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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은 반기독교적인 사회에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가?

차별금지법과 반기독교적인 사회 흐름

리폼드미니스트리 대표 노승주 전도사는 ‘바른 신학의 결여’라는 오늘날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혁신학을 다양한 계층에게 바르게 교육할 수 있도록 연구하며 강의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튜브 영상(채널명: 리폼드미니스트리)을 통해 짧은 15분의 강의 속에 핵심 교리를 전달하는 사역을 하며 꾸준히 다음 세대에게 개혁신학을 교육하고 교재를 만드는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7가지 핵심 키워드로 읽는 개혁신학』,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대한민국』 등이 있다.

최근 사회에서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 중 하나를 꼽자면 동성애를 비롯한 차별금지법안과 그것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위정자들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수많은 존중과 자유를 외치며 시작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은 참 많은 곳에 영향을 끼쳤다. 이전에는 어딘가 숨어 동성애를 갖던 사람들이 이제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떳떳하게, 어쩌면 마치 동성애를 밝히는 것이 멋이라도 되는 것 마냥 자신들의 동성애자 됨을 선언한다. 우린 이것을 커밍아웃(coming out)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들을 성소수자라고 부르며 마치 약자인 것과 같이 여기고 자신들을 피해자인 것 마냥 사회에 소개하고 자신들을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이 흐름을 이용해 많은 정치인은 자신을 소수자라고 부르는 이들의 편에 서서, 마치 약자의 편에 서는 것과 같은 인식을 심어주고 다수의 권리를 보장해주기보다 다수의 권리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지지율을 얻는 추세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 혼인을 합헌으로 판결한 이후부터 미국에서의 동성애는 마치 이성애와 같은 지위까지 갖게 되었다. 청교도들의 기독교 입국론을 통하여 세워진 나라가 미국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렇게 이미 세워진 가치 체계가 법제화되어 국민에게 다가올 때 국민들은 사회의 큰 흐름을 바꾸기 쉽지 않을뿐더러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사회의 흐름과 정치적 움직임은 국민들에게 언제나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파악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 또한 알든지 모르든지 간에 너무도 쉽게 동성애라는 주제를 마주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2005년도에 개봉한 ‘왕의 남자’와 같은 동성애를 소재로 사용한 영화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응답하라 1997’에서도 동성애가 소재로 사용되어 대중들에게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들게 하긴커녕 오히려 극 중 동성애 커플을 요청하기까지 하는, 동성애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여러 매체와 언론에서 심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젠 대중적인 문화와 매체, 언론뿐만이 아니라 사회 법안까지도 동성애를 옹호하려 하며 성경이 동성애를 ‘죄’라고 가르친다고 할지라도 ‘죄’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는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에서의 동성애를 정당화하고자 하는 활동은 2007년 10월, 법무부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따라 동성애를 합법화시키려는 차별금지법을 입법 예고함으로써 촉발되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부당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처럼 보일지라도 이 법안의 참 의미는 동성애를 이성애와 동등하며 정상적인 성행위로 정의하는 데에 있고, 이를 그릇된 행위라고 말하는 것을 금지하며 이에 대해 정신적 또는 물질적 피해를 입었다고 여길 때에 법정소송까지도 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것이었다.

 

