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의 성경적 개념

신요한(새언약교회 전도사)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한일관계를 바라볼 때 정치와 외교적인 안목도 필요하지만, 이것들의 전제를 검토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전제에 대한 성경적 검토를 거치지 않은 채 단순히 정치∙외교의 현안으로만 한일관계를 소급하고 접근하는 것은 성경적일 수 없다. 세속과 차별 없이 일반적인 의미에서만 다루어진다면 우리는 공리주의의 덫에 걸리고 만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으로 요약할 수 있는 공리주의는 쾌락주의의 발전된 형태로 규정할 수 있는데 현대공리주의는 규칙공리주의로 발전하였다. 이것은 칸트의 이성윤리에 정초하는데 즉 인간의 이성 자체가 보편타당의 절대적 기준이 된다. 이 전제가 공리주의의 기반을 이룬다. 규칙공리주의는 행동규칙 그 자체의 유용성을 탐구한다. 즉 행동규칙들은 사회적 공동생활을 위한 조건에 속하기 때문에 개인을 넘어 집단적인 전체 유용성이 기준이라고 본다.1)

공리주의의 정의를 살펴본 이유는 정치와 외교 모두가 ‘국익’을 위한 것인데 이 ‘국익’이 이러한 규칙공리주의에 정초하기 때문이다. 즉 개인의 손익은 국가의 손익에 우선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국가라는 거대집단의 보편타당한 기준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보편적인 국익의 잣대가 무엇인가? 예를 들어 혹자는 국익을 위해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불매운동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이 대대적으로 경제압박을 하면 수출규제 철회를 이끌어낼 수도 있고 이를 계기로 국내 기술을 발전시켜서 경제자립을 이루는 강국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불매운동은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다. 일본은 미래의 발전을 위해 협력해야 할 대상이며 불매운동의 체감 피해는 일본보다 우리가 더 많이 떠안게 되고 일본제품을 불매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여 경제 효용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두 입장 모두 국익을 전제한다. 그러나 이렇게 두 입장이 충돌하는 이유는 행동규칙이 속해 있는 집단의 성질이나 개념이 서로 상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가? 그리스도인은 국가에 속하기 전에 하나님 나라와 보편교회에 속해 있다. 따라서 우리의 먼저 된 행동규칙은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유용성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공리, 즉 국익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것이다(마 6:33). 그리스도인에게 이보다 우선하는 국익은 없다. 그러므로 한일관계를 다룰 때도 우리는 민족과 국가 이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보편타당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에도 만연한 반일 이데올로기가 과연 하나님 나라와 보편교회에 기여하는가?

 

역사에 나타난 한일갈등의 성경적 해결

당장 일본이 수출규제를 철회한다고 해서 한일갈등이 해결된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1편에서 말했듯 일본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준다고 해도 갈등이 해소될 것이란 보장도 없다. 반일감정이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어서 쉽게 해소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양국의 적지 않은 화해의 시도가 있었음에도 반일정서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그로 말미암는 반복되는 한일갈등의 오랜 실마리를 풀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한일갈등의 이러한 지독한 병폐는 성경적으로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것은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인간의 죄성에 있고 구체적으로는 서로를 향한 증오의 감정에 있다. 우리는 올해 일제로부터 해방한지 74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반일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지만 정작 일제 치하에 있던 우리의 선조들은 이 반일감정을 제어하고 성경적으로 접근하기를 힘썼다. 다음은 기미독립선언서의 일부이다.

“병자수호조약 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갖가지 약속을 배반하였다 하여 일본의 신의 없음을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우리 옛 왕조 대대로 닦아 물려 온 업적을 식민지의 것으로 보고, 문화 민족인 우리를 야만족같이 대우하며 다만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 기초와 뛰어난 민족의 성품을 무시한다 해서 일본의 의리 없음을 꾸짖으려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이 없다. 현 사태를 수습하여 아물리기에 급한 우리는 묵은 옛일을 응징하고 잘못을 가릴 겨를이 없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오직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요,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남을 시새워 쫓고 물리치려는 것이 아니로다.”2)

기미독립선언서에 따르면 일본이 조선을 침탈했던 이유는 ‘일본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의 죄성에서 비롯된 ‘정복의 쾌감’ 때문이었다. 선조들은 국가로써의 일본과 일본인들의 죄성을 구별할 줄 알았다. 우리는 아직도 일본을 전체주의적으로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지만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위에서 살폈듯이 국익이 정초하는 공리주의가 쾌락주의의 발전된 형태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인간의 죄성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국익을 오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국익을 핑계로 불매운동을 통해 증오의 감정을 합리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정복의 쾌감이라는 죄는 일본 정부의 ‘공리’가 되어 ‘제국주의’로 발전되었을 뿐 만약 조선도 부강한 나라였다면 정복을 꾀하여 과연 제국주의의 길을 가지 않았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이러한 죄성에서 모두가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선조들은 일본의 잘못을 정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또한, 선조들은 일본의 제국주의가 ‘낡은 사상’3)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일본이 제국주의에 몽매한 사이 이 시대 인류 공통의 가치가 더이상 제국주의가 아니라 ‘정의’와 ‘인도’라는 것을 먼저 알았다.4) 일본보다 시대를 앞서간 것이다. 어떻게 우리 선조들은 일제 치하라는 제한적인 환경에도 불구하고 일본보다 앞서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갖고 있었을까? 이에 대해 필자는 독립선언에 참여한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선조들은 일본을 위력으로 무찌르기보다 일본이 ‘낡은 사상’으로부터 돌아오기를 바랐으며 다시 일본과 우호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했다. 따라서 선조들이 먼저 한 일은 일본을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를 반성하며 선진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힘썼다. 결국, 이것은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기독교의 가치를 기반한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열매 맺게 되었다.5) 이를 통해 우리는 대부분의 선조들이 행동규칙의 공리를 기독교, 곧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독립선언이 있던 1919년 3월 1일을 건국일이라 주장하는 현재 진보진영은 정작 독립선언서의 정신을 본받지 않고 여전히 반일감정을 조장하는 것에 힘쓰고 있으니 이상한 노릇이다.

