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언론에 가장 많이 등장하거나 회자된 단어를 찾는다면 '신용경색'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경색이라는 말은 혈관이 혈전 따위로 막히는 것을 의미하는데, 지금 전 세계가 신용이라는 형관이 꽉 막혀 신음하고 있다. 경색이 무서운 것은 결정적인 고통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정상처럼 보이다가 일단 조짐이 시작되면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막히고 닫힌 사회는 행복할 수가 없다. 이미 우리 사회는 곳곳에 경색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한국노동패널 조사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이후로 상위계층과 하위계층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고, 경제활동인구 1만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건강불평등에 따른 소득격차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양극화의 흐름이 지금처럼 지속된다면 언제 사회적인 뇌관이 터져서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을지 모른다.

사회의 곳곳에 막혀 있는 계층간의 혈전을 녹이고 뚫는 것은 베풂에 있다. 주는 삶, 베푸는 삶은 우리 사회가 동맥경화증에 걸리지 아니하고 건강한 피의 순환을 촉진하는 최고의 명약이다. 탐욕의 기름기로 범벅이 된 탁하고 끈적한 피는 사회의 혈관을 구석구석까지 돌 수 없다. 최근에 오랫동안 자선기관에 적지 않은 돈을 기부하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던 연예인의 사례는 우리 사회의 경색을 풀어내는 실마리를 보여주고 있다.

베풂은 사회 경색의 원인인 물질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이기도 하다. 사회의 수준은 사람들의 물질관에 비례하는 법이다. 물질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 인생의 격과 질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바른 물질관을 동기부여하는 베풂이야말로 경색으로 막혀있는 우리 사회를 살리는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건전한 물질관과 건강한 정신은 수레의 양바퀴와 같다. 유명한 심리학자 칼 메닝거는 베푸는 자 가운데 정신적인 질환을 앓고 있는 자를 찾기 어렵다는 임상적인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당연한 것이다. 정신병은 주로 자신의 생각에 갇힌 자에서 나타나는 것인데, 다른 사람에게 열려있는 관대한 영혼에게서 정신질환의 바이러스가 자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태생적으로 자선과 베풂의 체질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베풂의 원조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전부인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맨 처음 베푸신 분이시며 가장 후히 베푸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것을 나누고 베푸는 것은 당연지사요 신앙적인 권리이기도 하다.

베풂에는 기적의 요소가 있다. 우리가 하나를 베풀면 예수님은 거기에 손을 얹어 축사하시고, 그것을 열배 백배의 기하급수적 은혜로 나누시는 것이다. 한 소년이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드림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채웠던 오병이어의 사건은 베푸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소년 역시 허기졌기 때문에 자신의 것을 내어놓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 숨기고 움켜쥐려는 당연한 욕구와 내면의 유혹을 억누르고 자신의 것을 내어 놓았을 때, 자신은 물론이요 수백 수천의 사람들의 배고픔이 채워지는 것을 보면서 소년은 일평생의 삶의 뼈대가 되었을 베풂의 기적을 누리며 살았을 것이다.

나눔을 통해 베풂의 정수를 맛보았던 오병이어 소년의 은혜가 양극화라는 경색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에 무엇보다 절실하다. 연말이 되어 더욱 몸과 마음이 시린 어려운 이웃에게 내미는 베풂의 손이야말로 계층간의 꽉 막힌 혈관을 뚫고 이 사회를 소생시키는 생명줄이며, 또한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경험하는 축복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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