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한 후원이나 약정도 없이

희생과 수고 감수하며 교회 개척

1987년 유럽 총노회 조직

2002년 유럽 총회 출범

 

김학우 목사[현, 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
김학우 목사[현, 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

유럽 고신총회 30년 약사를 대략 정리 했다. “유럽 고신총회 30년 약사는 유럽 총회 30주년을 맞이하여 정리한 것이며, 이번 기고문에는 포함되지 못한 지역이 있음을 알려 드리며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1980년대 한국교회가 수적으로 급성장할 때 고신교단에 소속한 몇몇 목회자들이 개척정신으로 유럽 땅을 밟은 것이 오늘의 유럽 총회의 모체가 되었다. 유럽 고신총노회가 조직되기 전, 유럽 땅을 밟은 목회자들은 본국의 총회나 노회와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초청을 받아 온 분들이 대부분이다. 일정한 후원이나 약정도 없이 무작정 대서양을 건너옴으로 경제적인 면은 물론, 비자와 거주 문제 등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하지만 희생과 수고를 감수하고 교회를 개척하여 섬겼고, 개척한 교회들이 미 자립된 상태에서도 또 다른 새로운 지역에 교회들을 세워나갔다.

 

1. 유럽 고신총노회 이전 역사(1987.3.)

19873, 유럽 고신총노회가 조직되기 전까지 고신교단에 소속된 목회자가 사역한 나라는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벨기에, 스페인, 오스트리아, 스위스, 포르투갈 등 8개국 정도며, 사역자로는 손봉호, 변의남, 장희선, 장희종, 김은수, 이송신, 최한주, 박의석, 도만기, 황상호, 김학우, 김덕복, 강병호, 김진신, 강화식(평신도) 15명 정도이다. 19873월에 정식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유럽고신총노회가 조직되었다.

 

2. 유럽 고신총노회 역사(1987.3.- 2001.4.)

1회 유럽 고신총노회는 1987317일에서 18, 이틀간 독일 아헨에서 첫 모임을 가졌으며, (황상호, 장희종, 변의남, 박의석, 최한주, 김은수, 이송신, 김학우 목사 등) 1987년 총노회 이후 2002년 유럽 고신총회가 출범까지 15년 동안 유럽 내에 교회와 회원은 대략 14개국, 25개 교회로 증가하였고, 총회에 가입된 목사와 선교사 장로 회원은 모두 35명 정도였다.

Photo by Danielle Ric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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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럽 고신총회 역사(2002.4.- 2016.5)

유럽 고신총회는 20024월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중부와 남부 두 개 노회로 구성되어 있다.

 

4. 유럽 고신총회와 교포 선교사 역사

19819, 본국 총회는 최초로 미국 김만우 목사와 독일의 김은수 목사에게 교포 선교사 인준을 하였으며, 19849월 스페인 도 만기 목사를, 19859, 35회 본국 총회는 6명의 교포 선교사를 인준하였는데, 일본의 김소익, 이청길, 브라질 배성학, 독일의 최한주 목사, 스페인의 김학우 목사, 미국의 김영신 강도사를 각각 인준하였다. 1986년에는 스페인 황상호, 김진신 목사와 강화식 집사, 포르투갈 강병호 목사를 교포 선교사로, 1987년에는 스페인 지영범, 1989년 독일의 최성덕 목사를, 1991년에는 김광한 목사를 교포선교사로 각각 인준하였다.

 

5. 독일의 한인교회 역사

19794월 독일에 도착한 김은수 목사는 독일, 쾰른 중앙교회를 개척한 후 독일 병원선교의 도움으로, 최한주, 이송신, 박의석 목사, 전원호 목사 등은 초청하였으며, 이들은 이후 독일에서 다수의 교회들을 개척하여 섬겼다.

