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윈, 미학적 판단력의 소외

개화된 현대인들이 거의 유일하게 즐기는 토속신앙 풍습

죽음의 상징이 육적 쾌감의 도구로

야만 풍습에 가려진 개화의 주역 종교개혁

 

● 도약의 시작 - "기독교는 패배했다"

2014년 10월에 서태지는 “크리스말로윈”(Christmalo.win)이라는 곡을 발표했다. 서태지의 설명에 따르면 이 곡 제목은 ‘크리스마스’(Cristmas)와 ‘할로윈’(Halloween)의 합성어라고 한다.

​눈치를 챈 사람들이 있겠지만, 사실 이 곡의 제목은 크리스마스와 할로윈의 합성어가 아니다. 만약 합성어가 되려면 “L”이 하나 더 추가되어야 하며(-allo), “윈”은 “win”이 아니라 “ween”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굳이 "malo" 뒤에 온점을 찍은 이유도 의심스럽다.

제목에 대한 여러 해석들이 있지만 가장 설득력이 있는 해석은 “그리스도(Christ)를 마귀(Malo)가 이긴다(win)”이다.

크리스말로윈 뮤직비디오에서 전체주의로 묘사되는 크리스마스 (출처: https://youtu.be/guovNnTnchQ)
크리스말로윈 뮤직비디오에서 전체주의로 묘사되는 크리스마스 (출처: https://youtu.be/guovNnTnchQ)

​이 곡은 산타클로스로 상징되는 크리스마스의 풍습을 욕심과 탐욕, 거짓과 잔인함으로 점철된 풍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의 풍습을 아름답고 선한 풍습이라고 속았던 아이에게 그 진실을 알려주는 내러티브로 구성되어있다.

곡에서 산타가 선물을 주는 풍습은 기독교 문화와 가치에게 점령된 세상을 상징한다는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기독교가 선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모두 착각이며 기독교는 욕심과 탐욕이 극대화 된 결과일 뿐 실상은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정리하자면 이 곡은 기독교 문화와 가치에 대한 사탄(malo) 도전이다. 실제로 서태지는 인터뷰에서 “세상에 규정된 선과 악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된” 곡이라고 밝혔다. 기독교에 의해 주도된 윤리에 대한 의문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서태지가 10월의 할로윈에 12월의 크리스마스를 비판하는 것은 다소 뜬금없어 보인다. 물론 실제로 귀신을 섬기는 토속신앙을 추종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비판이 가능하겠지만, 현대인들은 이 미신을 믿기 때문이라기보다 그저 즐기기 위해 할로윈에 참여하는 것이다. 기독교야 모든 우상숭배의 모양에 대해서 경계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작금의 할로윈 문화는 모든 미신이 제거된 문화 자체가 맞다면 기독교를 비판할 권위를 갖지 못해야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가 단순히 문화가 아닌 복음이 그 중심에 있는 것처럼, 할로윈도 단순히 문화 뿐만 아니라 어떠한 목적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시에 인간은 역사적 맥락에서 벗어나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서태지가 그런 생각을 한 것도 어떤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면, 작금의 할로윈에는 어떤 맥락이 작용되고 있는 것일까? 

면밀히 살펴보면 할로윈 축제를 단순한 문화로만 이해하기에는 특이한 구석들이 있다. 그것은 할로윈을 즐기기 위해선 몇 번의 '도약'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상과 합리성이 부딪힐 때 합리성으로부터 도피하여 일련의 합리적 사유를 생략하고 자신의 이상에 이르는 것을 도약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술이나 마약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와 유사하다.

 

● 종교: '구별'로부터 '타협'으로의 도약 

​할로윈 풍속은 고대 켈트족에서 시작된다. 켈트족은 1년이 10달이다. 이 가운데 한 해의 마지막과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10월 31일의 사윈(Samhain) 축제가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했다. 그들은 이날에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죽은 자의 영혼이 이승에서 떠돌아다닌다고 믿었기 때문에 귀신 분장을 통해서 귀신이 자신을 동료로 착각하게 하고 지나치게 하려는 풍습이 생겨났다. 이 풍습이 오늘날 할로윈 데이에 즐기는 귀신분장의 유래이다. 

