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의사,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소장)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후 현재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개원하고 있으며, 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의사 평론가로 여러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방송 출연과 윤리 강연, 저술 활동(이명진원장의 의료와 윤리 II 외 3권)을 하고 있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20년 12월 31일까지 새로운 법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생명을 죽이는 낙태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어지게 된다. 1년 반 정도 남은 기간 안에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 큰 부담을 가지고 있다. 세상 사조에 맞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이 땅에 보내신 귀한 생명을 살리는 일은 성도들의 시대적 사명이 되었다. 세속화되어가는 세상 풍조를 바로잡고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왜 이러한 상황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먼저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나온 배경을 알아보고 다음으로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세계관 충돌 현상의 하나인 낙태 문제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밀려오는 반 기독교적 사조에 맞서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나온 배경

이번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은 부산의 한 산부인과 의사가 2013년 11월 1일경부터 2015년 7월 3일경까지 69회에 걸쳐 낙태하였다는 등의 범죄 사실로 기소되면서 시작됐다. 이 의사는 형법 제269조 제1항, 제270조 제1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면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으나 그 신청이 기각되자, 2017년 2월 8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2012년 합헌 판결과 달리 7 대 2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낙태에 대한 처벌 조항인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에 대하여 위헌 결정을 했다. 이 위헌 결정은 많은 생명운동 단체와 종교계, 법조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 배경에는 형법 269조와 270조뿐만 아니라 모자보건법과 시행령이 있다. 모자보건법은 1973년에 국민적 합의 절차 없이 비상 국무회의에서 제정된 법이다. 위법성 조각사유(위법이지만 처벌하지 않는 예외 조항)를 적용해 낙태를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을 국민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만들게 된 것은 당시 4.5명으로 높았던 출산율 때문이다. 실은 모자보건법은 출산 억제를 목적으로 제정된 낙태 촉진법이나 다름없었다. 정부가 강력한 출산 억제 정책을 펴던 시절에 낙태를 장려해서라도 출산율을 낮추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긴 것이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출산율은 10여 년 만에 2명 이하로 떨어지는 사상 유례가 없는 감소율을 보이다가 현재의 출산율 0.9명의 초저출산 사회를 초래한 법률이다. 모자보건법에서 낙태 허용 사유로 삼은 기준도 의학적으로 맞지 않거나 윤리적으로 허용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으나, 아무도 잘못된 규정을 고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낙태에 대한 처벌이 여성(형법 260조 1항,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과 의료인(형법 270조 1항 2년 이하의 징역)에게만 한정되어 있었던 점이다. 외국의 경우 임신을 하게 된 남성에 대한 책임이 법으로 이미 정해져 있어 여성만 처벌을 받는 불평형성을 해소하고 있다. 바로 이 부분이 아킬레스건이 되어 헌법 불합치까지 가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진영에게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충돌하는 세계관

고대부터 생명 경외 사상이 여러 문화와 종교를 통해 전해지고 있었지만 실천 윤리로 자리를 잡은 것은 2차 세계 대전 이후다. 당시 나치의 인체 실험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소중함이 추락할 때까지 추락했고 이로 인하여 인류가 허용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자성을 통해 기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생명 윤리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깨달음은 인류가 할 수 있다고 해서 어떠한 일이든 해서는 안 되며, 눈앞에 큰 이득이 보이는 것 같지만 넘지 말아야 할 영역이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인류는 지켜야 할 기준을 만들어 서로 약속하고 지켜가고 있다. 이런 합의의 기조에는 성경적 세계관이 역사적으로 정초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자성의 움직임도 잠시 뿐이었다. 과학의 발전과 함께 인간의 욕망과 호기심은 생명 윤리를 위협하는 사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이로 인하여 인간 생명의 존엄함과 소중함이 훼손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조가 기독교적 세계관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 윤리 혹은 상대주의 윤리이고 유물론이다.

사회가 윤리적 상대주의와 유물론을 받아들일 경우 생명 윤리 문제들을 더욱 악화시킬 뿐 아니라 절대 가치와 기준을 해체하자는 현대의 포스트모던 사조에 빠지게 된다. 절대적 기준, 곧 인간의 존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사상적 터전을 상실한 채 생명을 살리거나 지킬 수 없다. 현대 시대는 한마디로 세계관의 전쟁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세계관 전쟁에서 패배할 경우 생명 경시 사상이 팽배하게 된다. 인류를 지켜온 절대 가치인 생명의 가치와 성 윤리가 무너지게 되고, 생명 가치와 성 윤리가 무너지면 가정이 해체된다. 가정이 해체되면 결국 교회와 나라와 문명이 파괴되는 도미노 현상을 발생시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관의 전쟁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현대 시대에서 기독교 세계관과 전쟁을 하고 있는 포스트모던 주의자들(푸코 (Foucault, Michel), 데리다(Jacques Derrida), 바르트(Roland Barthes), 로티(Richard Rorty), …등)은 신학적으로는 무신론자, 철학적으로는 회의론자, 도덕적으로는 상대주의자, 생물학적으로는 진화론자, 심리학적으로 무영혼주의자, 법적으로 실용주의자, 정치적으로는 좌파이다. 낙태와 동성애 옹호, 안락사 주장 등이 윤리적 상대주의와 유물론, 진화론 등과 좌파 사상의 흐름 속에서 같은 맥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외부로 책임을 돌린다는 특징을 갖는다. 가정이 여성을 억압하기 때문에 가정을 해체해야 하고, 임신이 여성을 고통스럽게 하고 억압하기 때문에 낙태를 해야 하고, 언어와 사회 질서와 전통이 나를 억압하기 때문에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남녀의 생물학적 성까지 부정하려고 한다.