 

먼저, 김은수 목사는 독일 쾰른중앙교회를 개척, 10여 년 동안 섬긴 후 호주로 이동하였으며, 후임으로 오성광 목사(1990-1999.6)가 사역하였으며, 오성광 목사 이후 쾰른 중앙교회는 초교파 세 개 교회로 통합되어 최용준 목사가 초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섬기다가 3년 만에 사임하고, 20068월에 브뤼셀 한인교회로 이동하였다. (현재 쾰른 한빛교회는 독립교회로 운영됨)

 

초청을 받은 이송신 목사는 독일 하노버한민교회(1982.11-1987.4)를 섬겼으며, 198310월 브레멘 한민교회를 개척하여 겸임하여 섬겼으며, 하노버한민교회 2대 후임으로 전원호 목사(1987.9-1992), 3대 김학우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5년간 사역하였다. 브레멘 한민교회는 이송신 목사 후임으로 전원호 목사, 이재원 목사, 한만수 목사 등 차례로 시무하였으며, 20022, 한만수 목사는 브레멘 언약교회를 개척하여 사역하다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19843, 박의석 목사와 최한주 목사는 동일하게 독일에 도착하여 박의석 목사는 병원선교회 본부가 있는 아헨의 근교 헤어초겐라트에 있는 병원선교교회에서 사역하였으며, 최한주 목사는 루터의 종교개혁지인 다름스타트에 있는 병원선교교회에서 사역하였다.

 

최한주 목사는 19866, 마인츠중앙교회를 개척하여 제1대 담임목사로 섬기다가 3년 후인 19899월에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최한주 목사의 후임으로 박의석 목사가 마인츠중앙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였으며, 박의석 목사는 마인츠와 인접한 비스바덴 한인교회를 겸임하여 섬기다가 19943월 비스바덴 한인교회 사임 후 마인츠 중앙교회를 섬기다 은퇴하였다.

 

또한 19811120, 독일 북서부 보쿰대학 유학차 오게 된 주도홍 전도사는 도르트문트 제일교회를 개척하였으며, 황봉린 목사는(1989.9-1994. 4) 독일 트리어 한인교회를 46개월 사역하다 본국으로 귀국하였다. 베를린에서 공부를 마친 오현기 목사(, 대구 동일교회)는 베를린 소망교회 청빙(2005-2007)을 받아 2년간 섬기다가 귀국하였다. 독일에서 신학을 전공한 심태영 목사는 20137, 본 한인교회 청빙을 받아 지금까지 섬기고 있다.

 

6. 스페인 한인교회 역사

스페인과 포르투갈 한인교회와 선교는 도만기 목사가 스페인 바르셀로나 제일 스페인교회(1980.9.3) 개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도만기 목사와 스페인 개혁장로교회 리카르도 세르니 목사의 도움으로 황상호, 김학우, 강병호, 김진신, 지영범 등이 초청을 받아 사역했다.

1982321일 황상호 목사가 마드리드 한인교회 제1대 담임목사로 부임, 황상호 목사가 19909월 모스크바 선교사로 파송 받기 전까지 86개월 동안 사역하였고, 2대 지영범 목사(1990.10-1999.2)가 그리고 3대 김학우 목사가(1999.2-1999.2) 사역하였다.

도만기 목사의 후임으로 바르셀로나 제일 스페인교회 제2대 담임목사는 김광한 목사가, 3대 반맹은 목사(1999.9-2009.12)가 사역했으며, 4대는 윤중호 목사가 부임(20104)한 이후 지금껏 섬기고 있다.

 

바르셀로나 한서교회는 바르셀로나 제일스페인교회에서 분립하여 김진신 목사가 개척 초대 담임목사로 부임(1987.7.19~1993.12)하였으며, 2대 허성동 목사, 3대 손상호 목사 등 사역하였다. 그리고 20031월 김학우 목사는 마드리드 사랑의교회를 개척한 후 지금껏 19년째 사역하고 있다.

