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변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지난주 버락 오바마의 민주당 대선후보 수락은 그 변화의 질과 속도가 어떠한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미 대륙에서 흑인이 투표권을 따낸 지 139년 만에 이뤄진 일이요, 킹 목사가 "언젠가는 나의 아이들이 피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격에 의해서 판단되는 날이 이 땅에 올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다"고 심금을 울린 지 45년 만의 일이다.

한 세대 전에 그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모든 인종으로 어우러진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꿈인 풋볼 경기장에 구름떼처럼 모여들어 한 젊은 흑인의 민주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 환호하고 열광할 줄은 어떤 정치가도, 미래학자도 예견하지 못한 일이다. 알래스카 주지사인 세라 팰린이 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된 것도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기는 마찬가지다. 44세라는 젊은 나이도 그렇지만, 여성이 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된 것도 처음이다.

이제는 미 정계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오바마라는 한 흑인 젊은이의 등장은 4년 전 국민을 울고 웃게 만들었던 월드컵에서 '꿈은 이루어진다'는 구호를 상기시킨다. 부모의 이혼과 재혼, 의붓 아버지를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살다가 다시 하와이에 있는 조부의 손에서 자라는 변화무쌍한 삶의 이력 속에서도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그가 대선후보수락 연설에서 말했던 "꿈은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섯 명의 자녀를 키우면서도 험한 정치판에 거침없이 뛰어든 세라 팰린 역시 공화당 내에서 무소속이라고 부를 정도로 개혁 성향의 인물로, 부패와의 전쟁을 주도하면서 자녀 세대에 청정한 나라를 물려주고자 하는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모든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 모든 꿈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도 아니다. 불의와 사심에 기반을 둔 꿈은 이루어질수록 세상은 상처받고 비참해질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꿈은 그 속에서 사람들이 희망을 발견할 때다. 이기적인 꿈, 음험한 꿈, 간교한 꿈에서는 희망을 볼 수가 없다. 당파적인 꿈, 남을 딛고서는 꿈, 유아독존의 꿈에도 희망은 없다.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 꿈꾸는 힘이 없는 자는 사는 힘도 없다. 그러나 그 꿈은 자신을 넘어서고 닫힌 세상을 여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불가항력적인 환경 속에서 닫혀진 수많은 꿈들이 다시금 희망의 꿈을 꿀 수 있도록 밀어주고 끌어주는 세상이다.

언론매체마다 나라가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연일 보도하고 있다. 현재와 미래의 경기를 알려주는 경기동행지수와 경기선행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6개월 연속 동반하락하고 있다. 이것은 IMF 위기 때에도 없었던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가 암울하다면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경기침체 때문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와 이웃을 위해서 자신을 넘어서는 진정한 '드리머(Dreamer)'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상이 각박해지는 것은 꿈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천박해지는 것은 자신만을 위한 꿈들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깊이와 품격을 갖는 길은 자신을 넘어 이웃을 살리는 살아있는 꿈들로 채워질 때다. 공의와 진리에 붙들린 꿈이라면 비록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심히 창대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요, 킹 목사의 꿈처럼 한 세대가 지나서라도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부터 날마다 믿음의 푸른 꿈을 가져야 한다. 자신을 넘어 이웃의 닫힌 꿈을 열어가는 이 꿈이 없이는 하룻밤도 잠들지 말고 깨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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