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신식 교육은 선교사들이 시작하였다. 초등학교(소학교)는 고아원으로 시작되었다.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튼 선교사 등이 한두 명의 고아들을 데리고 시작한 학교는 후에 경신, 배재, 숭덕, 이화 학교 등으로 발전된다. 선교사들이 시작한 학교들은 자연스럽게 교회들로 이어졌다.

1907년 장로교 제1회 총회(독노회) 회의록에 의하면 장로교가 운영한 소학교는 1905년에 139개, 1906년에 238개, 1907년에는 405개였다. 1908년에는 중등학교와 대학교에 대한 통계도 나왔는데 소학교가 542개, 중등학교는 남녀학교를 합하여 17개였고 대학교는 2개였다. 당시 장로교회의 수는 897개였는데 미자립이 대부분인 교회들에서 이렇게 많은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위 통계를 보면 교회가 적극적으로 학교를 설립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독교가 우리나라 교육에 미친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그런데 일제의 침략 정책으로 기독교 학교들은 큰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일제는 대한제국에 통감부를 설치하고 1908년에는 사립 학교령을 공포하였다. 이를 통하여 일제는 기독교 학교를 견제하였고, 이어 조선총독부는 1911년에 조선 교육령을 공포하여 국공립학교를 내세우며 지속적으로 사립학교를 탄압하였다. 나중에는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본격적인 탄압이 이루어졌고 많은 학교가 일제와 타협하거나 문을 닫아야 했다.

문재인 정부의 자립형 사립학교에 대한 정책은 일제가 기독교 학교를 탄압하던 때를 떠올리게 만든다.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해서라도 자립형 사립학교를 폐지하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립학교들 때문에 국공립학교의 교육이 망가지고 있으므로 교육의 평등을 위해서 자립형 학교들을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곧 사회주의적인 이념으로 각종 특색 있는 학교들을 폐지하여 평준화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자사고의 대부분은 교육에 대한 선구자적인 사명을 가진 지도자들에 의해 설립되었고, 훌륭한 인재들을 길러 나라를 살리고 민족의 중흥을 이루겠다는 마음으로 헌신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다 무시하고 획일화를 이루겠다는 것인가? 자사고 평가에서 탈락된 어느 학교의 설립자는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수백억 원을 들여 학교를 설립했는데 한 푼의 돈도 도와주지 않은 정부가 학교를 좌우지 하려 한다.’고 피를 토하듯 분노하며 탄식하였다. 이런 것이 과연 자유민주주의 나라에서 가능한 일인가? 다양성을 포용하는 것이 민주사회 아닌가? 할 수만 있다면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자유민주의 아닌가?

대관절 문 정권이 하는 일을 보면 너무 가볍다. 예를 들어 문재인 대통령은 정권을 잡자마자 건설 중인 원자력 발전소를 한마디 말로 중단시켜 수천억 원의 혈세를 낭비하게 했다. 3년 내로 최저임금 일만 원을 공약했다가 치르고 있는 경제적 손실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그리고 이 정부는 비정규직 제로를 덜렁 약속했다가 부메랑이 되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교육은 백년대계다. 그런데 이 중요한 일도 덜렁거리듯이 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수월성(秀越性) 교육이 나라를 망치는 일인가? 평등을 위해 자사고들을 폐지하고 교육이념의 다양성과 교육 내용과 방법의 다양성까지도 반드시 획일화시켜야 하는가? 평등을 위해서라면 자유는 희생돼도 좋은 것인가? 자사고 중에는 미션학교들이 많다. 자사고 폐지를 통해 기독교 교육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 것은 지나친 오해와 우려일까? 그리고 교회가 설립한 학교에서 종교교육을 하는 것이 범죄행위라도 되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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