 

7. 화란 한인교회 역사

화란 한인교회는 19795, 첫 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되었는데, 당시 서철원 목사(당시 총신대 교수)와 손봉호 장로(당시 서울대 명예교수, 현 고신대 석좌 교수)가 얼마간 교대로 예배를 인도해 오다가 이듬해 19801월에 개척 설립 예배를 드렸다.

 

로테르담 사랑의교회는 화란 한인교회가 세워진 15년 만에 이루어진 결실로 19949월 화란한인교회는 로테르담 지역에 있는 구역을 중심으로 분립 개척되었다. 교회가 설립된 후 한만수 목사를 초대 임시 목사(1994.10-1995.4), 19955월에 이신열 목사가, 199512월 노정각 목사(2001.2-2003.11)가 그리고 이세령 목사가 담임목사(2004.6-2012.6)8년간 사역한 후 본국으로 귀국하였다. 특히 이세령 목사와 로테르담 사랑의교회는 20072월 아인트호벤 구역을 분립 개척한 후 권준 목사가 제2(2008.9-2021)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아 사역했다.

 

그리고 암스테르담 장로교회는 20142월 캄펜에서 유학하던 구본승 목사가 개척한 후 지금껏 섬기고 있다.

 

8)모스크바 장로교회

러시아는 1990101일을 시점으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법령 제13조에 의거하여 신앙의 자유를 선포하였다. 이는 191710월 혁명이후 처음으로 신앙의 자유에 대한 법적 인정이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본국 제40회 총회는 마드리드 한인장로교회를 86개월 동안 섬기다가 사임한 황상호 목사를 모스크바 교포 선교사로 파송하기로 결정했다.

 

19908월 모스크바에 도착하여 구청과 협력하여 서울 모스크바 자선문화 선교센터를 설립하고 9월부터 센터 설립과 교회설립예배를 동시에 드리게 되었다. 20099월 모스크바 장로교회는 공동의회를 통해서 이헌철 목사를 청빙하기로 결의하고 그해 1115일 담임목사로 취임하게 되었다. 1221일에는 황상호 목사 은퇴식과 원로목사 추대식을 가졌다.

 

9. 프랑스 한인교회 역사

파리연합교회는 19729, 프랑스 최초로 한인교회가 세워졌으며, 19781월부터는 당시 화란 캄펜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변의남 목사가 파리까지 내왕하면서 19801월까지 2년간 설교목사로 섬겼다. 이후 장희선 목사(1980. 1- 4)를 초대 담임목사로 청빙하였지만 4개월 만에 사임하였으며, 이후 변의남 목사가 다시 제2대 담임목사(1982.5-1986.1), 3대는 유학 중인 김신 목사(타 교단), 4대는 한동욱 목사가 담임목사(1989.10-1991.10)가 사역하였다.

 

파리 연합교회는 1997720,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교단에 가입하여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파리 연합교회로 이름을 변경하였고, 현재는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유럽 직할지방회에 소속되어 있다.

 

10. 벨기에 한인교회 역사

브뤼셀한인교회는 197912월 설립되어, 19824월 김성완 선교사가 서울 충현교회로부터 파송을 받아 만 4년 동안(1986. 7) 초대 담임목사로 섬겼다. 이후 본 교단 소속 박주석 집사가 장로 장립(1986. 6)을 받으면서 교단과 연관을 갖게 되어 곽창대 목사가 브뤼셀 한인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부임(1988.4-1994.7)하여 만 6년 동안 섬기다 귀국하였다. 19948월에 전원호 목사가 제3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200511월까지 만 11년 섬겼으며, 20068월 최용준 목사가 제4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만5(2011.8)동안 섬겼으며, 현재는 김동민 목사(2012.5-현재)가 제5대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11. 오스트리아 비엔나 장로교회

198410, 김덕복 목사(소천)7명의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비엔나 유학생 선교회를 시작하였고, 그해 12월 비엔나 장로교회가 개척 설립되었다. 김덕복 목사가 199012월에 사임하기까지 6년 사역하는 동안 교회가 자립이 될 만큼 안정적으로 성장했다. 19912월 김선훈 목사가 제2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19939월에 사임하였다. 199312월 제3대 이주연 목사가 부임한 이후 지금까지 28년 동안 사역하고 있다.

