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헌옥 목사
천헌옥 목사

아 테스형! 테스형! 소크라테스형으로 이어지는 나훈아의 노래는 단번에 한국 국민을 들썩였고 !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이라는 노래 가사는 유행이 되어 정치판이든 어디서든 패러디 되었다.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소크라테스는 주전 470년에 태어나 주전 399년에 사망하였다.

그는 저서를 남기지 않았지만, 그의 제자인 플라톤이 스승의 말을 정리하여 기록함으로 그의 철학이 후대에 알려지게 된다.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는 결국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철학의 근본이 되었다.

그 소크라테스가 살았을 당시는 민주정이 시행되고 있었다. 그것은 직접민주주의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그 민주정에 의해 501명의 배심원들이 1차 재판에서는 유죄, 2차 재판에서는 사형 판결을 함으로 그는 악법도 법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72세를 일기로 독배를 마셨다.

아테네에서 시행되었던 민주정은 다시 왕과 귀족 정치로 뒤바뀌고 그러다가 귀족의 횡포가 심해지자 시민혁명이 일어나 결국 왕과 귀족을 내몰고 국민이 주인이 되어 자유민주주의를 도입하게 된다. 하지만 중세까지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많은 나라들이 로마 가톨릭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 때는 실질적으로 로마 교황이 지배하는 시대였고 교황은 무오한 존재로 그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고 할 것이다.

종교개혁 이후 교회는 초대교회가 그랬듯이 교회를 운영하는 직분자를 투표로 선택하여 세우기 시작했고 재정적인 문제나 부동산의 처리는 모두 투표로 결정하게 되었다. 교회 안에도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 장립집사, 장로는 투표에 의해 세움을 받는다. 담임목사 청빙, 노회와 총회의 모든 임원도 모두 투표로 직분을 선출한다.

처음엔 그랬으리라. 선출된 사람들은 자신은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도 신앙양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선출하였으니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 주의 일을 감당하였다. 그런데 교회를 섬기라고 세우는 직분이 언제부터인지 계급화가 되었고 서로가 그 자리에 앉고 싶어 했다. 심지어 그 자리를 얻으려고 돈을 쓰기 시작하였다.

밥을 사주고 봉투를 건네는 것이다. 그것이 총회장의 경우 어느 교단이든지 어김없이 등장하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큰 교단의 장이 되려면 적어도 몇 억은 써야 한다는 말도 회자 되었다. 만약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총회장 되려는 사람이 교만하다. 인사도 없다. 총대들을 무시한다는 등 입을 맞추며 외면한다는 것이다.

소위 계파정치도 문제지만 후보자는 자신이 속한 그 계파에도 인사를 치러야 하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자기 식구라고 봐주는 일이 없다. 거기도 인사를 위한 운동(?)을 위한 상납이 있지만 묵인하고 있다. 이렇게 돈으로 표를 얻어 총회장이 되는 것은 민주주의를 악용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거슬리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민주주의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 교회 질서를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 된다.

지금은 표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는 시대이다. 사회는 선거판에 겉으로는 돈을 못 쓰게 철저히 단속하고 있지만 부정 선거는 어떤 방법으로든 횡행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악용하여 독재를 하는 행위는 비단 공산국가만이 아니다. 언론에 의하면 이라크, 콩고에 이어 키르기스스탄도 한국산 개표기를 가지고 이번 총선에서 부정선거를 자행했다면서 키르기스스탄은 국민이 들고 일어나는 저항에 굴복하여 대통령이 사임하는 사태를 맞았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부정선거를 대단한 죄악으로 보고 규탄한다. 그러나 자신이 돈을 받고 표를 찍으며 돈을 주고 표를 사는 일에 대해서는 너무나 관대하다. 마치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비공식적이지만 어느 교단은 5억 쓰면 떨어지고 10억 쓰면 당선된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나돌고 있다.

마가 다락방에서 사도 중 결원된 유다를 대신하여 한 사람을 뽑을 때와 같이 오직 기도하면서 겸손히 직분자를 뽑고 직분자 역시 겸손히 그 직을 수행하면 어떨까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바보 같은) 생각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돈으로 표를 사고 표를 많이 얻어 당선되는 것을 두고 하나님의 뜻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악용하여 왜곡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실로 민주주의라는 것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비추어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때가 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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