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나갈랜드에서 대신 아카데미를 만나다.


▲ 해발 2500미터에 서있는 교회당, 나갈랜드는 이런 교회를 찾아보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반갑고 감사한 얼굴로 우리를 환대한 저들에게서 시간과 공간, 피부색과 언어를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라슈는 목사는 지금은 ACTS에서 박사과정 중에 있다. 그래서 웬만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그리고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그 따뜻한 정이 담뿍 담긴 사랑으로 목회를 하고 있다.우리가 탄 차는 고히마를 출발하여 비행장이 있는 디마푸르를 향해 달렸다. 아래위 좌우옆으로 얼마나 흔들어 대든지 가만 앉아 있어도 저절로 춤을 추는 그야말로 dancing road 였다. 그렇게 3시간 가량을 달려 우리는 라슈 목사가 목회를 하는 교회에 도착을 했다. 그들은 우리를 만나 같이 예배를 드리고자 기다리고 있었다.

 

▲ 라슈목사가 목회하는 교회의 성도들이 저녁예배를 드리고 있다.


작고 쓰러져 가는 교회를 맡아 이제는 큰 교회로 성장하여 예배당을 새로 지었다. 신학교에서 그리고 CBCC 총회에서 작은 지역 교회에서 느끼는 한국적 사랑은 18년을 그들을 돌보고 성장 시킨 최목사의 수고의 땀과 눈물의 결실일 것이다.


라슈 뿐 아니다. BTC 신학교에 있는 교수 3명도 ACTS에서 학위를 받게 했고 또한 98년도에 느보초와 제체페 목사를 초청하여 고신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게 하여 이들이 2년 반 동안 훈련을 받고 교육학 석사의 학위를 받고 돌아가 대신아카데미의 교장과 기획부장(교감역할)이 되어 학교를 운영했다.

  

라슈 목사는 지금 아세아 연합 신학대학원(ACT)에서 박사 과정을 하고 있으며 2007년 3월 학위를 받을 예정이다. 그리고 제체페는 대신아카데미에서 교감 역할을 하며 다음에 한국에 와서 박사과정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두 목사는 한국에 있을 때 나갈랜드의 미개한 농업을 개발하려는 열정을 고지고 6개월간 함안 군북에 있는 비닐하우스 농가에 기숙하면서 선진 농업의 기술을 습득하기도 했다고 하니 나갈랜드의 희망을 보게 한다.



▲ 최한주 목사가 영어로 느보초목사가 힌두어로 통역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다.

또한 현지 목회자들이 목회자가 되었지만 목회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사역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대부분이다. 이점을 안타깝게 여긴 최목사는 1997년 3명의 현지인 목회자(락호, 리체, 라슈)를 초청하여 대신동 교회에서 4주간 목회연수하게 하였다. 교회를 어떻게 운영하며 목회자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습득하고 돌아가서 한국교회에서 배운 대로 주일학교를 개교하기도 하고 나아가서 전도회를 조직하여 전도를 실시하게 하였고, 선교원을 개교하여(고히마 교회) 지역 주민들에게 호응을 받는가 하면 새벽기도회를 한다는 것이다. 


최목사의 나갈랜드 사랑은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예약을 한 호텔에 들어서자 우리는 체크인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우리의 체류허가서를 고히마에 있는 딩구 목사가 가지고 있었는데 받아오는 것을 깜빡했기 때문이다. 딩구목사는 고히마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필리핀으로 가게 되어 있었다. 허가증이 없으면 비행기를 탈 수도 없다. 급히 연락을 해서 마침 디마푸르에 오는 목사에게 허가서를 전달하여 다음날 비행기를 타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오늘 밤이 문제였다.


라슈 목사와 대신아카데미 교감이 경찰서를 찾아가 저들이 보증을 서고 임시 허가증을 받아오기로 하여 우리는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로비에는 제법 많은 건장한 청년들이 앉아 있었다. 마침 카드놀이를 재미있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 옆에서 구경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신호기에 불이 깜빡거리고 그들은 황급히 하던 것을 치우고 경계 태세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소위 어떤 업무(?)를 마친 보스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앞뒤로 호위에 들어가는데 모두 허리에 권총과 어떤 이는 자동소총을 들고 있었다. 마치 갱 영화를 보는 장면 같았다. 만약 갱단의 전쟁이 있었다면 우리는 그들 옆에 있었다는 이유로 목숨이 온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나간 문을 바라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토록 험하고 위험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최한주 목사는 나갈랜드 선교를 그토록 중요시 하는 것일까. 그 밤에 그것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최목사는 이런 위험한 일을 처음 겪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한 번은 교인들과 함께 퍼채로의 신학교를 찾았는데 고히마에서 비용 때문에 하룻밤을 자고 가는 것을 생략하고 밤중에 갔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으쓱한 지역에서 갑자기 괴한이 나타나 차를 세웠다고 한다.