 

12. 스위스 베른 한인교회와 쥬리히 한인교회

19772, 스위스 베른에 한인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은 당시 김연주 집사를 비롯한 4가정이 모여 첫 예배를 드림으로 베른 한인교회가 시작되었다. 오영석 목사가 초대 설교목사(1978. 1)에 부임하였고, 그 후 제4대 설교목사(1987.1-1992.2), 당시 베른 신학대학에서 공부하던 전병두 목사가 사역했다. 또한 유학 차 스위스에 오게 된 강성대 목사는 쥬리히 한인교회와 베른 한인교회를 겸임하여 사역하다가 두 교회 모두 사임(1998)하였다.

 

13) 베를린 소망교회

베를린 소망교회는 영락교회와 고백교회 두 개 교회가 하나로 통합된 교회이다. 베를린 고백교회는 1980년 설립되었고, 소망교회는 19833월에 설립된 교회로, 1992126일 두 교회가 극적으로 하나로 통합되었다. 2004년 김영석 목사(타교단)가 초대 담임목사로 섬겼고, 2대 담임목사로 당시 베를린에서 공부를 마친 오현기 목사(, 대구 동일교회)가 담임목사(2005-2007)로 청빙을 받아 2년간 섬기다가 귀국하였다. 현재는 타 교단 목사가 사역하고 있다.

 

14) 우크라이나 오데사 할렐루야교회

20035월 정한규 선교사(KPM)는 우크라이나 오데사에 파송을 받았다. 파송 받은 이후 우크라이나인과 고려인을 중심으로 교회를 개척한 이후 지금껏 사역하고 있다. 정교회 영향으로 성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우크라이나인과 특히, 지역에 산재해 있는 50여 개 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신학 재교육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아울러 할렐루야교회는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2만여 고려인들을 섬기며, 고려인들과 함께 교회를 세우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이곳에 살아가고 있는 고려인들은 구소련이 붕괴된 후 삶의 터전을 찾아 온 분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구소련 전에도 극심하게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우크라이나에서도 움막을 짓고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무국적 고려인들이 많다.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오데사 할렐루야교회는 약 500평의 대지 위에 300평의 교회당 건물을 세워 매 주일 예배를 드리며, 평일에는 한글학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15) 루마니아 선교사와 한인교회

이성헌 목사는 199411월 루마니아가 이념 체제가 무너지면서 기독교 선교가 가능했을 때, 발 빠르게 본국 선교부(KPM)로부터 파송을 받아 루마니아에 도착했다. 파송 받은 이후 현지인을 위한 엘림교회를 개척하였고, 아울러 수도 부카레스트 한인교회를 개척하여 두 교회를 동시에 섬기고 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건물은 자체적으로 구입한 것으로, 이곳에서 루마니아 현지인을 위한 의료와 문화와 교육 사역과 함께 한인들을 위한 사역을 병행하고 있다.

 

16) 코소보 지역 선교사

20012월 서원민 선교사(KPM)는 세계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발칸반도, 여전히 분쟁이 끊어지지 않고 있는 코소보에 파송을 받았다. 지금껏 15년 동안 주로 현지인을 위한 선교 비전센터를 통해 성경공부와 문화, 스포츠 사역을 하고 있다.

 

17) 라트비아 지역 선교사

라트비아는 18세기부터 제정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1차 세계 대전 후 독립하였으나 19408월 스탈린에 의해 소비에트 연방에 강제 합병되었다. 1991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신성주 선교사(KPM)1991, 라트비아가 구소련으로부터 막 독립하자마자 파송을 받아 입국하였다. 주된 사역은 현지교회를 개척하여 섬기며, 현지 사역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에서 강의와 한인교회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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