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성산생명윤리연구소 소장/ 의사평론가)

대한민국은 심한 중병을 앓고 있다. 어쩌면 이러다가 다 망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갖은 역경을 딛고 일궈놓은 대한민국이 불타 없어질 것만 같다. 비상식이 상식을 몰아내고, 악이 선을 누르고 있다. 국가를 지켜야 할 군인들이 오합지졸의 정치꾼이 되어 버렸다. 철책을 허물고 지뢰밭을 제거해 버렸다. 핸드폰과 편안함으로 군인정신을 무장해제 시키고 병약한 군대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사일을 폭죽처럼 쏘아대며 핵으로 위협하고 있는데도 남 일처럼 말하고 있다. 돈에 눈이 멀어 전문가의 판단과 과학을 무시하고 있다. 멀쩡한 원자력 발전을 폐기하고 태양광발전으로 국토와 국민정신을 망가트리고 있다. 나라 꼴이 어떻게 되건 간에 돈과 권력에 취한 아귀처럼 자신들의 주머니 채우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바른 소리에 재갈을 물리고, 선비의 혀가 맵다고 선비의 혀를 뽑으려 한다. 총체적인 위기 상황이다. 국민을 위해 옷을 벗어야 할 사람들이다.
이런 위기의 중심에 전문직(의사, 법관, 성직자)의 비윤리적인 행위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정직함(honesty)과 진정성(integrity)을 가르쳐야 할 의대 교수가 논문 저자에 이름 끼워 넣기로 의학 논문의 권위를 떨어뜨렸다. 낙제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해괴하고 비상식적인 교육을 하고 있다. 의사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다. 공정한 법 적용으로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할 법관이 법치를 깨고 있다. 범법이 의심되는 자들의 계좌추적을 막고,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불의한 짓을 하고 있다. 신전의식(神前意識 Coram Deo)으로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동해야 할 성직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사람의 눈을 더 두려워하고 있다. 세속주의에 물들어 돈과 세상 명예를 쫓아가고 있다. 심지어 핵과 미사일로 위협하는 북쪽에 쌀을 전해주자고 설쳐대고 있다. 분별력을 잃은 목사들이다. 전문직답지 못한 행위(Unprofessional behavior)를 하는 전문직들이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이 너무 크다.

전문직으로 알려진 의사, 법관, 성직자들은 독특한 전문직 복장(흰 가운, 법복, 성의)을 입는다. 이들이 입는 복장은 일반 직종들이 입는 옷과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재판관이 입는 법복은 신을 대신하여 공정하게 인간의 죄를 판단하라고 신의 권한을 위임받은 표시다. 성의는 신자들에게 성례를 베풀 권한을 받은 것이고, 흰 가운은 인간의 몸에 칼을 대고 약물을 주입하는 권한을 신에게 위임받은 표시이다. 소명(vocation)을 받은 표식이다. 부족하고 미약한 인간의 모습은 흰 가운과 법복, 성의 속에 가려지고 신의 권위로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직자와 법관, 의사들은 단지 의식주를 영위하는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위임된 권위를 함부로 남용해서도 안 된다. 이에 걸맞은 윤리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신뢰받을 만한 생각과 판단을 하고, 행동을 해야 한다. 이를 두고 프로페셔널리즘( 전문직업성, Professionalism)이라고 한다. 프로페셔널리즘은 전문직의 인격이고 영혼이다. 인간에게 인격이 있듯이 전문직에게는 프로페셔널리즘이 있어야 한다. 인격이 떨어지는 사람은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영혼이 피폐한 사람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프로페셔널리즘을 상실한 전문직은 일반인들보다 더 큰 피해를 주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전문직 복장을 입을 자격이 없다.

법률가는 억울한 시민을 위해, 의사는 환자를 위해, 성직자는 세상에 지친 사람들을 위해 이타적 소명을 가져야 한다. 법관은 공정한 법치로 범법자들을 가려내야 한다. 사회질서와 정의를 지키고 시민들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 의사는 고통받는 환자를 위해 정직하고 윤리적이며 실력 있는 의사가 되어야 하고, 후배 의사들에게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 성직자는 신전의식을 가지고 언행일치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의사, 법률가, 성직자는 소명 받은 자들이다. 신이 하는 일을 대신 맡아 수행하는 자들임을 상기해야 한다. 전문직 소명의식은 소금의 맛과 같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길가에 버려지듯이 소명의식을 저버린 전문직들을 옷을 입을 자격이 없다.

시류에 영합한 전문직들은 프로페셔널리즘을 잃어버린 자들이다. 타락한 전문직은 죽은 물고기처럼 물살에 떠내려간다. 살아있는 전문직은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 아무리 힘들어도 소명의식을 가지고 프로페셔널리즘을 생명처럼 지켜나간다. 비록 소수지만 깨어있는 전문직이 보여주는 올바른 프로페셔널리즘은 큰 울림과 희망을 준다. 무너진 기준과 원칙을 바로 세우고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일할 맛을 나게 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전문직다운 목소리와 맛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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