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주 선교사님의 소천 받으심에

슬픔의 기억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있다. 한 번 만난 사람은 기어코 헤어진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물론 불교계의 말이다. 사람이 한 번 만나 헤어짐을 뉘라서 막을 수 있겠는가! 히스기야왕이 병든 후에 그림자를 10도 뒤로 물렸던 아하스의 해시계도 하나님의 '생명싸개'(삼상 25) 앞에선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티의 끔찍한 대지진으로 17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 이만큼 슬펐을까! 그 참상은 하나의 큰 사건이며 사고였다. 하지만 나는 박은주 선교사의 별세 앞에서 같은 남미 대륙의 동료로서의 슬픔을 억제할 길이 없다. 현재로서는... 다신 지상에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슬픔이다.

나는 돌아가신 분을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로서 기억하고 싶다. 그는 선교사요 어머니요 KPM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우리의 식구였다. 각종 사망 소식을 접하건만 선교사들의 죽음 앞에선 은금의 천만 근과도 바꿀 수 없는 선교현장의 감사를 표할 길이 없다. 유족들께 나의 사랑을 전한다. 우리, 천국에서 만나보자 아침 될 때 거기서 만나자!

고 박은주 선교사(우)와 이정건 선교사
고 박은주 선교사(우)와 이정건 선교사

새벽에 그의 부음을 받고서 하늘에서 커다란 꽃이 하나 떨어지는 것 같아 철렁했다. 사람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는 순번이 없다 하지만 그는 아직은 갈 때가 아니라 생각하니, 얼마나 아까운가? 나는 수년 전 동료 전성준 목사님의 친아우 고/전정섭 선교사가 사역 중에 소천을 받자, 열대의 무더운 기후를 무릅쓰고 이웃 나라인 파라과이로 날아갔다. 이역만리에서 선교사의 슬픔이 북받쳐 올랐던 것이다. 주검을 보고도 주의 품에서 볼 수 있다는 믿음 안에 견디게 되었다. 그의 무덤 앞에서 나는 속절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지 않은가!

이젠 같은 남미 대륙의 박은주 선교사님이 KPM본부의 케어프로젝트에 헌신하다 소천을 받은 것이다. 선교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중 이만한 일이 어디에 또 있을까? 남편 되는 동료 이정건 선교사님에게 어떻게 슬픔을 표하며 무슨 말로써 위로할까 싶다가도, 장례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가장 가까운 길이라 생각하며 못내 입을 다문다. 절대고독과 함께.

830일 새벽 5시에 윤춘식 (KPM 은퇴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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