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 교수, 신약학 분야가 혼란스러움이 많아...

이념이 투영된 성경해석인가?

매일성경 편집부, 오해할 만한 단어사용은 인정.
그러나 편향된 의도를 갖고 있는 건 아니라고 응답.

현재 기독교백화점을 비롯하여 여러 인터넷 서점에선 다양한 종류의 큐티책을 쉽게 구할 수 있다. 인터넷 서점에 있는 큐티책들을 검색해보니 아래와 같이 다양한 종류의 큐티책이 검색되었다. (이엠큐티, 순전한큐티, 주만나, 찐큐티, 맛싸, 복있는사람, 시냇가에심은나무, 맥체인큐티, 새벽나라, 날마다솟는샘물, 생명의삶, 큐티인, GT, 풍삶, 날마다주님과, 마음과생각, 셀라이프, 주삶, 매일성경 등) 다른 큐티책들엔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다 살펴볼 수 없었던 한계가 있기에, 오늘은 대표적으로 꾸준한 제보가 들어온 매일성경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논란의 중심에 선 '청소년 매일성경'. 사진출처_성서유니온.
논란의 중심에 선 '청소년 매일성경'. 사진출처_성서유니온.

 지난 2021년 3-4월호 청소년 매일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성경해석이 실렸다. ‘큐티, 경제학과 만나다8’ 코너에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란 주제로 김재수 교수(인디아나 퍼듀대 경제학과)는 다섯 달란트 비유를 다음과 같이 해설했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는 정말 능력주의 사회를 지지하는 것일까요? 그렇게 이해하는 사람은 달란트 비유에 등장하는 주인을 하나님이라고 간주합니다. 예수님 말씀을 듣던 당시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그들에게 ‘주인’은 좋은 어감을 지닌 단어가 아니었어요. ‘주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땅을 많이 가진 대지주를 떠올렸을 거에요.

 

(중간 생략)

주인은 갖지 못한 사람에게서 달란트를 빼앗아 가진 사람에게 줍니다. 쓸모없다고 판단하면 어두운 곳으로 내쫓는 사람이고요. 과연 하나님이 이런 분일까요?

 

(중간 생략)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두 배 수익을 얻은 것도 주목해야 합니다. 경제적 착취가 없엇다면 이렇게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 달란트 비유에서 진정한 주인공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일까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남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돈을 버는 사업을 거부하고, 주인에게 맞서기로 한 것일까요? 그는 분배적 정의라는 성경의 정신을 지키려 한 사람일까요? 그의 싸움은 처절한 실패로 끝나고 마는 것일까요?

 

(중간 생략)

달란트 비유를 능력주의 관점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반대로 해석해 보는 것도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달란트 비유는 대체로 칭찬받은 승자의 관점으로 해석되어 왔지만, 주인으로부터 저주 받은 패자의 관점에서 보는 것도 많은 질문과 묵상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중간 생략)

저는 달란트 비유에서 실패하고 버림받은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을 자주 묵상합니다. 능력주의 관점에서는 철저한 패자이고,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비난 받지만, 그는 부당함에 맞선 당당한 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은 그런 실패들이 모여서 변하기 시작합니다.

이어 2021년 5-6월호 청소년 매일성경에도 ‘큐티, 경제학과 만나다9’편이 실렸다. 김재수 교수는 “주인과 품꾼, 누구의 이이기일까?”라는 주제로 포도원 품꾼 비유를 해석했다(마태복음 20장).

 

이번에는 일꾼의 입장에서 생각해봅시다.포도원 주인은 당시 사회에서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  포도원 주인은 값싼 임금을 이용해 포도주를 만들어 로마제국의 권력자들에게 납품하는 역할을 했어요. 품꾼은 농사를 지을 땅도 없고, 날품을 팔아 가족의 생계를 유지했어요  .....  12, 3시, 5시가 되어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장터에서 서성이는 날도 많았어요. 운 좋게 일자리를 얻는다 해도 임금은 농장 주인이 정해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임금을 협상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대우가 불공평해도 어쩔 수 없었어요. 일꾼마다 다른 임금을 주거나, 일한 시간이 달라도 같은 임금을 줄 수 있었어요  ......  일꾼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을 포도주 주인과 빗대는 것도 어색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어요. 불공정한 계약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하나님이 동일하게 베푸시는 은해라고 해석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간 생략)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가진 소유 전부인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는 이야기에 대해 알고 있지요? 헌금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자주 사용하는 이야기입니다. ‘경제학자의 눈으로 보니까’, 이야기의 다른 측면도 보였습니다. 가장 취약한 계층에 속하 가난한 과부가 얼마 되지 않는 전 재산을 왜 성전에 내야 하는지 의아했습니다. 오병이어 기적 이야기에서도 예수님을 따라 나섰던 이들이 먹을 것조차 없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중간 생략)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의 사랑도 이와 같습니다.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나누어 주는 사랑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심각하 기아 상태에 놓인 아이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지 않고, 예수님의 사랑을 이야기하기 위해 아이들을 예화로 사용한 것이니까요.

