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중반 서울 명동성당은 단순히 한국 천주교의 심장부가 아니었다. 많은 진보적 개신교회와 더불어 민주화 운동, 인권 수호, 사회 정의 실현의 성지였다. 정치적 이유로 박해받던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피난처, 안식처가 됐음은 물론이다.

1974년 '사제의 양심에 입각해 교회 안에서는 복음화 운동, 사회에서는 민주화와 인간화를 위한 활동'을 기치로 출범한 정의구현사제단은 정치 암흑기에 백성에게 빛이었다. 그때는 그 존재 자체가 국민들에게 위안이었고, 희망 전도자였다.

그 시절에 불교 사찰은 대체로 일반인의 관심권 밖에 있었다. 좋게 표현해서 불교는 정치적 중립을 견지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암울했던 정치 상황에 사실상 침묵한 때문이었지 싶다. 하여튼 친정부·친불교까지는 좀 그렇다 쳐도 불교와 정부의 관계는 우호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울 조계사에는 지금 '광우병 촛불시위' 주도자 7명이 석달 가까이 피신 중이다. 당초 8명에서 한 명은 8월 말 서울광장 범불교도대회 때 절을 빠져나갔다. 그는 조계사 앞까지 행진한 시위 인파에 묻혀 나갔다가 며칠 뒤 검거됐다.

"왜 이렇게들 무례하거나 비굴하리 만치 저자세인가. 과거 정권 때 지금 같은 종교 분란이 있었던가"

피신 후 수배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초등학생의 대통령 비난 방명록 작성, 진압 경찰을 겨냥한 염산병 투척 등을 부추긴 혐의도 받고 있다. 불교계는 이미 검거된 불법 시위 관련자와 수배자 선처를 후속 범불교대회를 자제하는 데 중요한 요구 조건의 하나로 제시했다. 이것이 옳은 일이고, 현 정부와 불교계의 화합에 진정으로 기여할지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선한 의도와 상관없이 세속의 법치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불교계 갈등 확산의 촉매가 된 것 중에 조계종 총무원장이 탑승한 차량을 검문했던 사건이 있다. 고약하게는 됐지만 그 일이 해당 경찰 근무자 징계나 경찰청장 파면으로 이어질 사안은 아닌 것같다. 결과론이지만 수배자 한 명이 몰래 빠져나간 사실에 비춰봐도 근무자로서는 본분에 충실했던 것이 죄라면 죄다.

짚어볼 게 또 있다. 명동성당이 민주화 성지였던 때와 지금은 다른 시대다. 정치·사회문화적으로 지금이 한 세대 전에 겪은 그 숨막히는 암흑기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방종과 자유를 구분하지 못한 탓에 거꾸로 무법, 무질서가 넘쳐난다. 경제 발전의 경이(驚異) 이상으로 적잖은 백성의 의식은 그렇게 '천지개벽'을 했다.

헌법에 명시된 대로 대한민국은 정치와 종교를 엄격히 분리한다. 교회와 국가, 정부와 종교, 종교와 정치가 명백하게 구분되는 나라다.

이명박 장로 대통령 정부가 들어선 이후의 상황 역시 이런 정의(定義)들에 결코 반하지 않는다. 극히 일부 사려 깊지 못한 언행이 오해를 부르고, 여기서 비롯된 불협화음이 거의 무제한으로 확대 재생산돼 '종교편향금지법'까지 운위하기에 이른 것이 작금의 종교 편향 논란 실체다. 그런데 왜 이렇게들 무례하거나 비굴하리만치 저자세인가. 비교적 불교에 우호적이었다던 과거 정권들 집권 때 지금 같은 분란이 있었던가.

'종교간 화평을 염원하는 기독교 목회자' 33명 이름으로 '기독교사회책임'을 통해 최근 발표된 '불교계에 드리는 글'을 다시 생각한다. 그보다 나은 진단과 해법이 없어 보여서다.

"종교 편향의 근거로 열거된 사례 중 사실이 아니거나 오해로 인한 것이 적지 않다. 종교편향금지법을 만들자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부작용을 검토해야 한다. 종교 편향으로 지목된 공직자들의 발언은 대부분 신앙공동체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기독교 내에도 많은 의견이 있지만 자기주장을 내세우기보다 인내와 절제로 종교 간 화평을 도모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불교와 기독교가 지속적으로 만나 흉금을 털고 생각을 나눔으로써 화평을 도모할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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