할로윈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사윈(Samhain) 축제는 현재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중심으로 재현되고 있다. ⓒRani Scott (사진출처: https://www.list.co.uk/article/85434-everything-you-need-to-know-about-edinburghs-samhuinn-fire-festival/)

성경은 우상숭배를 큰 죄악으로 정죄하므로 이교도들과의 구별된 삶을 명령하는 반면에, 초기 로마가톨릭은 교세확장을 위해 이교도들의 풍습을 수용하고 기독교를 토착화시키는 방법으로 선교방침을 선회했다. 로마가톨릭은 종교적 목적을 위해 복음을 생략하고 도약했다. 당연히 효과는 좋았다. 덕분에 사윈 풍습은 뿌리 깊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마침 8세기 경 모든 성인 대축일(All Saints' Day, 과거에는 '만성절'이라고 불렸다)이 11월 1일로 고정되면서 사윈 축제는 자연스럽게 모든 성인 대축일의 전야축제가 되었다.

당시에는 '성인'(聖人)을 고대 앵글로색슨족의 언어로 'hallows'라고 불렀기 때문에 모든 성인 대축일은 "All Hallows' Day"라고도 불렸다. 여기에 전야를 뜻하는 'even'이 붙여져서 할로윈(Halloween)이 된 것이다. 이렇게 비성경적 풍속은 서구의 기독교 문화의 바다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 역사: '현대'로부터 '야만'으로의 도약

같은 날 16세기, 비텐베르크 성문에 못이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성문에는 무언가가 붙여져 있었고 이를 보기 위해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거기에는 "95개조의 반박문"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다. 마틴 루터가 로마가톨릭의 부패를 지적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게시한 이 글은 곧 독일어로 번역되어 삽시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만성절과 겹쳤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루터가 이를 의도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만큼 루터는 교회를 하루 빨리 우상으로부터 구출하기를 열망했다. 세상을 미신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개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교회를 회복한 것은 물론, 중세에서 근대로의 혁명을 주도하고, 영국의 개혁과 미국의 발흥의 씨앗이 되며, 세계 질서의 토대를 마련하여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종교개혁의 기념은 고대 야만인들의 미신 풍속의 그림자에 가리워졌다. 자신들을 낳고 기른 부모로부터 돌아서서 그보다 훨씬 우매한 다른 부모의 자녀노릇을 하고 있는 도약의 상태이다. 

개화된 현대인들이 고대 야만인들의 미신 풍속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개화된 한국인 시민들의 경우 풍작과 풍요를 기원하는 강강술래를 매년 할로윈처럼 즐기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쥐불놀이 하며 축제를 성대하게 즐기지도 않는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개화된 한국인이라면 미신적인 제사 행위에 불만을 갖기도 한다.

마틴 루터가 95개조 논제를 성문에 게시한 날이 종교개혁 기념일이 되었다. 그림은 벨기에 작가 페르디난드 파웰(Ferdinand Pauwels)의 작품. ⓒ위키피디아
마틴 루터가 95개조 논제를 성문에 게시한 날이 종교개혁 기념일이 되었다. 그림은 벨기에 작가 페르디난드 파웰(Ferdinand Pauwels)의 작품. ⓒ위키피디아

하지만 10월 31일은 다르다. 수 천년 전의 이름 모를 야만인들의 미신으로 축제를 한다. 인간은 항상 발전과 진보를 거듭해 왔다는 진화론이 참이라면 진화를 거스르는 초자연적(?) 현상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렇게 공중권세 잡은 자는 감추어왔던 발톱을 기독교를 향해 마침내 드러내었다. 아니, 이미 이겼다("malo.win")고 선언했다. 할로윈이 종교개혁에게 이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종교와 미신을 떼고 문화적으로, 또는 즐거움의 용도로만 할로윈을 이해하면 문제가 없지 않을까? 그러나 한 가지 도약이 더 남았다.

