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몇 년 전에 타계한 프리드리히 빌헬름 마르크바르트라는 신학자가 있다. 그는 카를 바르트 신학의 창조적인 해석을 통하여 20세기 세계 신학의 담론을 선도해왔던 학자이다. 그는 800만명이 가스실에서 사라져간 아우슈비츠 대참사 이후에 서구 유럽신학은 더 이상 세계 신학을 선도할 도덕성을 상실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20세기 서구신학이 발전시켜온 기독론을 중심으로 한 신학의 패러다임을 해체하고 새로운 신학을 정초하기 위해 일생을 헌신했다. 그는 연구 결과를 '유대인 예수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고백'이라는 책으로 펴낸 바 있다.

그의 바로 전 세대인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정당성을 상실해가는 유럽신학을 구출하기 위해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바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타자를 위한 존재'로 규정하고 '그리스도 따름이'의 길을 가다가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갔다. 그가 베를린 테겔 감옥에서 던진 신학적 담론은 20세기 신학의 화두가 되었다. 그의 신학적 담론이 한국교회와 신학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그의 삶과 신학이 일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별히 그의 삶과 신학은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서 선교적 사명을 발견했던 그리스도교 선각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에서 타자를 위한 실존을 추구했던 이들이 다다른 곳은 차가운 감방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성경을 읽으며 그들이 당하고 있는 고난의 의미를 반추하는 가운데 갈릴리의 예수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예수와의 만남은 서구신학이 다다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 그들이 바라본 예수는 남을 위한 존재의 한계를 뛰어넘어 무리들과 더불어 있는 분이셨다. 무리들이 있는 곳에 예수가 있고 예수가 있는 곳에 무리들이 함께 있었다. 예수와 무리들 사이에는 어떠한 힘으로도 깨뜨릴 수 없는 확고한 연대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새로운 예수의 발견은 새로운 신학으로 발전되었다. 예수와 더불어 있는 무리를 한국 사회에서 그들이 만난 민중과 일치시킴으로써 민중 신학이 탄생하였던 것이다. 민중 신학의 창조성은 최초로 한국인에 의해서 창출된 신학이라는 의미를 넘어 갈릴리의 예수를 발견한 것이다. 이 신학적 지평은 세계 신학적인 의미를 지닌다. 무리들과 '더불어 있는 예수'는 '위하여 있는 예수'의 한계를 넘어서는 신학적 지평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위하여 있다는 것은 위하여 있고자 하는 사람과 위함을 받는 사람 사이의 틈새를 전제한다. 그러나 더불어 있는 관계 사이에는 틈새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더불어 있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오신 예수야말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이 땅 위에 오신 임마누엘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사순절을 맞이하여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시어 우리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하여 부활하신 갈릴리의 예수를 바라보자. 갈릴리의 예수 안에서 역사적인 예수와 부활하신 예수가 일치되어 새 복음의 역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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