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공화정 말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폰토스 전투에서 승리한 직후 로마의 원로원에 보낸 승전보가 있습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틴어로 veni, vidi, vici). 오늘 순서 맡은 분들과 축하하러 오신 회중 여러분만 생각할 것 같으면, 저 역시 이 세(3) 마디만 하고 내려가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미 많은 순서가 지나갔습니다. 따라서 갔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 어차피 승리는 십자가의 것이니까요.

그러나 지금 이 시각, kpm 소속 세계 300여 식구들이 해외에서 잠도 설치고 ZOOM [in] & [out]하면서 참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땐, 우리의 눈꺼풀이 벌떡, 상황은 달라질 것입니다. 선교사로서 고신 세계선교사 전체와 소통하는 단 한 번의 시간(카이로스)인 셈입니다. 디아스포라처럼 흩어져 있는 선교사님들 중엔 오늘 제가 무슨 소리(혹은 말씀)를 할 것인지 볼펜을 들고서 기록하는 형제도 있는 것입니다. kpm 선교사라면 일생 중 한번은 이 자리에 서야 할 것이기에 무슨 명문장이라도 건져 볼 요량으로 귀를 기우리는 경우도 있으리라 봅니다.

▸12월 8일 은퇴감사기념예배 때 파라과이 페루 브라질에서 ZOOM 기재로 시종일관 참관한 선교사들
▸12월 8일 은퇴감사기념예배 때 파라과이 페루 브라질에서 ZOOM 기재로 시종일관 참관한 선교사들

적어도 현재 [아메리카라티나] 지역_중남미에서는 파라과이와 페루, 브라질, 아르헨, 볼리비아에선 Zoom 기재로 경청하고 있을 줄로 압니다. 저는 kpm 소속이 자랑스럽습니다 !

고신총회 세계선교위 박영기 본부장님과 고신선교사회 이경근 회장님을 비롯한 각계각부의 선교사회 멤버 형제자매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오늘이 있기까지, 고신총회 소속과 kpm 산하 세계선교에 수종드는 여러 제현들의 사랑과 기도가 들어 있었습니다.

축사를 해주신 조서구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일생에 잊지 못할 매력적인 멋진 축사를 해 주셨습니다. 제게 과분한 감동의 격려였습니다. 생명력이 새롭게 뛰고 콧잔등이 시큰해졌습니다. 조 목사님과 저와는 끊을 수 없는 월드미션 관계입니다. (둘 다 경남 촌_사람입니다). 축구경기로 말하자면 미드필더’(midfielder)입니다. 때로는 날렵한 공격수가 되었다가 동시에 수비팀에도 가담합니다. 아르헨티나의 D. 마라도나,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의 역할을 말합니다. 조 목사님은 이러한 위치에서 때로는 미션필드의 공격수로 또한 목회자로서 후방 병참기지와 방어팀으로서 역할이 다양했습니다. 그 세부전략에 따라 임무가 특화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2005년 안식년 때 부산북교회 미션홈에 1년간 거주했었습니다. 2006년경 쿠바한인선교사대회 때 주강사로 오셨습니다. 한국인 선교사들이 93명이나 쿠바의 수도 하바나에 모였었는데, 45일의 일정으로 저녁설교 때, 93명에게 골고루 성령의 은혜를 전달했습니다. 그때 중남미 5개국을 순방했습니다. 미국 쿠바 파나마 페루 아르헨티나 ---> 라틴권 한인선교사 대회를 17년차 개최하면서 고신에서 17 분의 기라성 같은 주강사가 초대되었지만.. 한 번 방문에 5개국 순방은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큰아이 David이 미국에서 공부할 때, 한 학기 대학등록금을 협력했습니다. 거기 있을 때, 아내가 가슴 수술을 받았습니다. 종양 제거 수술은 성공리에 잘 끝났습니다. 그리고 작은 아이 딸 에스더 결혼식 땐 오셔서 예식 기도해주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35살에 싱가포르 우드랜드 소재, ACTI = Asia Cross cultural Training Institute: 국제교육 선교훈련원을 수료한지가 엊그저 같은데, 벌써 60대 중반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1990년 가족을 거느리고 아내와 6~7세 어린 두 자녀와 함께 하나님의 명령인 세계선교에 수종들기 위한 남미 구령운동에 출발했습니다. 가장으로서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서울 등촌교회에서 섬기던 시절, 유치원에 다녔던 아이들을 데리고서 <국제선교훈련원> 교육차 싱가포르로 출발했던 때, "선교가족선언"(성명서Statements) 비슷한 것이 있었습니다.

1. 영혼구령운동 다이나믹스

2. 사명감 개혁주의 교회개척

3. 선교현장, 선교교육 강화와 실천

4. 선교가족으로서의 이방 언어 정복과 자녀교육이었습니다.

선교훈련차 싱가포르로 출국한 연대까지 합하면, 28년간 아르헨티나 원주민을 대상으로 사역했습니다.

