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은 제75회 총회 시에 목사의 축도‘있을 지어다’를‘축원합니다.’로 변경하기로 결의 하고 시행중이다. 그 이유가 첫째는‘축도’도 기도이기 때문이요, 둘째 이유는 축도의 용어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축원합니다.’ 보다는 ‘축원합니다.’ 앞에 사용하는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즉‘,,,있기를 축원합니다.’라고 해야 하는데,‘,,,계시기를 축원한다.’든지‘,,,하시기를 축원한다.’고하면 무엇보다 국어 문법상으로 맞지 않는다. 왜냐면 축도의 주격이 되는 말은‘예수그리스도, 하나님, 성령님이’아니고 ‘은혜, 사랑, 성령의 교통하심’이다. 추상명사나 무 인격 주어에는 ‘하시다거나, 계시다’고 하면 안 된다. 반드시 ‘,,,있기를 축원한다.’라고 해야 한다.


고신교단은 제52회 총회에서 신학적인 근거로 제47회 총회의 결의대로와 성경(고후13:13)대로 하는 것이 옳은 것으로 신학부안 대로 ‘있을 지어다‘로 재확인했다.


그런데 제52회 총회에서 신학적인 근거로 제시한 제47회 총회결의(신학부) 내용을 보면 “축도 및 설교 시 ‘축원하옵나이다.’ 사용 건은, 축도는 종전(,,,있을지어다.)대로 시행하고, 설교 시 ‘축원 하옵나이다’는 남용치 말 것”라고 기록되어 있다.


저가 문제시(問題視) 하는 부분은 “설교 시 ‘축원 하옵나이다’는 남용치 말 것” 이라고 한 단서조항이다.


새로 나온 국어사전(민중판 밀레니엄)에서 ‘축원’은 잘 되게 하여 달라고 빎, ‘축복’은 행복을 빎,”로 기술하고 있다. ‘축원’이나 ‘축복’이나, 둘 다 소원을 이루고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빈다.’는 뜻을 공통점으로 가지고 있다. ‘축복’의 헬라어 ‘율로게오’도 ‘복을 빌다’의 뜻이다. 그리고 한문 ‘祝’은 빌 축자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빈다.’는 말에 심사숙고를 해야 한다. ‘축원’이나 ‘축복’은 복 받기를 위해 빌고, 잘 되기를 빌고 소원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나님을 향해서는 사용 할 수 없다.


누가 야곱을 축원하고 축복했을까?


"창 27:30→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

창 47:10→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하나님이‘축복’한 것이 아니고 이삭이 ‘축복’했다. 즉 神이 축복한 것이 아니고 人間이 축복했다. 하나님이 하 실 수 없는 것이 없으신데, 하나가 있다. 그것이 바로 '축복'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신(神)이신데 왜 한 번의 ‘축사’와 3번의 ‘축복’을 사용(요 6:11, 막10:6, 눅24:50,51)하셨을까? 그것은 인성(人性)으로 계신 것이므로 그렇다. 즉 예수님은 삼위 중 한 분이시지만 육체로 계실 때는 축복도 해주시고, 소원도 올리시고, 간구도 하시고, 화도 내시고, 울기도 하셨다. (히5:7)


그러나 사도 중에 사도로 일컫는 바울도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축복하고 축원해주었다.(고전10:16)


만약에 하나님이 祝福 혹은 祝願(복을 빌어주심)해 주시는 분이라면 그분이 과연 신(神)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그것이 곧 신성모독의 죄는 아닐까?


하나님은 '福'을 직접 주시는 분이시지, 간접적으로 다른 신(神)에게 빌어서 주는 식의 축복(祝福)이나 축원(柷願)은 하시지 않는다.


따라서 제47회 총회(신 학부)에서 ["설교 시 축원합니다."를 남용치 말 것]이라고 한 것은 잘못 된 결정이다. 목사가 강단에서 교인들을 대상으로 복을 받도록 마음껏 축원하고 축복하는 것이 총회신학부가 결의 한 대로 과연 자제해야 할 일일까? 


오늘 우리교단 목사들이 축도에 대한 총회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거나 중구난방식이다. 통일이 필요하다. 또한 축복, 축원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강단에서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제라도 신학부에서는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라든지,",,,함께 계시기를 소원한다."라 는 목사의 축도에 대하여 과연 맞는 것인지, 옳고 그름을 밝혀서  "하나님 축복하옵소서! 함께 계시기를 축원합니다."라는 표현이야말로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결정이 필요 한 시점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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