서는 영광스러운 사역을 수행하시는 데 있어서 어느 한 양식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전자는 특이하고 두드러진 것만을 지나치게 선호하고 후자는 정반대의 오류에 떨어져 보다 일상적이고 조용한 것을 선호합니다. 우리는 회심의 두 양식을 모두 인정하고 성령의 주권적인 지혜와 은혜에 그 양식을 맡기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나라를 유지하고 확장시키는 일에 있어서, 보다 느리고 점진적인 방법을 찾는 데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하나님의 성령께서 갑작스럽고 일반적인 역사를 들을 때 놀라며, 심지어는 어느 정도 회의적인 마음으로 듣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니 우리는 정규적인 사역 아래서 흔히 관찰되는 것보다 획기적이고 급속한 변화가 교회와 세계에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거나 그것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부케넌 교수의 지적처럼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늘 교회의 생명을 주시는 분이지만 가장 위대한 사역을 이루시는 방법은 항상 특별한 긍휼의 때에 이례적인 부으심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편견 없이 교회사를 읽는다면 교회의 발전과 진보는 주로 성령의 강력하고 예외적인 부으심의 역사요 부흥의 역사를 통해서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범하고 예외적이며 기적적인 방법으로 당신의 교회를 소생시키시고 확장시켰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로이드 존스는 개혁파 사람들이 어느 누구보다 부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로 교회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부흥만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없으며, 둘째로 부흥역사는 인간 혼자로는 무능하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원수가 홍수처럼 밀려올 때는 주님만이 기치를 세울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이다.

 

또한 구원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임을 알 수 있는 것은, 부흥의 시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예배의 장소에 도착하거나 설교를 듣기도 전에 회심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그 시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진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부흥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는 것도 없으며 부흥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불가항력적인 성격을 나타내는 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청교도의 설교의 본을 받아 온전한 복음을 설교하는 일상적인 일에 계속 충실해야 하는 동시에 부케넌 교수의 지적처럼 이 모든 일에 균형을 유지하여 다른 어떤 것보다 강력한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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