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 세계의 금융계는 밤사이 가슴을 철렁이게 하는 또 다른 금융 악재는 발생하지 않았는지 뉴욕을 주시하며 공포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다른 의미에서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을 주목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이렇게 된 주요 원인을 경제 전문가들은 탐욕스러운 파생상품들로 금융시스템이 망가졌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세상적인 눈으로는 전문가들의 생각이 맞을지 모르지만, 신앙적인 눈으로 보기에는 오늘날 미국이 이토록 심각한 어려움에 빠지게 된 더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신앙 시스템에 치명적인 결함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건국 초기에 청교도들이 집을 짓기 전에 교회를 먼저 세웠던 신앙적인 나라였다. 그래서 미국의 헌법에서부터 사회 윤리에 이르기까지 그 뼈대를 세우고 피를 돌게 한 것은 기독교정신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런데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의 월가는 성경에서 그렇게 경고했던 탐욕 때문에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미 바울 사도는 2000여 년 전에 이것을 마치 돋보기로 실상을 들여다 보듯이 정확하게 예언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도다" 소돔과 고모라가 의인 10명이 없어 망했는데, 그렇다면 미국의 금융책임자 중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10명이라도 있었다면 어떠했을까를 묻는 것은 우문일까?

그런데 기독교 국가로 자타의 공인을 받는 미국에서, 그것도 심장부인 뉴욕의 금융계가 탐욕 때문에 이처럼 전대미문의 위기를 겪는 것은 실상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의 기독교 대표전문 조사기관인 바나 리서치에 따르면, 미국에서 예수님 때문에 삶의 변화를 보인 사람은 그리스도인 중에서 1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 때문에 조금이라도 삶의 변화를 보이는 사람은 열에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미국 그리스도인의 대다수가 겉은 신앙의 옷을 입고 있지만, 속은 여전히 세상적인 윤리와 문화에 깊이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 금융계의 위기는 그 밑바닥에 예수 믿어도 변화되지 못한 신앙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어도 변화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최근에 농민들은 호미자루 한번 잡지 않은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쌀직불금을 수령했다는 뉴스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있다. 땀 흘리는 농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야 할 세금이 탐욕스러운 엉뚱한 사람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그 중에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없을까, 교회의 중직을 맡은 사람은 없을까 염려하고 불안한 것은 필자만의 기우일까.

그리스도인은 예수 믿는 순간 새로운 피조물로서 인간 속성의 변화, 신분의 변화가 근본적으로 일어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 가운데 변화의 모습이 이토록 부족하며,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데 역부족인 이유는 교회 내에 진정한 복음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지식은 '개선된 나'를 추구하지만, 복음은 '전혀 새로운 나'를 창조한다. 복음이 예수의 피와 부활의 권능이 아니라, 심리적인 처세술과 도덕적인 교훈과 지식적인 정보로 버무려지고 오염될수록 세상 속에서 변화받은 그리스도인은 점점 더 찾기 어려울 것이다.

교회가 변화받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을 양산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세상에 무서운 해독을 끼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목회자로서 세상의 경제를 걱정하기 앞서 먼저 피묻은 복음을 '두렵고 떨림으로' 가감없이 전하고 있는지, 진정으로 변화된 '열 명'의 그리스도인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