모두들 놀라 그들을 보니 얼굴에 복면을 하고 권총과 칼을 차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갈랜드 독립운동을 하는, 인도가 위험인물들로 경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신학교 교수가 자세히 설명을 하고 또한 최목사의 이야기를 그들도 듣고 알고 있는 터이라 보내 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쩌면 목숨을 내어놓고 이런 선교를 하는 것이 BTC 신학교가 위치하고 있는 지정학적인 중요성 때문이라고 내내 강조하며 말했다.. 외국인 선교사가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미얀마, 네팔, 아루나찰과 부탄 지역으로 원주민을 통한 선교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근래에 와서 한국의 여러 교회에서도 나갈랜드의 지정학적인 장점을 인식하고 그 부분에 중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속도를 내는 것은 개혁주의 신학을 원주민 사명자에게 심어주어 그들로 하여금 개혁주의 교회를 세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최목사의 사명을 잘 이해한 대신동 교회는 BTC 신학교를 세우며 후원하기 시작했고 BTC는 주변 나라 청년들을 받아들여 선교사로 양성하고 있다. 그들 중에 더러는 졸업하여 현지로 나가 사역하므로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수천 명이 모이는 교회를 세우는 열매를 거두고 있다.

  

대신동 교회는 이들 나라에서 온 학생들을 특별히 선발하여 장학금을 주고 졸업한 후 교회를 세우도록 지도하였다. 이 지역에서의 월 생활비는 $35이다. 그러므로 대단히 효과적인 선교사역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나갈랜드 주변 지역 선교 상황은 다음과 같다.

  1) 미얀마 지역

          목사            대상부족     맡은 교회 수

     Pastor Langthur    Makuri tribe    5개 교회

     Pastor Neiwete     Hemi tribe      4개 교회


  2) 네팔 지역

     Pastor Bahadur     Thapa tribe      3개 교회

     Pastor Nim Prasad  Nepalic          1개 교회


  3) 아루나찰 지역

     Pastor Jonko Ango  Arunachal       3개 교회

     Pastor Moden Deri  아루나찰 지역의 팀장으로 Toto, Monigan, Machuka

                         사역자들과 함께 36개의 교회를 돌아보고 있음.

  4) 아삼 지역

     Pastor Marhusai    Hatkhati tribe    1개 교회

     Pastor Ranjit Roy   Hatkhati tribe    1개 교회


물론 위의 교회와 목회자들을 전적으로 도운 것(full support)은 아니다. 그러나 CBCC 교단이 재정적으로 열악하므로 홀로 감당할 수 없어서 대신동 교회가 물질적 후원과 기도로 도우므로 이와 같은 교회로 발전할 수 있었고 활발한 선교 활동을 진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최고의 보람 Mission School-대신아카데미를 세우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일찍 디마푸르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 마을을 찾아갔다. 야자수 나무와 바나나 나무가 울창한 넓은 시골이었다. 우리를 그리로 안내한 최목사는 도착하자마자 오랜 시간 기도를 드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것은 이제 그의 마지막 꿈을 실현해 달라는 기도였다.


 

▲ 농장을 관리하는 관리인의 가족과 함께 기념사진
▲ 지금은 바나나 농장이지만 장래는 대학교가 들어설 3만평의 학교 부지

 

기도를 마친 그는 말했다. “여기 약 30,000평의 대지를 하나님이 대신 아카데미에 주셨습니다. 여기에 마지막 해야 할 남은 한 가지 일은 바로 대학을 세우는 것입니다.”


최목사와 함께 대신동 교회는 1996년 대지를 구입하고 1997년 건축 기공예배를 드린 후  1998년 처음 학생을 모집하여 개교하였다. 학생 수는 50명이었다. 대신동교회가 지원하여 세운 학교라고 대신아카데미라고 이름 지었다. 현재 9학년(한국의 중등학교 과정) 과정에 학생 수는 539명으로 늘었다.

  

대신아카데미는 현재 나갈랜드에서 가장 우수한 학교로 평가받고 있다. 올해 졸업반 학생들이 나갈랜드 평가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어 좋은 대학에 많은 학생들이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고 교장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 대신아카데미라는 표지석에서 최한주 목사

 

 

여기에 최목사의 오랜 기도의 소원이 이루어져 장차 대학이 설립된다면 한국의 연세대와 같이 훌륭한 대학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약 3만평 가량의 대지는 이미 주께서 주셨다. 지금은 때를 기다리며 바나나 농장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대지를 주신 하나님이 건물도 세워주셔서 대학교가 세워질 것이라고 최목사는 믿고 있다. 그리고 이 일을 함께 협력할 뜻 있는 사명자를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다.


 

   
▲ 대신아카데미 앞에서 개학전 미리 학교에 온 학생들과 교직원
   
▲ 개강을 앞두고 미리 학교에 나온 학생들, 이들이 졸업반 학생들로 이번 평가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아 나갈랜드의 자랑이 되었다.

 

그러려면 시민교회가 그나마 협력할 수 있을 터인데 어찌 작은 교회를 가게 되었냐고 물으니 그는 그냥 웃으면서 그러나 단호하게 한마디 했다. “하나님이 시작하셨으니 마무리도 하나님이 하시겠죠.”

 


▲ 서울시민교회가 지원하여 세운 기숙사, 중앙이 최목사 그 오른쪽이 교장, 아직 2층이 미완공이다.
▲ 개학을 앞두고 미리 학교에 나온 학생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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