위와 같은 성경해석에 대한 항의가 3-4월 달에 매일 성경 편집부측에 전달되었으나, 그 다음 호인 5-6월 호에도 다른 본문으로 연재되었다. 문제는 청소년 매일성경 뿐이 아니라 일반 매일성경에도 나타났다. 제보 받은 해당 본문은 캡쳐본 밖에 없으나, 본문은 누가복음 7:1-10절이었다. 매일성경에서 누가복음 해설 연재를 확인해보니 2021년 1월호에 누가복음 7장을 다룬바 있었다. 해당 해설은 이렇게 나온다.

 

백부장은 이방인이었지만 ‘지배하려는’ 제국의 정신이 아닌 ‘자비로운’ 하나님 나라의 정신을 따랐습니다. 그는 노예를 아무렇게나 처분해도 되는 사유 재산쯤으로 여기는 여느 주인들과 달랐고, 피지배민족을 압제하고 수탈하는 제국주의자들과 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종을 사랑하여 병을 고치려고 최선을 다했으며, 유대 민족을 사랑하여 그들을 위해 회당을 지어주었습니다. 약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예수님을 놀라게 한 백부장의 믿음이었습니다. 나보다 약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믿음이 참인지 거짓인지, 그의 소속이 하나님 나라인지 인간제국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나보다 약한 사람을 떠올려보십시오.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청소년 매일성경 큐티집에 대해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최승락 교수는 “일반 교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묵상집 같으면 굉장히 문제가 크겠다고 본다.”고 응답했다. “비유를 다른 각도에서 보는 시도를 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더라도 주장의 근거가 있어야 하고, 또 그 근거가 검증 가능하여야 할 것이다. 이 경우는 당대의 사회적 상황에 너무 큰 해석의 키를 주고 있는 것에 비해 비유가 사회적 상황의 기술을 기반으로 하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않는다. 비유 속에서는 종종 과장법이 사용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침묵하며, 실제로 다섯 달란트를 종에게 맡길 주인은 거의 없을 것”이란 점도 지적했다.

 

이어 “저자는 검증되지 않은 관점을 검증의 기회도 주지 않고 일반화시키는 접근을 하고 있다. 그것도 책임을 질 주장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질문들 뒤에 자신을 숨겼다. 더군다나 다분히 선동적인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데, 이는 매우 비약이 크다. 이를테면 ‘갖지 못한 사람에게서 달란트를 빼앗아’ 같은 표현은 사실과 맞지 않다. 주인은 종의 것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을 돌려받은 것일 뿐”이라고 했다. “ ‘착취하지 않고는’ 갑절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표현도 남의 성실한 노력을 싸잡아 착취로 매도하는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 정도면 다르게 읽기 정도가 아니라, 뒤집어엎기 정도인 것 같다. 이런 글을 비판적 시각이 없는 일반 성도들을 위한 묵상 차원에서 제공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라 생각된다.”고 의견을 밝혔다.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 은퇴교수인 이상원 교수는 누가복음 7장 본문에 대해서 전적으로 잘못된 해석이라고 비판했다. 제국주의라는 단어는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마르크스주의적인 사회분석 도구를 성경을 읽는데 투영한 것으로 잘못되었다고 했다. '제국주의', '피지배계급'에 대한 언급과 '약자'라는 해설이 더해진 부분에 대해서는 이렇게 비평했다. 1970년대 이후에 윌러스틴이 주장한 것으로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변증법적인 대결구도에서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의 대립구도로 사회를 해석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미국을 제국주의로 그 이외 지역을 피지배국 혹은 식민지국가로 바라보는 패러다임이다. 이어 이 교수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은 부자든 가난한 자든, 로마에 속한 시민이든 유대인에 속한 시민이든,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지식인이든 비지식인이든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을 칭찬하신 것은 아무런 의심 없이 예수님을 받아들인 그의 마음의 태도를 칭찬한 것! 이 본문을 두고 제국주의를 논하며 거창한 이데올로기적인 것을 투영하여 본문해석하는 것은 왜곡되어 본문을 해석할 여지를 준다고 했다.