28년을 3기로 분류해보면, 전기 / 중기 / 후기로 나눌 수 있지요. 전기 땐, 장로교회개척과 '로컬리스트'로서의 언어교육과 지역연구에 집중했습니다. 중기 땐, '내셔널리스트'로서 스페인어 신문인 <엘 띠엠뽀 라티노> 라틴_크리스천타임스 미션 신문발행인과 개혁신학교에서의 신학강의(히브리어, 선교학) 였습니다. 그리고 후기엔 '컨티넨털리스트'가 되어서 부부가 직접 정글 인디오(원주민) 공동체로 들어가 성경강해 및 영혼구령에 수종들었습니다. 본격적인 세례 베풀기의 시대였습니다.

제 마음 속에 우러난 성령님의 인도하심은 미션형태로서 '영세형', 미션 성격으로서 '의존성', 미션의 대륙문명 진화로서 '고립화'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힘든 과정도 마침내 코비드 19처럼 일상이 되어 해외 문화권 선교공동체 안에 용해되어졌습니다. 아내의 헌신과 자녀들의 협력이 아니었으면 이러한 가치 있는 성취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아내의 섬세한 신앙의 손길은 선교사역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했습니다. 자신보다 가족의 안위와 건강을 돌보아주었습니다. 내조의 희생에 대해선 제가 아내 앞에 엎드려 천 번 절을 한다 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아들 데이빗도 이 자리에 참석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시행착오와 부족함과 아쉬움으로 점철돼 있지요.

▾ 앞줄 본부장, 김용길, 윤춘식 박세이, 정원남 허광자 선교사 부부/ ▸축사 : 조서구 목사 뒷줄 중앙
▾ 앞줄 본부장, 김용길, 윤춘식 박세이, 정원남 허광자 선교사 부부/ ▸축사 : 조서구 목사 뒷줄 중앙

제 졸업기수인 고신 36회 동기 선교사 중엔 2명의 본부장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본부발전에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저희는 본부에 충성한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저의 선교기간에 아름답게 포장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선교의 영적 에너지를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교회개척과 신학교 교육, 초교파적 선교사 정보교류와 단합, 사명의 격려와 동료의식 나누기 등 17년차 한결같이 그들의 현장사역과 선교전략을 허심탄회,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라틴 대륙에서 선교학 박사와 신학박사 학위 소지자가 모두 8명 나왔습니다. 제가 1호로서, 그들 중 학문분야와 논문 기초자료로 저의 논문을 인용하지 않은 선교사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현재도 2명이 논문을 작성하고 있는 중입니다.

또한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하기는.. 제 생애의 30년 가까이 후원해주신 고신산하 각 지역의 50여 개처 후원교회의 신뢰와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후원교회로부터 본부 재정실로 납입되는 매월 전체 선교비는 파송선교사들 가운데 하이 클래스였습니다. 저희를 믿고 후원하신 사랑이 오늘 저희를 여기에 세우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퇴임하면서 도리어 제 계좌에서 수 천 만원대의 재정을 선교본부에 남겨주고 나오게 됩니다. 가능하다면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길 희망합니다. 역설입니다.

스페인어 신문사엔 7명의 유급 직원이 있었습니다. 신문발행에 의한 작업실에 구비했던 컴퓨터 PC 6(1998년형), 편집용 고가의 매킨토시 1, 그리고 자전거 1대 뿐이었습니다. 거실엔 안락한 소파도 하나 없이 살았습니다. 자녀들은 초등학생용 나무 책상/걸상으로 고 3학년까지 사용했던 것입니다. 재산 때문에 주위의 눈총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지요. 문자 그대로 심플 라이프였습니다. 후기 7년 동안엔 정글 속에서 사역하면서 자동차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연말에 보내는 재산 보고 때마다 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참석차 미국에서 나온 아들 데이빗 윤
▸참석차 미국에서 나온 아들 데이빗 윤과 함께

오늘 자리를 빛내주시는 신대원 36회 동기들이 참석했습니다. (최창규 목사_거창에 시무할 때, 남미 정글 형태에 걸 맞는 성전모형의 입체구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부서질까봐 항공짐처리 하지 못하고 그것을 안고서 27시간 비행기를 타고 남미까지 가져갔습니다. 정도헌 목사_대구 계실 때, 외국인 손님 목사를 접대했습니다. 김재곤 목사님 신대원 36회 만년총무로서 경주에서 20년간 지원했습니다. 오병욱 목사_천안에서 목회하면서 고신신대원 선교교육원을 후원하며 선교실습 협력과 저의 졸저 중남미 선교전략서2009년도 출판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친구 전성준 목사, 그는 한국 목회에서 전체 3번 교회를 옮겼는데, 3교회 다 후원교회로 삼아주었습니다. 선교후원에 전무후무한 역사일 것입니다. 남미 열대정글에 들어갔을 땐 34일간 이마에 팥죽 같은 땀을 흘리면서 원주민 부족교회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잊을 수 없습니다.

이에 하나님 앞에서 은퇴예배 자리를 마련한 본부 요원들께 거듭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28년간의 [남미회상] 스토리는 오늘부터 그 서막이 열렸습니다. 다시 지난날의 선교활동을 점검, 반성, 향상되기를 소망하면서 선후배 선교사님들 동역팀 회원 여러분들의 평강과 행복을 기도합니다.

2020. 12. 8.

선교가족 윤춘식 박세이 David, 에스더 프랑수와, 에단 & 야엘하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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