일제시대의 선교사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성경적인 교훈을 도출할 수 있다. 1909년에 선교사들은 평양에서 일본 정부에 대하여 중립적인 태도를 취할 것으로 결의하였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반일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국인들에게 무력으로는 독립을 이룰 수 없으니 일본에게 무력으로 대항하지 말라고 권고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선교사들의 태도는 당시 한국인들에게 친일적인 태도로 보였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강한 불만을 샀다. 하지만 선교사들이 반일적인 행동을 취하면 일본 정부의 압박을 받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선교사업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6) 선교사들에게는 한국인들의 오해와 시비에 부딪히더라도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일본을 자극하지 않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훼방하기 위해 선교사들의 중립적인 태도를 악용하여 자국을 선전하는 데에 써서 한국인들의 반일정서를 자극하였고 선교사들의 깊은 고민과 일본의 계략을 헤아리지 못했던 한국인들은 이 때문에 반일감정이 증폭되고 선교사들을 개탄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7) 만약 선교사들이 반일에 동조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일본은 한국교회를 더 강하게 핍박했을 것이고 오늘날과 같은 한국교회의 성장은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조심스럽게 일본을 대했던 선조들과 선교사들의 본을 따르고 있는지 재고해야 한다. 우리는 한일관계에 있어서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유독 일본에게 쉽게 정치적 감정을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한편 일본교회 지도자들은 지속적으로 과거사에 대해 한국에 사죄하고 있고 최근에도 일본의 무역보복을 대신해 한국에게 사죄했다.8) 한국 내부에서도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에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고 있음에도 정작 일본교회 지도자들은 강제동원 판결이 마땅한 것이었다며 사죄했다. 그들은 일본의 정치적 국익이 아닌 하나님 나라라는 성경적 국익을 위해 사죄했다. 반면 불매운동으로 소요를 일으키고 일본을 감정적으로 자극한 것에 대해 한국교회는 한국을 대신해 일본에게 사죄했는가? 혹여 암묵적으로 한국교회가 사과를 받아야 하는 입장만 생각하고 사과를 해야 하는 입장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면 필자는 개인적인 답답함을 감추기 어려울 것 같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일본교회에 비해 한국교회가 한일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는지 발견하기 어려웠다.

 

교회가 유일한 대안

상기했던 역사들이 우리에게 주었던 교훈은 정치와 외교의 본질적인 문제해결의 열쇠가 세상 정치가 아니라 교회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한일관계도 양국의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지속적으로 합력하여 갈등 회복에 힘써야 한다.

한국교회는 일본을 더이상 민족적, 정치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유용성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라는 공리를 공유하는 일본교회와 합력하여 정치계와 사회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교회 내에 만연한 반일정서와 민족주의 사관을 탈피하여 세계사 구조 속에서 객관적이고 성경적으로 역사를 보는 자세를 갖추고 일본교회와 역사인식을 먼저 줄여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또 한국교회는 일본교회의 사죄를 겸허히 받되 그동안의 한일관계 악화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서로 사죄하는 겸손한 모습이 있어야 하며 일본의 복음화에 대한 전략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일본에 파송된 한국선교사들은 서양 선교사들이 우리에게 보여줬던 본을 따라 반일, 반정부적인 태도를 철저히 지양하고 교회를 힘써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 열쇠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공리를 지향하는 말씀과 교회에 있음을 다시 한번 확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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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1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기독교 윤리의 기초』 오성현 역, (2판; 한돌출판사, 2015), 71-72.

2 1919.3.1. 『기미독립선언서』

3 낡은 사상과 묵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에 희생된, 불합리하고 부자연에 빠진 이 어그러진 상태를 바로잡아 고쳐서, 자연스럽고 합리로운, 올바르고 떳떳한, 큰 근본이 되는 길로 돌아오게 하고자 함이로다. - 『기미독립선언서』 중

4 "인류 공통의 옳은 성품과 이 시대의 지배하는 양심이 정의라는 군사와 인도라는 무기로써 도와 주고 있는 오늘날” - 『기미독립선언서』 중

5 이승만 박사는 1903년 신학월보 『두 가지 편벽됨』에서 교회는 정부의 근원이라고 주창했다.

6 김영재, 『한국교회사』 (3판; 합신대학원출판부, 2017), 203-204.

7 이승만, 건국60년출판위원회 편, 『한국교회핍박』 (1판; 청미디어, 2008), 79-83.

8 장창일, “일본교회 대표들 “경제 보복은 부당… 한국에 사죄”, 국민일보, 2019.08.12,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92565&code=23111111&sid1=c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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