유물론자들과 윤리적 상대주의자들이 세계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제일 먼저 시작하는 것은 교육을 통한 세뇌 작업이었다. 좌파들의 행동이 여기에 속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인데 그는 진지전과 기동전을 주장했다. 먼저 진지전을 통해 숨어서 사람들에게 세속적 세계관을 주입시키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해체해 간다. 교육과 함께 진행되는 작업 영역이 문화 영역인데 감성적 접근과 반복적인 정보에 노출시켜 사람들의 윤리적 민감도를 낮추어간다. 진지전을 수행하다 때가 되면 진지 밖으로 나와 활동(기동전)을 펼치는데 교육과 문화를 통해 지지층을 확보한 후 법을 만들어 강제적으로 자신들의 세계관을 주입시키고, 기존의 세계관을 해체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 시작한다. 기동전을 펼쳐 세상을 점령해 가는 것이다. 대한민국도 생명윤리 분야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걸쳐 진지전과 기동전의 전쟁이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9명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구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이러한 흐름 속에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제도와 법은 성경적 세계관이 바탕이 되어야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처럼 낙태가 자유로운 나라에서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과 관계없이 낙태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위기가 기회가 되는 것처럼, 이번에 법과 제도를 잘 만들어 놓으면 여성과 태아가 보호받고 낙태가 줄어드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낙태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이 없는 나라는 세계에서 몇 나라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허용된 범주를 벗어난 낙태 행위에 대해서는 생명을 죽인 범죄로 엄중한 처벌 기준을 만들고 시행해야 할 것이다. 낙태는 생명을 죽이는 행위이기에 전 세계적으로 전면낙태를 허용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대부분 매우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또한 제한적인 낙태를 허용하더라도 낙태에 대한 상담을 꼭 해야 하고 상담 후 1주일 이내의 숙려 기간을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일부 나라에서는 낙태가 상업적인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상담 의사와 시술 의사가 달라야 한다고 법에 규정하기도 한다. 미혼모에 대한 지원도 실질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낙태를 선택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한 데 임신한 어린 학생들을 배려하는 별도의 학교 시설을 만들어서 몸과 마음을 보살펴주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또한 출산 후에도 아이를 잘 양육할 수 있도록 직업 훈련도 준비해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낙태를 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세계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성교육은 완전히 실패한 정책이다. 콘돔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을 성교육으로 알면 안 된다. 인체 구조에 대한 지식이나 피임 교육, 피임약 제공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온 인류가 창조 때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성경적 세계관에 입각한 성교육이 필요하며 생명은 성을 통해 나오기에 올바른 성 윤리와 성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성을 단순한 의학적 관점이나 생물학적 관점으로만 바라보면 안 된다. 성에 대한 생리학적 작용과 해부학적 지식만으로는 성을 잘 다룰 수 없다. 성은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지만 항상 책임이 따르는 영역이기에 생명에 대한 존중과 이에 필요한 기독교 윤리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성경적 세계관의 실천

1973년 미국의 로 대 웨이드 판결(여성의 낙태 선택권을 인정한 판결) 이후 미국에서 낙태된 수가 약 5,800만 건이라고 한다. 미국의 신실한 크리스천들은 이 판결 이후 급속한 성 윤리의 타락 현상과 급증하는 낙태율을 지켜보면서 포기하지 않았다. 성경적 세계관을 고수하며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그루터기로 남아 있었다. 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기도하고 외치고 사회를 설득해 왔다. 이런 신실한 성도들의 노력으로 미국 전역에서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들이 각 주에서 속속 발의되고 또 제정되고 있다. 낙태 찬성이라는 역사의 진자를 생명 존중의 방향으로 옮겨 놓고 있다. 최근 “Unplanned”라는 낙태 반대 영화가 주목을 끌고 있는데 생명의 소중함과 반인륜적인 낙태의 실상을 알게 해 주는 영화다. 이 영화를 여러 곳에서 상영하며 낙태 반대 운동을 하는 단체 대표의 고백이 큰 울림으로 전해진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지키는 사명자가 나오게 해달라고 30년 넘게 기도했왔다고 한다. 대한민국 크리스천들도 철저한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기도하고 실천해 나갈 때, 대한민국에서도 낙태 찬성의 분위기가 생명을 존중하고 태아와 여성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돌아설 것으로 확신한다.

죽은 물고기는 물살에 떠내려가고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 교회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 거친 세상 공격에 맞서 물살을 가르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낙태와 동성애, 성 윤리에 관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깨어나야 한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빌립을 만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가(행 8:31)”라고 물은 것처럼, 성도들은 물밀 듯이 밀려오는 윤리적 문제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른다. 목사와 장로, 청년 교사들이 먼저 공부하고 올바른 성경적 세계관을 갖추고 성도와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 성도들이 신앙과 삶이 일치하도록 성경적 세계관을 알려주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성을 가정을 이룰 배우자를 위해 잘 지켜야 하고, 혼전 성관계를 해서는 안 되며, 부부의 성생활도 질서를 지켜 지나친 성적 욕망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성도들도 강연을 듣고, 책을 읽고, SNS를 통해 의견을 표현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행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낙심하지 않고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푯대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행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에스겔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경고를 마음에 새기고 입을 열어 그들이 듣던지 아니 듣던지 외쳐야 할 때다. 복음만이 대한민국을 살릴 수 있다. 조국 교회와 대한민국과 쓰러진 열방 교회를 회복시키는 사명이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한 새벽이슬 같은 깨어있는 청년들의 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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