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과 교회의 권위는 어디로 가고, 교회가 판검사들의 입만 쳐다보나

요즘 교회들에 문제가 생기면 결국은 세상 법정에 가서 결말을 낸다. 지(枝) 교회들은 물론 총회와 같은 교회의 최고 기관에서도 문제가 생기면 의례히 법정에 고소하고, 중진 목사들이 젊은 판사들 앞에 가서 판결을 기다린다.

교인들이 교회의 판단이나 결정은 모두들 무시한다. 교회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서로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도자들도 공평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정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사는 사람이 없고 모두들 자신이 소속한 계파에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게 무서운 집단타락이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의(義)보다는 정실이나 현실적인 이(利)를 더 추구하게 된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을 그 사람과 자신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판정한다. 자기에게 잘 해 주는 사람이면 좋은 사람이고 자기와 관계가 좋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자기에게 유익하면 선이고 불리하면 악이라고 생각한다. 자기편에 속했으면 좋은 사람이고 자기편에 속하지 않았으면 나쁜 사람이다.

고신교회도 이런 면에서 타 교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한 때는 법정 고소문제로 많은 논란을 했고 토론도 했었다. 그러다가 교단이 갈라지는 아픔도 겪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들마저 추억이 되었다. 지금은 세상법정에 고소하는 것 때문에 고민하는 교회도, 그런 교인들도 없는 것 같다.

고신교회는 신대원 모 교수의 범죄문제로 수년 동안 시끄러웠다. 신대원 교수회가 조사를 했고, 또 객관적인 인사들이 조사해야 한다며 목사 교수들(목사는 믿을 수 없음으로)을 배제한 교수들로 구성한 대학조사위원회가 조사를 하고, 그것도 믿을 수 없어 이사회 조사위원회가 조사를 다시 하고, 그래도 되질 않아 총회가 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조사를 하여 최종적으로 이 조사보고를 채택했다. 하지만 해당기관(노회와 이사회)에서는 이것도 믿지 않아 아무런 처리를 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당사자와 일부 이사들은 사립학교법에 따라 범죄시효가 지났다는 주장을 하며 징계처리를 반대했다. 그러자 신대원 당국은 형사법상 시효도 곧 지나게 된다는 것을 이유로 이 문제를 검찰에 진정하였다. 그런데 이사회는 신대원 원장이 교회 내 문제를 검찰에 진정했다하여 원장의 재임명을 거부하였다. 그래서 현재까지 신대원에는 원장이 공석이며, 대행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위 두 가지 사안에 대한 이사회의 처사는 완전히 반대로 이루어지고 졌다. 한편은 실정법을 적용하고 다른 한편은 교회법을 적용한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본보에 의해 그 교수가 결국 검찰에 의해 기소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렇게 되니 그 교수를 두둔하던 사람들도 이젠 어쩔 수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검찰에서까지 유죄를 확인하고 기소를 하였으니 이젠 어떤 조치든 취할 수밖에 없질 않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고신교회 지도자들의 현주소이다. 참으로 답답하고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신대원 당국이 범죄한 교수를 사직당국에 조사해 달라고 진정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이는 신대원으로서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며 진정을 취하하라는 권고를 하였고, 그 교수에 대해서는 이미 총회가 조사하여 결론이 난 이상 이에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수용하고 자진해서 교수직을 사직함으로써 사태를 수습하는 결단을 내리라는 권고를 했으나 양쪽 다 이런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지금 고신교단은 교회의 권위를 스스로 세상 법정에 양도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교회의 치리권은 상실되었고, 나아가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요즘 교회에서 치리가 시행되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교회의 치리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없다. 음란과 같은 드러난 범죄행위 외에는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이는 우리의 도덕성이 세상보다 더 약해졌다는 증거이다.

고신의 지도자들에게 묻고 싶다. 앞으로 교회가 어떻게 교인들을 치리하며, 교회의 거룩성을 보존하고, 복음전도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교회와 교회, 그리고 교인 끼리 일어난 모든 민형사상의 문제를 세상 법정에 호소하고 그 판단만 기다린다면 하나님의 주권은 대관절 우리의 삶의 어느 부분에 미치게 되는 것인가?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되심에 대한 고백은 또 어찌 되는 것인가? 생각하면 너무나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패역함과 반역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제라도 옷깃을 여미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기를 촉구한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