중고등부를 맡고 있다는 한 교사가 해설이 이상하다며 자신의 SNS에 캡쳐해 올린 청소년 매일성경의 일부 내용이다.
중고등부를 맡고 있다는 한 교사가 해설이 이상하다며 자신의 SNS에 캡쳐해 올린 청소년 매일성경의 일부 내용이다.

 

기독교미래인재연구원장 박광서 박사(고신_경기서부노회)는 위와 같은 성경해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사회주의 이념에 입각하여 성경을 왜곡 해석한 전형적인 비성경적인 묵상으로, 무산계급와 유산계급, 성공자와 실패자, 능력자와 무능자라는 지배 피지배라는 이분법적 계급의식과 소외와 착취, 의식혁명의 필요성을 선동하는 매우 위험한 해석이다. 저자는 영적 신학적, 역사적, 문법적인 성경해석의 기본원리조차 무시하고 문화와 좌익이념에 기초하여 성경을 해석함으로 그리스도인의 <청지기적 사명>, 구원의 은혜, 하나님의 주권과 같은 중요한 교훈을 희석시키고 있다. 교회에서 이념 거론하지 말라면서 자신들은 괜찮다는 P.C(정치적 올바름)의 또 다른 내로남불적 궤변으로 평가했다.

 

위와 같은 매일성경의 해설에 대해 매일성경 편집총괄을 맡고 있는 김대로 목사와도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집필진을 선발할 때 어떠한 과정으로 진행하는지? 

A. 추천을 받고 원고를 받아 확인 후 1~2년 등 기간을 정해 집필을 요청한다.

 

Q. 이번 경제학과 교수의 성경해석에 관해서 할 말 없는가?

A.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기 위해서 이런 분들을 초청했으나 자신들의 의도와 달리 성경해석에 대해 조금 잘못된 견해가 나가서 5-6월호로 연재를 중단하기로 했다.

 

Q. 3-4월호에도 독자 항의가 있었는데 왜 5-6월호는 그대로 실렸는가?

A. 이미 인쇄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또 청소년 매일성경 달란트 비유와 포도원 품꾼 비유 같은 경우엔 정해진 날짜에 대한 본문해설이 아니라 ‘기사형식’의 해설로 부록처럼 들어가기에 놓친 부분이 있다. 주제를 보고 걸러낼 것은 걸러내지만 그 부분에서는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이 있다.

 

Q. 매일성경 해설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어떻게 되나?

A. 본문해설 집필 맡은 자가 해설을 작성한 후 매일성경측에 넘기면 자체적으로 감수하는 편집팀들이 있다. 각 책마다(매일성경 큐티집 종류가 연령으로 나눠져 있다) 편집자들이 있다. 살펴 진행한다.

 

Q. 어른 매일성경에서도 좌성향의 이념을 기반으로 한 해설들이 몇 번 발견되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A. 그런 오해를 드릴만한 것은 사과한다. 매일성경 편집자들은 모두 보수교단 목사들이다. 이념적인 표현들이 편집자들의 의도와 달리 불편함도 주고 오해를 발생시키고 있다. 매일성경 편집진들도 진행하면서 독자들의 반응을 본다. 이념적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데, 잘못 사용하여 불편함을 드리는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씩 조금씩 고쳐나가고 있다. 그런 부분에 관해서는 독자들도 연락을 주고 있다. 편집부에서 편향적인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다.

 

한편, 이런 성경해석과 해설을 놓고 이상원 교수는 신학계에서 신약쪽이 가장 혼란스럽다며, 최근에는 보수신학교 출신이나 보수신학을 공부했다고 안전히 믿고 맡기기 힘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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