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헌옥 목사
천헌옥 목사

마태복음 541절에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를 많이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해 본 적이 없고 또 그런 사람을 본 적도 없다. 그런 모습이 필자의 민낯이다. 하지만 오 리를 가자고 억지를 부리지도 않았는데 자진하여 십 리를 가준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필자는 그런 사람을 만났다.

 

며칠 전 마석역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일이 있어 전철역을 검색해 보니 청량리에서 경춘선을 타면 마석역으로 바로 연결이 되는지라 시간에 맞추어서 부개역에서 동두천행 열차에 올랐다. 마침 경로석이 비어서 자리에 앉아 청량리까지 편히 갈 수 있어 좋았다.

 

청량리역에 내려 춘천행 열차를 타기 위해 경춘선 안내표지를 따라 경춘선 라인에서 춘천 가는 열차를 타려고 보니 1시간 후에나 있는 것이다. 초행길이기도 하여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시간 배정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차를 가지고 갈 것을 괜히 만용을 부린 게 아닌가 싶었다.

 

그때 묻는 것은 한 번의 수치지만 묻지 않음은 평생의 수치라는 격언이 생각나 제법 늙수그레한 노인에게 마석까지 가려는데 어떻게 빨리 가는 법은 없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옆에 앉았던 4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일어서더니 아 여기서는 한 시간 뒤에나 있지만, 상봉에 가면 자주 있습니다.” 그러면서 곧 차가 들어오니 저를 따라 타시면 안내해 드릴게요.”한다.

 

필자도 젊은 층이 볼 때는 꼰대로 보일지 모르지만, 길치는 아니고 아직은 어느 정도 혼자서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그날따라 그 아주머니의 친절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그렇게 열차를 같이 타고 회기, 중량을 거쳐 상봉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분이 이제 내리시죠,” 하면서 먼저 내리는 것이 아닌가? “아주머니도 여기가 목적지인가요?” 그랬더니 아니요 전 한 정거장 더 가야 합니다.” “, 그러면 얼른 차를 타셔야죠.” 하는 순간 열차의 문은 닫히고 말았다.

 

그녀는 따라오라고 하면서 앞장서 이리저리 돌고 돌아 타는 곳 직전 계단에 도착하자 이제 여기서 저 계단만 올라가면 춘천행 열차를 탈 수 있고 마석에서 내리시면 됩니다. 아시겠죠?” “아이고 참으로 친절하십니다. 감사합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하는 말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으면 집에 가서 후회하게 되니까 그런 겁니다.”한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버리는 그녀를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돌아보았다.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상봉까지는 안내를 하고 그다음엔 알아서 가라든지 물어서 가시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는 한 정거장을 더 가야 함에도 나를 위해 일부러 내려서 타는 곳까지 안내하는 것으로 그 양심을 지키고자 하지 않았는가?

 

필자는 그가 크리스천인지 아닌지 물어보지 않아서 모른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실로 목사를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이 부끄러운 목사는 입으로 설교를 했지만, 그 여인은 행동으로 목사를 설교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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