차별금지법의 위험성

과연 차별금지법이 담고 있는 폭발적인 위험성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설명을 짧은 글에 담기엔 부족하겠지만 핵심적으로 설명하자면 결국 이성애나 동성애는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과 동시에 이성애와 동성애는 모두 동등한 위치에 있고 불법적이지 않은 사랑의 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동의하지 않으며 동성애를 합법적이고도 건강한 사랑의 한 형태로 인정하지 않을 시 법정 소송의 대상까지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교회 외부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닌, 교회 내부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교회 내에서 동성애의 ‘죄’ 됨을 설교와 강의, 교육을 통해 전할 수 없게 되며 동성애의 ‘죄’ 됨을 전할 시, 이에 대해 처벌이 주어질 수 있게 되는 심각한 문제이다. 이는 동성애만을 다루는 문제가 아니며 성경의 권위 자체가 국가 헌법에 종속되어 성경은 위법 서적으로 낙인이 찍히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을 성경답게 전할 수 있게 될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과연 교회가 ‘죄’의 ‘죄’ 됨을 바르게 설교하지 못할 때, ‘성도’가 ‘성도’ 다울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차별금지법을 통하여 교회를 억압하고 자신들의 정치 이념을 펼치려고 하는 사회의 흐름 가운데 교회가 깨어 있어 바르게 알고 바르게 행동하지 못한다면 교회는 교회다울 수 없고 성도는 성도다울 수 없게 될 것이다. 차별금지법안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교분리의 원리’, 더 바르게 표현하자면, ‘국교 분리의 원리’에 어긋나는 법안으로 교회를 국가의 통제하에 두며 참된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실상 교회 말살 정책과도 같은 법안이다.

우리나라는 헌법하에 ‘양심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를 명백히 보장받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안은 그러한 자유의 벽을 허물고 국가의 통제하에 엄연히 종교의 권위를 억압하는 법안임이 분명하다. 차별금지법은 마치 차별에 대한 평등만을 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이 법안에 담긴 의도를 깊이 생각하고 다른 국가들의 선례를 살펴볼 때, 우리는 차별금지법이 국가의 종교 억압 의도가 담긴 법안임을 알 수 있다. 국가에서 종교가 쇠퇴할 때, 국민은 자유와 도덕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그 유명한 토크빌의 말처럼 ‘자유는 도덕성 없이 세워질 수 없고, 도덕성은 신앙 없이 세워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 움직임을 과연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바라보며 해석하고 행동해야 할까?

 

차별금지법을 대하는 현 위정자들의 자세

지난 8월 21일 제8회 ILGA 아시아(국제성소수자협회 아시아지부) 컨퍼런스에서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내년 정의당의 1호 법안은 차별금지법안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리고 이어 정의당은 동성부부 혼인신고 소송을 냈던 김조광수 감독을 차별금지법추진위원장으로 내세우며 더욱 강력히 차별금지법 제정에 박차를 가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기독교계에 많은 논란이 되었던 현 정권의 법무부 장관인 조국 장관은 그의 청문회를 비롯한 이전의 모든 발언을 통해 동성애 합법화에 대한 의지와 동성 결혼에 대한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두며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언급한 내용들은 차별금지법과 관련된 위정자들의 태도 중 극히 일부를 다룬 것이지 현 상황은 매우 많은 위정자들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데 있어 힘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차별금지법으로 시작하는 반기독교적인 움직임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의 사회와 시대의 흐름은 더욱 죄악 된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짧은 글에 모든 내용을 담을 순 없겠지만 결국 차별금지법은 이 사회의 반기독교 정책에 있어 마침표가 아닌 첫 단추일 뿐, 마침표가 아니다. 차별금지법으로 시작된 반기독교적인 움직임은 학생인권조례와 같은 다음 세대 교육에 있어 큰 영향을 주며 어린아이들로부터 천천히 우리에게 젖어 들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고 경각심을 갖지 못한 사회의 흐름이 여전히 다분하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을 벗어난 인간이 스스로 이루는 공동체의 방향성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증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쉽다는 것을 바르게 알아 어두운 시대 가운데 눈을 떠 교회의 진리를 지켜내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가?

