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수 (희망봉 신학교 남아공)
김재수 (희망봉 신학교 남아공)

사복음서에는 동일한 사건들이 저자들의 관점에서 서로 다르게 서술되어 있다. 이런 다름이 번역성경에서 잘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허다하다. 따라서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이 번역본을 사용할 경우 당연히 이런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번역 성경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신학적인 해석이 바른 성경 해석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 그 결과로 헬라어 성경본문 사이의 차이점이 무시되어지고 성경 각 권의 저자가 말하고 있는 핵심 부분이 역시 무시되어진다. 이를 위해서는 성경연구가들은 원어를 배워야 한. 많은 자료들이 있기에 이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는 동일한 사건을 예로 제시하여 서로 비교해 보려고 한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마태 (21:1-) 와 마가 (11:1-) 그리고 누가 (19:28-) 가 어떻게 기록하였는가를 살펴보겠다. 한글 번역은 다음과 같다.

21: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부정과거)

 

11: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에예수께서 제자중 둘을 보내시며 (현재시제)

 

19:29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가셨을 때에 제자중 둘을 보내시며 (부정과거)

위에 제시된 구절에서 밑줄 친 부분 보내시며를 유의하기 바란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사용된 동사의 시제가 다르다. 이들 차이는 무엇일까? 이것을 알려면 원문인 헬라어를 연구해야 한다.

헬라어 초급 문법에 의하면, 마태와 누가는 '보냈다' 그리고 마가는 '보내다' 라고 번역되어질 수 있다. (그리고) 문장론 혹은 중급 문법에 의하면 마태와 누가는 역사적 부정과거로서 예수님께서 두 제를 보내신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마가가 과거() 사건을 현재로 표현한 것은 역사적 현재 용법인데 이는 독자들이 과거 사건인 보내심을 더 생생하게 읽도록 하기 위해서 현재 시제를 사용했다 할 수 있다.

최신의 문법 이론인 동사의 에스펙트(상 혹은 시상) 라는 이론이 있다. 아주 간단히 설명하면 이는 사건을 보는 관점이다. 여기에는 하나의 사건을 사진처럼 보는 관점 (완료상), 비디오를 보는 것과 같은 관점 (미완료상) 그리고 티비화면에서 좀 부각된 정지된 화면을 보는 것과 같은 관점 (정지상) 들이 있다. 어떤 학자들은 첫 두 개의 관점만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분류에 의하면 부정과거는 완료상에 해당되며 이를 기본동사 혹은 배경동사라고 한다. 기본동사이므로 강조성을 가지지 않는다. 현재와 미완료 시제는 '전면동사' 라고 해서 강조동사이며, 완료시제는 '최전면동사' 라 일컫고 최강동사 곧 최고로 강조하는 동사로 쓰인다.

이제 위의 세 본문들에 이를 적용하겠다. 마태가 '보내다' 란 동사를 부정과거로 사용한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신 것이 그렇게 강조할 사건이 아님을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보냄을 통해서 마태가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21:4절에 사용된 헬라어 게고넨이란 동사에 나타나 있다. 이 동사는 완료형으로서 최전면동사 혹은 최강 동사이며 개역개정에서는 '하심이라' 라고 번역되었지만, 사실은 '되어졌다' 로 번역해야 옳다. 마태는 이를 통해서 예루살렘 입성 기록의 첫 부분에서 이 사건이 구약성경의 예언 성취임을 강조하려고 했다.

마가는 마태와 달리 현재시제를 사용하여 보내심을 강조했다. 마태는 제자들의 활동 곧 '풀다''끌고 오다' (11:4-7) 를 역시 현재형으로 기록했다. 이 현재형은 제자들의 순종을 의미한다. 보내심에 사용된 현재 시제는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있을 활동-제자들의 순종을 미리 예고해 주며, 이 순종을 강조하기 마가는 현재형을 사용하였다.

마태와 같이 누가도 부정과거를 사용하였다. 그렇다면 이 문맥에서 누가는 무엇을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했을까? 헬라어 문장을 살펴보면 '옷을 펼치다' (미완료 37), '기뻐하다' (현재, 37), 그리고 '찬양하다' (현재 37)라는 동사들은 강조 동사들인데 이들은 군중들의 활동을 서술한 것이다. 누가는 군중들이 예수님을 환영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보내심을 부정과거로 사용하였다.

요약하면, 한글 번역성경에는 다 같이 '보내시며' 라고 번역하였지만, 헬라어 시상의 관점에 이를 설명하면 마태는 성경 예언의 성취를, 마가는 제자들의 순종을, 누가는 군중들의 예수님 환영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마태는 부정과거를, 마가는 현재를 ,누가는 부정과거 시제를 사용하였다. 이런 연구가 설교에서도 반영되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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