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충격적인 자살로 온 나라가 술렁거리고 있다. 그런 극단적인 선택의 배경으로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비서의 고소 사건이 거론되고 있어서 모든 국민들이 당혹스러움과 착잡함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다. 모든 죽음은 다 슬픈 일이라 우리는 조의를 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망자가 지극히 무책임한 행동을 한 데 대해 분노하는 국민들도 많다. 대통령의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정치지도자가 왜 죽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회피해버리는가. 죽는다고 모든 책임이 없어지는가?

우리나라는 너무나 부끄럽게도 자살률이 세계에서 단연 일등이다. 그리고 유독 유명인들의 자살이 많다. 언론매체들은 2005년 이래 자살한 사람 중 소위 유명한정치인들과 경제인들의 수만 해도 95명이 넘는다고 말한다. 인기 연예인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중에는 전직 대통령도 있고 고위 정치인들도 있다. 그래서 자살공화국이란 말이 생겼다. 대한민국이 자살공화국이란 수치스러운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이 정말 비극이다.

 

왜 자살할까?

물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망자들의 마음을 누가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런 자들에 대해 우리 사회 분위기는 이상하리만큼 관대하다. 자살이 망자에 대한 평판을 순식간에 역행시키기도 하고, 무조건적인 용서를 받게 할 뿐 아니라 심지어 영웅 대접을 받게 하는 희한한 일들도 만들어낸다. 우리는 박원순 전 시장의 장례를 서울시장()으로 한다는 발표를 들으면서 다시 한번 이런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자살하는 이유가 많지만 대개 세 가지 정도로 나눠볼 수 있다. 그 첫째는 삶에 대한 절망감이다.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할 명분도 없고 그럴 수 있는 환경도 안 된다는 절망감이 그 대표적인 이유일 것이다. 둘째는 억울함이다. 자기를 비난하고 정죄하는 세력 앞에서 자신의 결백이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힘이 자기에겐 없다고 생각될 때 자살로 항거하는 것이다. 셋째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폭로되고 그로 인해 자신이 받게 될 비난과 멸시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이다.

 

자살은 죄다

이 세 가지 외에도 다른 이유들이 있을 수 있고, 또 여러 가지 이유들이 복합돼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살은 죄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가 없다. 첫째는 자살은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을 불신하고 부정하는 행위이다. 진화론자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사람은 스스로 존재하게 된 존재가 아니다. 둘째는 가족들에게 죽음의 고통을 가하는 죄다. 극단적 선택이 가족들에게 주는 충격과 고통을 누가 짐작인들 할 수가 있겠는가.

셋째는 이웃과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다. 지도자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일수록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은 더욱 크다.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퍼뜨려 소극적으로는 자신의 생명에 위해를 가하고, 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생명에 위해를 가할 수도 있다. 특히 고 박원순 시장의 경우 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고소를 했던 그 비서에게는 죽음에 맞먹는 고통을 안겨주고 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남기지 않았다. 결국, 그는 그녀에게 죄에 죄를 더하여 평생 동안 지워지지 않을 고통을 남긴 것이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자살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하거나 미화해서는 안 된다. 죽음이 그것을 선택한 자에게 속죄를 가져다주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생사 문제에는 사람에게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그래서 실정법으로는 공소권 없음으로 끝이 나지만 하나님의 법정은 물론 역사의 법정에서도 죽음으로 공소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말한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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