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헌옥 목사
천헌옥 목사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40년 광야교회 생활 동안 교회중심으로 살았다. 성막은 12 지파의 중심에 자리 잡았고 성막을 중심으로 한 본진을 둘러싸고 12지파가 동서남북을 세 지파씩 나눠 진 치고 살았다. 그들은 자고 나면 맨 먼저 성막을 바라보았다. 성막에서 구름이 떠오르면 떠날 채비를 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일상이 그랬고 관심사가 성막이었다. 성막이 앞장서 가면 이스라엘은 그 뒤를 따라 이동하였다.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성막은 이동하지 않아도 되었다. 성막은 거기까지였다. 성막은 이동을 위해 존재했다.

그런 성막이 성전으로 지어지기를 꿈꾸던 사람이 있었다. 다윗이다. 그리고 결국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고 유대 온 땅에 흩어진 이스라엘은 1년에 적어도 세 차례는 성전에 올라왔다. 유월절, 칠칠절, 장막절이었다. 그들이 성전에 올라오면서 부르던 노래가 시편 120~134편이다. 이스라엘의 삶의 중심에 성전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스라엘이 성전을 중심으로 살았던 때가 가장 흥왕하였다. 역사가 이를 증거하고 있다. 그들이 성전을 소홀히 하고 멀어질 때 이스라엘은 쇠퇴하였다. 구약 역시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강조하였음을 증거한다.

신약 시대에서는 성전보다 교회 중심을 강조한다. 우리는 이전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당을 성전이라 하는 성도는 드물다. 그러면 성전은 없어져 버렸는가? 아니다. 성전은 신앙인의 마음에 자리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앙인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 사람이고 그래서 그 마음에 성전을 가진 자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성전을 가진 자는 스스로 성전을 더럽히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주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을 채찍으로 쫓아내셨다. 성전은 깨끗이 하고 거룩 되게 하여야 한다.

그래야 성전에서 나오는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성전으로부터 오는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성전을 지닌 성도들이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한다. 거짓말은 주의 음성이 아니다. 사탄의 음성이다. 거짓말을 할 때 성전은 더럽혀지고 죄로 가려지며 허물어지게 된다. 거룩한 것을 이익의 재료로 사용하려는 장사꾼의 마음이 성전을 더럽히기 때문이다.

주의 음성을 들려주어야 하는 목사가 거짓에 빠지면 많은 성도를 실족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실족하게 하는 자는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는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18:6-7)

그런데 오늘날 그런 사이비 목사라는 사람이 너무 많다.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 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목에 걸어 줄 연자 맷돌이 모자랄 판이다. 그들이 마지막 심판 때를 어떻게 견디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해대니 모든 거짓말이 한 곳에서부터 나온다고 보면 그들이 누구의 수하에 있는지 알 수 있다.

공산주의는 그럴듯한 가면을 쓰고 있지만, 사탄의 작품이다. 처음부터 거짓말로 사람을 속인 자들이다. 그들에 속한 공산국가 북쪽의 거짓말과 남쪽의 거짓이 차이가 있을까? 아니다. 에덴동산에 나타났던 사탄의 거짓말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꼭 같은 거짓말이다.

불신자의 거짓말과 교인이 하는 거짓말이 차이가 있을까? 거룩한 거짓말은 없다. 거짓말은 사탄에게서 나오는 것이며 모든 거짓말은 꼭 같은 것이다. 오늘날 그런 거짓말이 성전을 허물고 있다. 그리고 자신만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자를 실족케 한다. 교회까지 허물어뜨리고 있다. 하나님의 불심판은 바로 그들의 머리에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한다.”(요한계시록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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