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자가 전국적으로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확진자가 가장 많이 나온 대구에서 어떻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할 수 있었는지를 조명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정부 부처의 지원, 민간 기업 및 단체들의 후원,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달려온 의료인들의 헌신, 고강고 거리두기에 동참하여 바이러스 확산 방지에 힘쓴 대구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 등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이번 기사에서는 코로나 치료의 일등공신이었던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대구동산병원은 지난 2월 18일, 대구 지역 첫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환자가 발생하자 빠르게 논의하여 21일 병원을 통째로 비우고 감염병 전담병원이 되겠다고 자처했다. 대구 31번 확진자의 동선이 확인되고, 지역사회 감염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을 우려하여 스스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물론, 대구 지역에서 대구 동산병원만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것은 아니다. 대구의료원·동산병원·경북대병원·영남대병원 등 10곳을 지정했다. 하지만 이 10곳 중에서 병상 전체를 비우고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한 곳은 대구의료원과 대구 동산병원 단 두곳이었다. 대구의료원은 시에서 운영하는 공공병원이지만, 대구동산병원은 정부에서 지원 받지 않는 민간 병원이다. 민간병원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을 포기하고, 코로나 확진자 치료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것이다.

대구동산병원 전경

대구동산병원은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를 위해 최초에 7개 병동 240병상을 갖추었고, 의료진 200명이 투입이 되었다. 이후 전국에서 온 의료 봉사 인력인 의사150여 명, 간호사 350여 명을 합하여 총 700여명의 의료진이 활동했다. 그동안 대구동산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는 4월 28일 현재까지 840명으로, 대구 전체 확진자의 10%가 넘는 수치이다. 경증 환자들은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생활치료센터에서 치료를 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실제적으로는 중증 환자치료에 큰 역할을 감당했다고 할 수 있다.

대구동산병원이 이렇게 전염병 치료에 헌신할 수 있었던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대구동산병원은 원래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이었는데, 지난해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부지에 병원을 신축하면서 병원을 이전했다. 병원을 이전하면서 많은 환자들과 의료진들이 계명대 동산병원으로 같이 이전했고, 기존에 있었던 병원은 대구동산병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치료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존의 환자들을 따로 치료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기에 136명의 환자를 반나절만에 계명대 동산병원으로 전원하여 치료할 수 있었고, 대구동산병원은 감염병 전담 병원으로 운영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계명대 동산병원이 한국에 복음을 전하러 들어온 선교사들에 의해서 세워졌기 때문이다. 1899년 미국 북장로교회에서 파송한 장인차(Dr. Woodbrige O, Johnson, 1869-1951) 선교사가 현재 약전골목 대구선교지부내 작은 초가집에서 '미국약방'을 열어 약을 나누어 주었고, 본격적인 치료활동을 시작하면서 제중원(濟衆院)이라는 족자를 내걸었다. 이것이 대구·경북 지역의 최초 서양의술을 제공하는 병원이 되었다.

제중원은 1903년 현재 대구동산병원이 자리한 동산동으로 이전했다. 나환자 구제사업, 풍토병치료, 천연두 예방접종, 사회보건 계몽에 힘쓰며 우리 민족이 겪는 고난과 아픔을 함께 나누었다. 또한 대구 최초의 의학교육실시, 제왕절개수술 시행 등 과학적인 의술을 통하여 제중원의 명성이 날로 높아졌으며, 대구 경북지역의 의료 발전에 힘썼다. 1921년에는 병원전도회를 만들어 지역에 147교회를 개척했고, 시골구석구석까지 무의촌 진료외 의료선교봉사를 실천했다. 전직원이 급여 1%를 내어 조성안 동산의료선교복지회는 오늘도 계속되었다. 이런 정신이 오늘날까지 계승되어 계명대동산병원과 대구동산병원은 기독교 병원으로써의 정체성을 유지하게 되었고, 복음 전파와 치유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민간병원으로써의 이익을 포기하고 코로나 치료를 위한 감염병 전담병원을 자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의료선교박물관(사진-대구시정홍보관)

계명대동산병원은 의료선교사들의 헌신과 노력을 기억하기 위하여 청라언덕(현 대구동산병원 부지)에 의료선교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선교박물관, 의료박물관, 교육역사박물관을 운영중이며, 그 중 의료박물관은 붉은 벽돌의 2층 집인데, 1906년에서 1910년 사이에 지어진 건축물로 미국인 선교사들의 주거 양식과 생활 양식을 알 수 있다. 현재는 대구시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의료박물관에는 하워드 맛펜 병원장의 침실, 서재, 조선시대 수술도구(1904년대), 마취기(1950년대), 간접 방사선 촬경기 Tube(1950년대) 등을 비롯하여 1800년대부터 1900년대에 이르는 많은 동서양 의료기기등이 소장되어 의학의 발전상을 엿볼 수 있다.

한편, 대구동산병원은 기독교정신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에 전적으로 헌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이 산적해 있다. 연말·연초에는 수술 등이 다수 잡혀 월 40억원 정도의 매출을 내곤 했으나, 정부에서 코로나 치료로 인한 손실금을 보전해주겠다고는 하지만 구채적인 액수 등 정확한 지침이 아직 통보되지 않고 있다.  코로나 치료비는 일반 치료비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경영 악화를 피해갈 수 없다. 건강보험공단에서는 3월과 4월 대구동산병원의 매출을 월 평균으로 계산해 20억 2000만원을 지난 달 초에 선 지급했지만, 차액을 돌려달라고 요청받을 경우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다. 경영난을 우려하여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 식당 조리원 등 계약직 직원 50명을 해고 통보했다가 언론과 정치인들에 의해 역풍을 맞게 되자, 다시 채용하는 상황도 발생하게 되었다. 민간병원으로 손실을 감수하고 코로나 치료에 최전선에 뛰어들었다가 경영난을 맞닥뜨리게 된 상황이라, 정부의 적절한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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