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석길 목사(구미남교회 담임)
​천석길 목사(구미남교회 담임)

지난겨울은 유난히 길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시간이 우리의 생애에 찾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하루하루였습니다. 너무나 외롭고 모두에게 힘들었던 그 날이 머잖아 끝이 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마치 제 살을 찢어내는 고통을 치른 후에 찾아오는 듯한 봄이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집에서는 잘 몰랐지만 몇 발짝 걸어서 산으로 나와 보니 언제 와 있었는지 온통 봄의 잔치가 무르익고 있습니다. 산수유는 황홀할 정도로 노랗게 물들어 있고, 마치 등불이 켜지듯이 목련의 봉오리도 통통해지고 있습니다. 이름 없는 야생화(이름이 분명히 있겠지만)도 곳곳에서 자신을 알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봄을 거닐면서 창조 세계의 질서는 신기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노란 개나리꽃만 그런 것이 아니라 떡갈나무와 느티나무도 그러했으며, 작은 나무나 큰 나무나 한결같이 새잎이 움트는 것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하나님의 기운은 이렇게 전달되는구나 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산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교회 마당에 그늘을 주는 커다란 나무도 같은 이치를 따라서 잎이 피고 지는 것 같습니다. 매일처럼 내가 앉은 자리에서 창을 통해 보이는 느티나무는 봄이 오면 움을 틔웁니다. 유심히 보면 새잎은 나무의 둥치가 아닌 가장 끝에 있는 연약한 가지에서부터 잎이 먼저 돋아납니다. 힘이 없는 약한 가지에서 잎이 먼저 핍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통방통합니다. 그런가 하면 민들레와 진달래는 빨리 꽃을 피우지만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금방 없어지곤 합니다. 그런데 저 나무는 겨울을 지나면서 얼어 죽었구나 싶은 대추나무의 잎은 아마도 가장 느지막이 움을 틔우지만 알고 보면 늦은 가을에 열매를 거두기 때문입니다.

먼저 핀다고 성공이 아니며, 늦게 핀다고 해서 열매가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생명의 기운은 약한 가지에 영양분을 먼저 보내어서 거기에 열매를 맺게 하기에 농부들은 봄이 오기 전에 묵은 가지를 잘라내어서 새 가지를 뻗게 하고 거기에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의 목장(공동체)이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려면 새로운 가지를 뻗게 해야 합니다. 생명의 시발점(출발하는 지점)은 가장 약한 가지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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