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성 폭풍 때문에 예정한 목적지로 가지 못하고 세인트루이스 공항 활주로의 한 비행기 안에 앉아 있었다. 그 날이 가기 전 미주리주 스프링필드에 도착하려면 폭풍이 멈추어야 했기에 희망을 안고 기다렸다. 많은 여행객들과 달리 난 빡빡한 스케줄이나 업무 마감 시한을 가지고 있지 않아 좀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폭풍이 멈추고 몇 시간 늦게 도착했지만 설상가상 비행기 화물칸 문이 얼어붙어 45분이 지나서야 가방들을 터미널로 옮길 수 있었다.

비행기 연착은 인생의 수많은 좌절에 비하면 작은 일이지만 그 일을 계기로 나는 현대 사회의 주된 문제 가운데 하나가 조바심이라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히브리서 기자가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자"(히 12:1)고 호소한 데는 이유가 없지 않다.

예전에 나는 남편과 아버지를 사별하고 슬퍼하는 한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스프링필드에 간 적이 있었다. 켄 보이스라는 그는 나에게 대부(代父)처럼 된 분이었다. 그의 아내 도리스, 그리고 성인이 된 그들의 두 딸을 위로하고자 갔었다. 도리스는 남편이 수면 중 숨을 거둘 때 마치 그가 하늘로 곧장 걸어 올라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밤새 남편의 손을 잡고 있었다.

스프링필드 행 비행기 안에서 사람들이 조급해 하던 광경, 그리고 참으로 훌륭했던 이 사람의 삶을 기리기 위해 스프링필드로 갔던 일. 둘 다 스프링필드와 연관이 있었다. 두 사건이 우연의 일치는 아닌 것 같았다. 인간적인 성마름과 훌륭한 삶을 살았던 켄 보이스의 실상을 비교해 볼 때 난 부끄럽다. 긴 인생을 사는 동안 켄은 인내심이 무언가를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말년에 파킨슨씨병이라는 육체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그는 고도의 인내를 보여주었다. 우리가 친구, 남편, 아버지에 관한 옛 이야기를 함께 나눌 때 난 위대한 영혼의 성장에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극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 시간과 인내, 그리고 토머스 켈리가 말한 '중심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집중. 이것이 필요하다.

포스트모던 사회의 인간은 서두름과 성급함, 신속함에 중독돼 있다. 이것은 영혼을 시들게 한다. 오늘날 절실히 필요한 것은 시간의 넉넉한 삶이다. 많음과 다수의 유혹에 압도당할 때 우리는 넉넉한 삶을 경험할 수 없다. 통신과 컴퓨터 속에서 조급해 할 때,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라는 신적 속삭임에 순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순간, 즉각, 돌발을 갈망한다. 하지만 이런 고질적 병폐에 순응하지 않는 것들도 많다. 하나님 앞에서 영혼이 성장하는 것도 확실히 그 중 하나다.

시간과 공간과 고요함. 이것들은 하나님이 인내심을 기르기 위해 사용하시는 장비들이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되풀이되는 충고 가운데 하나가 "여호와를 기다리라"는 간단한 권고다. 하지만 시간이 넉넉한 삶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 말씀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결코 알지 못한다. 토머스 켈리는 "내가 알기로, 하나님은 조급한 열망이 가득한 쟁탈전 속으로 결코 우릴 인도하시지 않는다"고 했다. 당신과 내가 영혼의 고요함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빈다. 그것만이 시간이 남아도는 삶을 창출해낼 수 있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