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종교개혁자였던 얀 후스(John Hus: 1372∼1415)는 당시 관행처럼 행해지던 성직 매매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고 개혁을 요구했다. 그는 오직 성경만이 모든 진리와 제도의 유일한 기준이라며 이에 어긋나는 성직 매매를 즉시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스의 개혁을 향한 외침은 결국 그를 화형장의 제물이 되게 했지만 교회 역사는 그런 인물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고 후세의 귀감이 됐다.

사실 교회 역사에는 이와 같은 성직 매매를 예방하고 근절하기 위한 여러 조치들이 있었다. 칼세돈 공회(AD451)에서는 이를 법령으로 금지하기도 했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성직매매에 연관된 사람들을 이단이나 신성모독의 죄와 동일하게 취급해 파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문제가 근절되지 않아 결국은 중세 종교개혁의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된 것을 보면 돈으로 성직을 사고 다시 이 성직을 세속적 권력과 물질을 획득하는 수단으로 삼으려 하는 이들의 집요함을 다시 느끼게 된다.

오늘날의 우리 모습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성직 매매적 요소가 주변에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9월이 되면 우리나라의 대표적 교단들이 매년 개최하는 총회들이 여기저기에서 열린다. 특히 장로교회의 총회는 1912년부터 면면히 이어온 역사가 있어 그 자체로 우리의 자랑이며 긍지이다. 민족 역사가 암흑기에서 고통당하고 있을 때 교회의 총회는 교회 안과 밖에 희망과 위로를 선물하고 역사의 새 방향을 제시하는 역사적 모임들이었다.

그러나 근자에 이르러 우리는 이런 대규모의 교단 모임이나 연합기관의 수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믿기 어려운 풍문들이 들려와 당혹하게 될 때가 있다. 금권선거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과 그 금액의 규모가 상상을 뛰어넘는 것에 다시 경악하게 된다. 만약 돈을 사용하여 교단과 연합기관의 수장에 진출했다면 현대판 성직 매매라는 비판 앞에 변명할 논리가 없어진다. 만약 그러하다면 우리는 이 역사적 과오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매우 분명해진다. 언제나 문제들이 있었지만 역사가 발전한 것은 스스로의 갱신 능력과 자정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닷물에 육지로부터 온갖 오물이 흘러들어가도 바다가 지닌 자정 능력이 있어 바다의 생명력이 유지되는 것처럼 교회에도 이 자기 갱신의 자정능력이 있어야 하고 이 능력이 있음을 역사 앞에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 교회를 향한 일반의 신뢰와 존경이 회복될 수 있고 교회가 세상의 희망일 수 있는 근거가 제시되는 것이다.

올 총회에서는 총대 스스로 갱신의지를 보임으로 교회를 향한 존경과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를 염원해 본다. 우리 모두가 초대교회 시절 성령의 은사를 돈을 주고 사려 했던 시몬에게 베드로가 일갈했던 말을 다시 음미하기를 제안한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행 8:2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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