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목사(일산하나교회 담임, 카도쉬 아카데미 교육위원, 유튜브 목동TV 운영자)
김동진 목사(일산하나교회 담임, 카도쉬 아카데미 교육위원, 유튜브 목동TV 운영자)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교회의 처신에 대한 수없이 많은 공방이 교회 내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공방은 교회를 향해 당국의 자세가 너무 노골적인 것이 아니냐는 입장과 교회가 묵묵히 당국의 정책에 따라야 옳지 않느냐는 입장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논쟁이 작게는 교회의 소모임에서부터 크게는 교단의 입장 차이에 이르기까지 좁혀지지 않고 있음을 보면서 한국 교회가 한 목소리를 내기를 기대하기란 요원해 보인다.

급기야 방역 당국에서 교회를 특정하여 코로나의 연결고리로 지목하고 교회의 소모임과 행사를 금지하는 조치가 내려진 이때에도 오히려 당국의 정책을 의심 없이 바라볼 것을 지적하는 분들이 있다.

현 사태에 대한 일반적인 문제 제기는 형평성에 있다. ‘왜 카페나 식당은 되고 교회는 안 되냐는 것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문제 제기에 웬만한 일반인들도 동의하는 분위기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형평성의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보려는 것이 당국의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입장이라 하겠다. 만약 필자가 언급한 모임 금지를 지지한다는 어조가 강하다면 지지하지는 않지만 순응하자라고 표현을 바꿀 수도 있겠다. 큰 의미에서 다르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의 논조를 빌리자면 예컨대 카페, 식당과 교회는 엄연히 다르지 않느냐는 논점을 가진다. 사실 필자에게 이러한 주장을 펴는 분 중에 이런 말을 덧붙인 적이 있다. “일반 음식점에는 기대치가 없지만, 교회는 최소한의 기대치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일반 음식점의 영업과 교회의 활동을 같은 선상에서 보면 안 되고, 도덕적 책임이 있는 교회는 자중하고 있어야 한다는 논조였다.

이러한 논조에 대해서 한 번쯤 톺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과연 형평성의 논란 속에도 교회는 도덕적 책임 아래 자중하는 것이 맞을까?

 

구별된 조직으로서 동의한다

우선 교회가 엄연히 다른 조직이라는 것에 대해 구별이라는 교회의 속성을 따른다면 한편으로 동의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교회라는 공동체가 이 땅에 다른 조직들과는 그 설립의 원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사회(혹은 인간)의 요구로 세워진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의 요구로 세워진 조직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조직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창설하신 생명의 조직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반면, 교회를 제외한 세상의 여타 조직은 사회(혹은 사람)의 요구에 수긍하여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요구에 따라 세워진 다른 조직들과는 엄연히 구별되어져야 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6:18)

 

형평성을 요구하지 못하는 조직이 아니다

그러나 교회는 애초에 형평성을 가질 수 없는 조직이라는 논조에는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교회로 하여금 생명을 전하며 뿌리내리도록 두신 곳은 세상과 동떨어진 곳이 아니라 동일한 시공간 속에 두셨기 때문이다. 더구나 하나님은 거듭난 인격으로 하여금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까지 생활상 불신자와 구분하여 두지 않으시고 지속적으로 관계하며 생활하도록 하셨다. 이는 교회가 세상과 공존하는 동안 하등한 조직1)이 아닌 하나님의 상위적 가치를 실현하는 조직으로서 위치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상위적 가치는 무엇일까? 성경의 옳음. 성경적 정의라 하겠다. 이러한 의미에서 형평성은 성경적 정의와 분리할 수 없다.2)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형평성의 기준이지 양보의 대상이 아니다. 세상이 교회에 형평성에 어긋난 요구를 할 때 교회도 충분히 차별받는 대상이 될 수 있고 그러한 차별을 부당하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불의에 침묵을 인내로 보는 시각

소위 교회에게 핍박이 당연한 것을 주장하며 고난과 핍박이 온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논리로 침묵을 강요하는 경우도 보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의에 침묵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리고 우리에겐 불의에 침묵이 아닌 항거했던 많은 신앙의 선배들 - 아타나시우스(아리우스 논쟁), 어거스틴(펠라기우스 논쟁), 루터(면죄부 고발), 칼빈(종교개혁 수호), 얀 후스(성경의 권위), 존 낙스(청교도), 스펄전(고등비평), 메이첸(자유주의), 주기철(신사참배), 웜브란트(공산주의) - 이 존재한다.

이런 면에서 생각할 때 교회는 자발적으로 코로나 사태로 위기에 봉착한 세상에 탁월한 성경적 가치에 입각된 도덕성으로 솔선하여 방역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껏 교회는 이미 넘치도록 잘 해왔다. 그러나 반대로, 합리적이지 않고 형평성에 어긋난 금지 조치를 세상을 섬기는 마음으로 달게 받으라는 것은 부당한 대우이며 교회 차별에 해당하기에 강요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미주

1)물론 아무도 교회를 하등한 조직이라고 말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외연은 섬김과 겸손을 말하면서 한없이 무능한 조직으로 취급하는 자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2)현재 우리가 일반적으로 대하는 정의라는 개념이 매우 편협적인 것을 생각할 때 성경적인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도록 강조한 것이다. 예를 들어, 성경은 약자나 소수자를 위한 사회가 정의로운 세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에게 공정한 사회를 실현할 것을 명령하였다. 레위기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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