 

● 이성: '합치'로부터 '분열'로의 도약

기독교에 대항하는 모든 문화혁명에는 양립하는 두 가치들을 서로 전도(顚倒)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페미니즘은 남성성과 여성성, 공산주의는 노동자 계급과 지배 계급, 낙태는 생명권과 선택권, 젠더 이데올로기는 선천적 성과 자기결정권, 무신론은 하나님과 인간의 전도를 통해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할로윈은 인간의 잠재된 죄성을 촉진하여 즐거움의 유일한 이유인 복음의 자리에 죄와 죽음의 상징을, 아름다움의 자리에 더러움과 부패의 이미지를 앉혀놓는다.

쾌감은 우리의 감각적 욕구가 충족되어야 일어난다.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느끼는 쾌감 같은 것을 말한다. 반면에 우리의 감각적 욕구와 상관 없이 느끼는 쾌감도 있는데, 이것을 '미적 쾌감'이라고 한다.

미적 쾌감은 보통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때 나타난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유는 감각적 욕구가 충족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욕구충족을 통해 무언가를 이루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때 욕구가 충족된 것과 같은 쾌감을 얻는다. 어떠한 목적도 없이 그저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았을 뿐인데 목적이 달성된 것과 같은 흡족한 느낌, 이것이 미적 쾌감이다.

미적 쾌감은 상상력과 지성이 합치하는 데서 나온다. 꽃의 모양과 색을 보고 '꽃'이라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지성과, 꽃의 아름다움을 상상하는 상상력이 합치할 때 미적 쾌감이 발생한다. 이것이 미학적 판단의 원리이다.

할로윈을 즐기는 사람들 (사진출처: 영남매일)
할로윈을 즐기는 사람들 (사진출처: 영남매일)

할로윈 문화는 미적 쾌감을 소외시키는 비합리적인 작업을 수행한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지 않는 이상 어떤 사람도 시체의 형상을 보고 미적 쾌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 형상들을 보면 불쾌를 느낀다. 하지만 할로윈 축제를 즐길 때 이 불쾌가 은폐된다. 지성은 '죽음의 상징'으로 인식하지만, 죽음에 대한 상상이 은폐되고 감각적 쾌감만 추구한다. 곧이어 이성의 분열이 일어난다. 간혹 상대의 분장이 너무 징그럽고 섬뜩해도 축제의 쾌감을 위해선 억제해야 한다. 결국 미적 쾌감이 소외되고 감각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쾌감만 남게 되므로 이성은 온전하지 못한 상태가 된다. 할로윈을 즐기기 위해선 이성은 이런 분열된 상태가 되어야 한다. 

미적 쾌감의 소외의 전형을 C. S. 루이스는 그의 저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이렇게 묘사한다. “남자는 여자를 볼 때 ... 제정신으로 보면 오히려 추하다고 해야 할 육체를 좋아한다” 할로윈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제정신으로 보면 오히려 불쾌할 수밖에 없는 죽음의 이미지들을 즐거워한다. 

 

● 할로윈으로의 회귀의 여러 모습

물론 요즘은 중재된 형태로 할로윈 분장을 많이 한다. 잔인한 묘사가 없는 코스프레로 할로윈에 참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현장에 돌아다니고 있는 귀신과 시체의 형상을 계속 보아야 한다는 것이 미학적 판단을 담당하는 이성에게는 고통스럽기 마련이다. 이에 반해 루터가 원어를 통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진리를 회복하고, 교회를 우상숭배로부터 구출했다는 점에서 종교개혁은 참된 이성의 빛을 회복한 것과 같다.

교회가 개혁된 진리를 망각한채 교세확장만을 지향하는 것. 종교개혁의 윤리를 시작으로 자유를 얻었지만 자신의 신념을 반대하는 기독교인의 자유를 억제시키는 것.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이룩한 국부를 부정하고 구한말을 더 위대하게 여기는 것. 할로윈으로의 회귀는 우리 시대에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할로윈을 즐기기 위해서는 성경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여러 도약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통일된 지식을 추구한다면 할로윈을 즐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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