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성경을 읽는가. 이런 질문이 좀 우스운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는가, 거기서 무얼 발견하는가는 읽는 이의 태도와 의문에 달려 있다. 최근 '모비딕'을 읽으면서 허먼 멜빌의 풍부한 표현들, 인접 화제들을 둘러싼 한가한 만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줄거리 전개를 흥미진진하게 즐겼다. 하지만 글 속에서 삭제할 부분을 찾는 편집자의 시각이나 본문의 질과 가치를 평가하는 문학비평가의 눈, 혹은 고래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탐구하는 경학(鯨學)의 관점에서 책을 읽었다면 나의 독서 체험은 전혀 딴판이 되었을 것이다.

성경에 접근하는 방식도 매우 다양하다. 우리는 성경을 고대 근동의 문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창으로, 증거 본문 혹은 약속을 담고 있는 광산으로, 어떤 신학을 캐낼 수 있는 자원으로, 심지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와 같은 감동적인 사상들을 추출할 수 있는 일종의 종교 서적으로 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경은 보다 근본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경 읽기를 영적 성장의 주요 수단으로 사용하기 원하신다.

우리가 신학이나 윤리학을 정립하기 위해 성경을 사용할 수 있으나 성경은 그런 자료집을 훨씬 능가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음성, 능력 있는 목소리다. 성경을 열 때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삶이 변화될 수 있다. 성경은 인간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 만날 장소를 창출해낸다. 하나님은 성경으로 우리를 가르치기 원하실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우리를 만나기 원하신다.

성경을 읽을 때 본문을 연구하고 인간 저자들의 상황과 의도를 깊이 탐구하며, 성경의 사상 세계 속에 침잠해 성경의 메시지가 지성 속에 가득 스며들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성경을 심령으로 읽으며 성령의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이는 가운데, 성령이 옛날 말씀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유의하는 것도 필요하다. 성경을 읽을 때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통해 우리의 심령을 계속 새롭게 조형하기 원하시는 성령의 즐거운 초대에 응해야 한다.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태도는 성경 읽기에 깊은 영향을 준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주로 지식의 자원으로 사용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성경을 대할 때 사람들은 일상적인 제자살기에서 실천할 어떤 원칙을 찾으려 한다. 이것도 아주 좋은 태도이지만 성경을 영성 발전의 자원으로 대하고,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만나도록 가르치는 이들은 별로 많지 않다.

성경은 하나님에 관한 말씀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그 자신의 말씀이다. 성경은 내 심령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목소리이며 하나님과의 혁신적 관계를 촉구하는 음성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 속에 침잠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그 자체 속에 잠기는 것이다.

성경을 왜 읽는가. 하나님이 자기계시 행위를 통해 자신을 알릴 때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앎'은 '하나님을 앎'으로 성숙해질 수 있다. 말씀 속에서 우리는 성육신한 말씀인 그리스도와 조우하며 이해를 초월하는 생명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성경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영생을 발견한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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