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열렸음에도 희망을 말하기가 두려운 것은 웬 까닭일까? 미국 월가를 중심으로 발단된 금융위기의 먹구름이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본주의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문명사학자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새로운 것이 탄생하기 위한 진통인가 아니면 세계 문명의 붕괴를 알리는 종말의 징조인가.


오늘의 위기를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바울 사도의 외침이 떠오르는 것은 그가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통해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믿음의 비밀을 간직한 믿음의 장인이요 선현이기 때문이리라.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바울은 그의 파란만장한 선교여정 중 환난 가운데서 인내를 배웠고 그가 원했건 원치 않았건 고난의 현실에서 그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그의 개인적인 삶뿐만이 아니라 그가 살아가고 있는 역사가 하나님의 연단 가운데 있음을 감지했다. 무엇 때문에 믿음을 가진 그와 그가 살아가고 있는 역사가 고난의 터널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가 깨달은 것은 역사를 경영하시며 인간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신다는 점이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부끄럽지 않는 소망"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로 해석하고 있다. 이 하나님의 법을 깨달은 그가 어찌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현재 그가 누리고 있는 것보다 더욱 귀하고 나은 것이 탄생하기 위한 인내와 연단의 과정을 믿음으로 잘 이겨내지 않겠는가? 시인 고훈 목사님의 '동 터오는 새벽을 누가 막으랴'라는 시는 시련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새벽을 기다리는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희망을 증언하고 있어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들린다/어디쯤 오고 계시는 그분의 발자국 소리/나도 일어나고/너도 일어나고/우리 모두 일어나/뱀보다 지혜롭고/비둘기보다 순결한 옷 입고/동 터오는 새벽을 경건으로 맞자/넓은 길보다 좁은 길을 택할 줄 알아/땀 없고 눈물 없는 승리보다/차라리 피 흘리고 쓰러짐이 좋지 않으랴…우리가 누군가/거룩한 나라요/왕 같은 제사장이요/택하신 족속이요/소유된 백성이리니/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가장 좋은 것은 이제 오리니/주저앉지도 안주하지도 말고/우리 모두 함께 힘찬 주먹 쥐고 일어나/세계를 향해/아시아의 산위에 커다란 등불을 켜자/보인다/어디쯤 오고 계시는 그분의 찬란한 모습."


믿음의 상상력을 가지고 현재 전 세계에 드리우고 있는 암운을 바라보면 역사의 소용돌이의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감지할 수 있다. 그분은 지금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면서 인류구원 역사를 펼쳐 가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창세 때부터 하나님의 주권을 탐하는 인간들이 하늘 꼭대기까지 쌓아올린 바벨탑을 끊임없이 무너뜨리는 분이시다. 개인들이 탐욕 가운데 홀로 쌓는 야망의 탑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담합하여 쌓아올린 야망의 탑도 무너뜨리는 분이시다. 무너뜨리는 것만이 그의 목적이 아니다. 그는 끊임없이 하늘로부터 오는 비전으로 무장된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 인류구원을 위한 부끄럽지 않는 소망을 창조하는 분이시다. 더 나은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기 위해서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환난과 연단을 두려워하는가? 부끄럽지 않은 소망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며 힘찬 새해의 첫걸음을 내딛자!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