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일 동안 낙동강 방어선을 지탱하게 힘은 바로...

 

올해는 6·25전쟁 발발 70주년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이미 사전에 중국 및 소련과의 이야기를 끝낸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제공받은 전차를 앞세워 38도선을 넘어 침략을 감행했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은 1953년 7월 27일에 휴전이 되었고, 그 이후 지금까지 남북이 분단된 상태로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료에 다르면, 국군 사망자는 약 13만 8천명,  부상자는 약 45만 명, 포로는 8343명이고, UN군은 연인원 기준 약 195만 명이 참여하여 미군 3만 6940명, 영국군 1078명, 터키군 966명, 캐나다군 516명이 사망하였고, 실종자와 포로, 부상자는 10만 명이 넘는다. 6·25전쟁을 직·간접적으로 참전한 국가는 63개국으로 알려졌다. 북한군 사망자는 52만 명, 중공군 사망자는 14만8600명, 부상자는 80만 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70년 전 온 나라가 포성과 비명으로 뒤덮일 때, 우리의 선조들은 무엇을 위하여 총을 들고 맞서 싸웠으며, UN연합군은 무엇을 위해 이 전쟁에 참여하였을까? 6·25전쟁 발발 이후 일본 도쿄 사령부에 머물고 있던 맥아더 장군이 한강방어선을 시찰하고 있을 때 만났던 한 병사의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맥아더 장군이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던 한 병사에게 "다른 부대는 다 후퇴했는데, 자네는 언제까지 여기 지키고 있을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그 병사는 "상관의 명령 없인 절대 후퇴하지 않을 것입니다. 철수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죽어도 여기서 죽고 살아도 여기서 살 것이다."라고 말한 후 "총과 실탄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병사의 말에 감복을 받은 맥아더 장군은 한국군을 적극 지원키로 마음먹고 이후에 한국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이 일화의 주인공은 故 신동수씨임이 밝혀졌다.

6.25전쟁에 헌신한 인물들(사진=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 위원회)
6.25전쟁에 헌신한 인물들(사진=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 위원회)

신동수씨는 무엇을 위해 젊음의 나이에 군인이 되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는가? 신동수씨 이외에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무엇을 위해 전국의 하늘과 바다, 산과 들, 전국 방방곡곡에서 자신의 생명을 산화하면서까지 조국을 지키려고 노력했는가? 국토의 10% 밖에 남지 않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55일 동안 낙동강 방어선을 지탱하게 하였는가? 무엇이 아직 학생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명을 바쳐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서 포항 장사리에서 위장 상륙작전을 펼치도록 하였는가? 무엇이 군인들을 수십만 발의 포화 가운데서도 한 뼘의 땅을 더 차지하기 위해 고지로 향하게 하였는가? 한 단어로 요약하면 '자유'다. 이제 막 일제의 침략 가운데 해방되어 나라 다운 나라를 세우는 것을 꿈꾸며 '자유'를 누렸는데, 북한의 침략으로 인해 '자유'에 대한 꿈이 산산조각 나게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이 땅의 수많은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합심하여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초개같이 던질 수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를 적극적으로 도운 미국을 비롯한 UN 연합군도 마찬가지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전 세계는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와 사회주의(공산주의) 양 진영으로 나누어졌다. 당시 한반도는 특수한 정세에 있었는데, 38도선 이북은 소련을 후견국으로 하는 북한이 공산국가를 건설하였고, 38도선 이남은 미국을 후견국으로 하는 남한이 자본주의국가를 건설하였다. 당시의 냉전의 축소판이 한반도였다. 이때, 소련의 후원을 입은 북한이 남한을 기습하자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 국가는 남한이라는 작은 땅이 사회주의 국가에 점령당하지 않도록 지원을 한 것이다. 당시에 미국의 주요 정계 지도자들은 북한의 기습남침이 유엔과 미국의 지도력에 도전하는 것이며, 세계의 경찰 국가로서의 위상에 대한 공산진영의 첫 도전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유엔도 세계 평화를 파괴한 공산세력의 침략행위에 대해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유엔의 정체성이 흔들릴 것을 고려해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물론 미국과 유엔은 각각 자신들이 가진 의도를 달성하기 위해서 6·25전쟁에 참전하였지만, 이 땅의 자유와 진정한 평화를 위해 함께 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자유'를 갈망했던 사람들의 헌신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한국은 지도상에 있을 수 없을 것이고, 우리 또한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하는 '신앙의 자유'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자유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진정한 자유를 갈망한 앞선 자들의 피 위에 자유 대한민국이 세워졌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감사해야 한다. 아울러 경제 개발 시기에 '자유'의 바탕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던 산업의 역군들의 피와 땀을 통해 자유대한민국이 세워질 수 있었다는 것과 명목상의 자유가 아니라 진정한 '자유'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민주화 운동을 통해서 오늘날의 자유가 우리에게 허락 되었다는 것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오늘 이 시대에 여러가지 모습으로 우리의 '자유'를 빼앗고 제한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선조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자유'의 기치를 높이 들고 이를 위해 투쟁해야 할 것이다. '자유'가 있어야 평화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자유'를 위한 싸움, 그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6·25전쟁 70주년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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