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 사회도 국가도 교회도 기초를 잘 다져야 합니다. 기초 없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신앙적인 면에서는 네 가지가 떠오릅니다.
      

첫째, 설교를 집중해서 잘 들어야 합니다.

졸거나 딴 생각하지 말고요. 존 웨슬리의 일화입니다. 그가 어느 날 설교를 하는데 회중 가운데 몇몇이 졸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상해서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불이야! 불이야!” 졸고 있던 교인들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습니다. “어디? 어디요?” 그들은 주위를 돌아보면서 소리치며 물었습니다. 웨슬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옥에요! 설교를 들으면서 조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도 단골 졸음 성도가 계십니다만 웨슬리 같은 대가도 저런 문제로 씨름하셨다니 위로가 됩니다. 허허..
      

둘째, 자기 교회 목사님의 설교가 뛰어나지 않아도 꾸준히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한 교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 교회에 30년간 다니면서 설교를 들었지만 하나도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그 말을 듣고 다른 교인이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30년간 음식을 먹었으나,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살아남은 것은 그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다. 설교 들은 것이 기억나지 않아도, 내 영혼이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고 신앙이 유지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때를 따라 설교를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예배 시간에 최소한 한번은 설교자의 설교를 뚫고 개인적으로 말씀하신다.”
      

셋째, 예수의 이름을 품어야 합니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교황 이노센트 4세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교황청 발코니에 있었습니다. 교황은 13세기 막강한 교황권을 휘두른 사람이었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의 대 신학자였습니다. 그때 마침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으로 돈주머니가 수송되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교황이 말합니다. “저것 보시오. 이제는 교회가 ‘은과 금은 내게 없다’라고 말하던 시대는 지나갔소.” 그러자 아퀴나스가 이를 받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앉은뱅이더러 ‘일어나 걸어라’고 말할 수 있던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교회에 예수의 이름이 사라진 것을 꼬집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이 세상의 소망이라고 찬송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돈이 세상의 소망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상태를 늘 점검해야 합니다.
      

넷째, 가장 평범한 기초는 교회 출석입니다.

이것은 놓쳐서는 안 되는 보배입니다. 실제로 교회 출석이 성도들의 신앙의 척도임을 목회를 하면 할수록 보게 됩니다. 흥미로운 질문이 있습니다. 살아서 교회를 가장 신실하게, 또 가장 오랫동안 다닌 사람은 누구일까요? 약간 오래 된 수치이지만 1976년 당시의 통계에 의하면 미국 아이오와주 케오쿡에 있던 제일침례교회의 성도 린퀴스트 여사라고 합니다.

그녀는 1888년부터 88년동안 꾸준히 주일 예배에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성탄절이나 부활절 예배에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음은 물론입니다. 그 88년동안 그녀는 그 교회의 목사가 15번 바뀌는 것을 보았으며, 8천번 이상의 설교를 들었고, 4천번 이상의 기도회에 참석하였으며 2만 9천번 이상의 취침기도를 드렸습니다.

또 그녀는 50년 이상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였으며 그녀의 제자들 중 수많은 목회자도 배출되었습니다. 결과를 놓고 보면 대단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신앙생활은 지극히 평범합니다. 그러므로 열매 맺는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녀처럼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평범해도 꾸준하게! 그러면 멋진 열매가 맺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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