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찬수 목사
푸른초장교회 담임
고려신학대학원, 고신대신학대학원
연세대교육대학원, 풀러신학대학원
군목 대위 예편. 서울노회장 역임
6.25 기념일을 한 주 반 앞둔 주일 오후 한 노인이 교회를 찾아왔다. 새벽부터 오전, 오후예배, 그리고 성경공부를 마친 후인지라,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그 를 만났다. 노인은 약주를 했는지 약간 취해 있었다. 그런데 그 노인은 평범한 노인이 아니라, 노병(老兵)이었다. 조국을 위해 젊음을 다 바친 노병이었다. 조국을 지키려고 6.25 전쟁에 참전했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월남전에도 참전했고 18년 동안 군생활을 하다가 상사로 제대한 분이었다.

 

자신이 왜 술을 마시게 되었는지에 대한 해명을 하므로 목사인 내게 먼저 사과를 하는 것도 잊지 않을만큼 모든 면에 예의를 지키는 것을 보아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노병(老兵)은 오른팔을 고통스럽게 계속 떨고 있었다. 파킨슨병에 걸렸다고 했다. 그러나 너무도 가난했기에 치료다운 치료 한 번 받지 못한다고 했다.

 

그 노병은 40여분 동안 많은 이야기를 했다. 주로 6.25 전쟁때의 이야기였는데, 특히 지리산 빨치산 이야기를 하면서는 치를 떨기도 했다. 빨치산들이 우리 국군들을 사로잡으면 큰 나무에 산채로 묶어놓고, 칼로 얼굴과 온 몸을 난자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해 놓고 가버린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연세가 70이 넘고 몸은 파킨슨병으로 떨고 있으면서도 분함을 이기지 못한 듯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다. 그 노병(老兵)에게 그리스도를 전했다. 주 안에서 참된 평안과 미래가 있다는 말해 주었다.

 

말을 계속하던 노병(老兵)은 피곤한 목사를 쉬지도 못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주보 한 장 손에 들고 집에 가겠노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윌 대로 야윈 몸으로 교회를 나가는 그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화요일 새벽이었다. 강단에 엎드려 기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새벽에 전화가 오는 것은 대부분 다급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 노병(老兵)의 딸의 다급한 음성이 들렸다. 목사님, 아빠가 자살하셨어요..

 

6.25를 앞두고,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나오지 않은 교회를 찾아 나왔을까? 그리고 초면인 목사인 나를 찾았을까? 나에게 70여 평생을 살아오며 겪은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했을까?’

 

그 노병(老兵)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몇몇 자녀들과 친지들만이 쓸쓸히 모여 있었다. 조국을 위해 젊음을 다 바친 노병(老兵)의 마지막 순간을 애도하기 위해 이 노병(老兵)이 그렇게도 사랑했던 조국의 공직자들은 끝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러한지 조국을 위해 입대하는 젊은이들은 마지못해 끌려가듯이 가지만, 자진해서 촛불을 들고 거리에 뛰쳐나오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대비 되면서 노병(老兵)의 최후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사람들은 사람들의 일을 잊을지라도 우리의 하나님은 결코 그 충성과 희생을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도.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10:42)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