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은 끝이며, 말씀은 시작이다.

이기업 목사/ 이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미주고신 복음대학교와 게이트웨이 신학대학원에서 구약과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얼바인중앙장로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어 야곱은 모든 소유와 70여 명의 자손들을 이끌고 가나안에서 애굽을 향한 여정에 오른다. 야곱 일행이 도착한 곳이 브엘세바이다. 거기서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린다. 제사를 드린 밤에, 하나님께서 이상 중에 야곱에게 나타나셨다. 이 비전(divinevision; visio Dei)은 요셉의 스토리(37-50장)에 등장하는 유일한 비전(이상)이면서, 동시에 창세기 전체에서 마지막 비전이다.

이 비전은 말씀이며, 이 말씀은 위로와 약속의 하나님 자신의 언약적 계시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창 46:3-4)

이 말씀은 야곱의 자손 70여 명을 이끌고 애굽을 향한 여정에서 발생한 하나님의 말씀 비전 사건이다. 야곱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을 가진 것 같다. 죽었던 것으로 알았던 사랑받는 아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고 그 아들을 보러 가는 여정이며, 자신의 모든 자손들을 기근에서 구원하는 길임에도, 즉 그러한 물질적 번영과 육체적 생명이 보장된 길임에도 족장 야곱에게는 평안함이 없는 것 같다. 그의 마음을 다소 무겁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언약 성취 여부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애굽으로 간다면, 잃어버린 아들과 회후하고 자손들의 풍요가 예상되는 길임에도, 그 길이 과연 하나님의 언약(땅과 자손의 복) 성취를 막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인 것 같다.

그러한 야곱에게 나타난 창세기의 마지막 비전 곧 "브엘세바의 비전"이 열렸다. 브엘세바의 비젼은 그러한 야곱에게 맞춤형 위로의 말씀이다. 즉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큰 민족을 이루시기 때문이다. 위로의 말씀에 이어 3가지 약속이 이어진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시겠다는 인도, 동행, 보호의 약속이다. 둘째는 야곱(유해)과 자손들(족장의 포괄적 인격)의 미래 출애굽에 대한 약속이다. 그리고 셋째는 사랑하는 아들 요셉의 손으로 눈을 감기는 평안한 임종의 약속이다. 요컨대, 야곱과 그 언약공동체의 웰빙의 약속과 웰다잉의 약속이 보장된 길이다. 처음과 마지막이 보장되었으니, 이 얼마나 완벽한 약속인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언약 공동체, 새 이스라엘 공동체가 된 우리의 미래 여정으로서 애굽은 어디인가? 현재의 기근의 상황에서 나아갈 애굽은 어디인가? 미래의 불확실함 앞에서 염려와 두려움이 엄습할 때, 우리에게 있는 브엘세바의 비전은 어디에 있는가? 창세기의 마지막 비젼은 '위로와 약속'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로는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언약 성취에 대한 맞춤형 위로의 말씀이다. 약속은 언약적인 웰빙과 웰다잉에 대한 약속이다. 이와 유사한 우리의 애굽의 여정을 앞두고 짓누르는 두려움과 염려를 떨쳐버릴 수 있는 힘은 창세기의 마지막 비전 곧 브엘세바의 비전, 곧 위로와 약속의 말씀으로 무장될 때 가능하리라!

시간적으로 세속 월력의 마지막 달 연말이다. 교회력으로 시작의 절기 대강절/성탄절이다. 일반적으로 연말은 마무리의 시간이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한다. 연초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그러나 '시작의 책(창세기)의 마지막 비젼'에서 보듯이, 시간 중심으로 '애굽을 향한 시작'과 '가나안의 마지막'을 만들지 않는다. 말씀 중심으로 '여기서' 깨끗한 마무리가 있고 말씀 중심으로 '거기서' 새로운 시작이 전개된다. 말씀은 끝이며, 말씀은 시작이다. 어떠한 시간적 경과 속에서, 즉 시작의 달이나 중간의 시점이나 혹 마지막 달이거나, 시간이 우리의 시작과 나중이 아니라, 말씀의 오심이 우리의 마지막과 끝을 결정한다. 말씀이 시간을 창조하고 말씀이 사건을 창조한다. 말씀이 육신되어 오신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처음과 나중이시다! 말씀은 곧 종말론적 인격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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