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나나 무스쿠리'를 기억하시는가? 그렇지 않다면 송창식과 윤형주가 불러 아련한 감정에 빠져들게 했던 '하얀 손수건'이라는 노래는 기억나시는가? 그 노래가 바로 나나 무스쿠리가 불러서 세계적으로 히트한 곡이다. 그녀가 지금은 70세를 훌쩍 넘어버린 황혼의 여인이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변함없이 한국 땅의 팬들에게 초청받는 멋진 현역 가수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녀가 지금까지 노래를 부르는 이유를 말한 적이 있었다.

"음악에는 모든 경계를 뛰어넘는 마술이 있어요. 어렸을 적에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저는 노래를 통해 그것을 견뎌냈어요…아무리 지치거나 슬퍼도 무대에만 나가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어요. 노래는 나를 안정시켜 주었고, 나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었지요…무대에 서는 것은 치유받는 일이었어요."

나나 무스쿠리에게 노래는 삶을 붙드는 능력의 기둥이었다.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치유하는 힘이었고 종교였다. 어려움도 그녀의 노래 앞에서는 녹아내리는 봄눈에 불과했다. 아무리 힘들고 자신을 지치게 만드는 상황도 무대에 올라 부르는 그녀의 노래 앞에서는 힘을 잃고 말았다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은 어떤 분인가? 주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분의 이름을 부르면 새로운 능력을 공급받게 되는 그런 이름인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과연 내 몸속을 흐르는 뜨거운 피처럼 생생한 능력인가? 그래서 모든 난관과 어려움이 봄눈 녹듯 내가 고백하는 그 분의 말씀 앞에서 녹아져내리는가?

신앙은 주님을 고백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다가 내 속에 흘러들어오는 그분의 능력을 체험하면서 삶의 굴곡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이것 없이 무슨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기쁨과 희열이 있다 말할 수 있겠는가?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는 평생 70여점이 넘는 자화상과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미술사에 이렇게 많은 초상화를 그린 화가는 없다. 이것을 두고 한 평론가가 말했다. "단순한 자아도취로 자신을 미화시킨 것이 아니다…단지 기념비적인 의미를 넘어 '자신과 끝없는 대화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렘브란트는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에 주목하면서 평생 자신을, 아니 영혼까지를 화폭에 담아냈다. 그림을 통해 자신을 철저하게 살펴본 것이다. 나나 무스쿠리가 마치 노래를 통해 자신을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신앙인은 무엇으로 자신을 비춰보아야 하는가? 무엇으로 자신의 영혼까지 담아내고 인생의 길고 긴 여정을 걸어가야 하는가? 그 길을 걷는 동안 걸어갈 힘은 어디에서 얻어내야 하는가? 주의 이름과 그분의 말씀을 부르짖다가 인생의 능력을 체험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당신의 삶을 붙드는 기둥은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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