과연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사회와 시대의 흐름에 있어서 어떤 판단과 기준을 세워 우리의 입장을 가져야 할까? 그리스도인은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문제에 있어 성경의 가르침을 자기 삶의 기준이자 표준으로 삼고 살아가는 자들이다. 즉, 성경의 가르침을 전제 삼아 살아가는 자들이다. 다른 여느 문제와 같이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의 문제 또한 사회의 흐름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직 성경 앞에 비추어 성경적, 사회적 문제들을 바라보고 판단하며 때론 그것을 막아서기 위해서 열심을 다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오직 ‘계시’의 종교이며 그리스도인의 모든 사색은 ‘계시 의존적 사색’이어야만 한다. 인간의 전적 타락을 전제 삼고 인간은 오직 계시 의존적인 존재임을 알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우리가 의존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어야만 함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권세

성경은 개인과 가정, 공동체, 국가 모두에게 주어지는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계시 의존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위치한 상황과 환경 가운데 때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그 권위에 복종하며 순종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권세라는 점이다. 권세를 받게 된 자가 하나님보다 큰 것이 아니며 권세를 받게 된 자는 권세를 주신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 권세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사회, 정치 참여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면 안 된다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과연 이런 무지한 말은 어디서 나온 말인가? 성경적 가르침을 따르면, 오히려 그리스도인은 사회의 흐름을 밝히 알고 우리의 신앙을 더욱 굳건히 세울 수 있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 자들이다. 존 프레임의 말과 같이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문화에 참여해야 한다. 우리가 기독교 예술가, 자동차 수리공, 정부관리라면 또는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을 우리의 일에 적용하기 위해 기독교인으로서 우리의 일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존 프레임, 기독교 윤리학, 개혁주의신학사, 2015, pp.1130-11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이것은 선택 사항이 아닌, 구원받은 성도에게 주어지는 사명이다. 사회 속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내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은혜로 인하여 다시금 본래 바른 전제가 회복된 참된 하나님을 향한 방향의 회복이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정부(국가)와 교회(성도)의 관계

개혁신학을 따르는 장로교가 믿고 따르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도 가르치듯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민간 정부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임을 말씀하시며 그 권세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정부와 위정자가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위임받았음을 깨닫고 이에 순종하며 참여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위정자들의 책임은 무엇일까? 그것은 국가를 세우신 하나님을 최고의 주인이며 왕이심을 전제하며 그 권위와 법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선 이 세상에 자신의 영광과 공공의 선을 위해서 정부를 세우신 분이시다. 그렇다면, 정부는 하나님의 권세를 벗어나지 않고 사회의 질서를 유지해야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 즉 하나님이 세우신 위정자들은 결코 교회의 자유와 안녕을 해쳐서는 안 되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같이 교회가 말씀을 전하고, 성례를 시행하는 일이나 천국 열쇠의 권세를 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에게 신앙의 자유를 안전히 보장해야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이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 중 참된 교회의 표지는 무엇인가? 바른 말씀의 선포와 바른 성례의 집행, 바른 권징의 시행이다. 이 모든 것은 다른 것으로 말미암지 않는다. 오직 성경의 가르침을 따를 뿐이다.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설교해야 하며, 예배해야 하고, 모이기에 힘써야 하고, 성례를 베풀어야 하고, 권징을 시행해야 한다. 국가(위정자)는 이러한 교회의 권위를 보장해야 하며 이러한 교회의 사역에 국가라는 힘을 입어 개입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국가 혹은 위정자에게 주신 권위를 악용하는 죄악 된 권위의 사용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교회는 독립된 제도이나 동일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권위를 받았기에 국가는 교회의 안녕과 바르게 세워짐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 돕는 역할을 해야 하며, 교회는 국가의 권세에 복종하며 정치에 바르게 참여해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회는 국가 위정자들에게 복종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어떤 국가의 권력과 정책도 기독교의 신앙고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엄연히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위배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기만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신학적으로 ‘정교분리의 원리’ 혹은 ‘국교분리의 원리’는 많은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국가와 위정자에게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고 교회에게 복종할 것을 명했으며 국가와 위정자는 주어진 권세를 통하여 교회의 질서와 안녕을 보장할 것을 명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난해하게 생각하고 의문점을 품는 것은 이것이다.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복종해야 할까? 과연 국가의 권세가 교회를 성경적 가르침에 어긋나도록 법을 제정하고 교회를 압박하고 억제해도 우리는 국가에 복종해야 하는 것인가?

 

어디까지 복종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종교개혁자 칼빈을 비롯한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기독교인은 불의한 위정자라 할지라도 순종하고 복종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교회가 국가와 위정자에게 복종하는 것에 대한 예외 사항, 불복종해야 할 때가 있음을 또한 덧붙였다. 그것은 국가와 위정자가 하나님의 뜻을 어길 때, 다시 말해 ‘법’을 어길 때이다. ‘법을 어기다’라는 말은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먼저는 하나님의 법을 의미한다. 국가가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지으라고 요구하거나 또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성경의 가르침을 금지시킬 때,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불복종해야 한다. 우리가 국가에 복종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이기 때문이며 우리의 궁극적인 통치자는 오직 하나님이심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여기서 말한 법은 국가의 법을 의미하기도 한다. ‘법’이라는 개념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담고 닮을 수는 없지만 옳고 그름에 대한 도덕적 판단 기준은 오직 최고선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정자들이 사회법을 어겼을 경우에 우리는 그들의 권세를 인정하지 못할뿐더러 그들로 하여금 권세를 휘두룰 수 없도록 그들의 손에서 그 권세를 빼앗아야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을 볼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결코 참을 수 없고 견딜 수 없는 위정자들의 행보를 보게 된다. 이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한 태도로 그리스도인들이 자세를 취할 때, 우리나라는 결국 많은 서방 국가들이 성적인 타락을 비롯한 죄악으로 무너진 것과 같이 우리 또한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이러한 사회적 흐름에 있어 부분적으로는 동성애자들을 향한 차별을 금하는 차별금지법안에 대하여 찬성할 수 없음이 분명하고 법안이 제정된다고 할지라도 이에 대해 불복종하며 정당한 방법으로 시위할 자격이요,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이를 무시하고 정치와 사회의 흐름에 있어 무지할 때, 국교분리의 원리가 무너지며 국가는 교회를 억압하며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을 성경의 가르침답게 전하지 못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정치에 참여하며 정치와 사회적 흐름을 바르게 알 필요가 있음이 분명하다. 교회는 결국 다른 무엇보다도 언제나 교회의 안녕을 수호하고 바른 지리가 선포될 수 있는 국가를 유지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이자 국민으로서의 의무이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성도로서의 삶임을 기억하길 바란다.

안타까운 사실은, 최근에 이러한 국교분리의 원리를 차별금지법이라는 명목으로 허물며 종교의 자유를 억누르려는 위정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특정 정치인과 정당을 지지하는 것에 대해선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하지만 차별금지법과 같은 반 기독교적인 정책과 이념을 가지고 있는 위정자와 정당, 하나님의 법과 사회의 법 모두를 어긴 위정자와 정당, 아니 적어도 하나님의 법을 어긴 위정자와 정당을 여전히 지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 삼을 수밖에 없다. 평소 아무리 존경하고 기대했던 위정자와 정당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내세우는 정책과 이념이 성경의 가르침과 부합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지지할 수 없는 자들이다. 이를 알면서도 지지하는 것은 결코 신앙이라 할 수 없으며 그것은 자기 신념일 뿐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판단과 가치 체계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을 최고의 권위, 전제로 두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긴 내용이지만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⓵ 그리스도인은 정부와 위정자에 대하여 복종하며 순종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주어진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권세이기 때문이다.

⓶ ‘그리스도인이 어디까지 복종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그들이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을 때까지’라고 답할 수 있다.

⓷ 차별금지법안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반기독교적인 정책이다.

⓸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반기독교적인 정책을 펼치는 국가와 위정자에 대해서는 정당하게 불복종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지닌다.

 

노승주 전도사(리폼드미니스트리 대표)

rministry@naver.com

 

노승주  rminist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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