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그렇게 건강한 드라마가 아니면서도 미디어 특유 흥행성의 광고술로 '꽃보다'라는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세태의 영향으로 꽃미남들이 뜨고 있고 사람들은 분별 없이 꽃의 미학에 빠져들고 있다. 더욱 봄의 계절이 던지는 꽃의 유혹은 강렬하기만 하다. 봄을 기다리는 우리의 가슴 속에 꽃의 환상은 성공과 쾌락, 인기와 권력의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꽃의 이미지가 그렇게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꽃은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허영의 가치를 대표하는 것으로 인간 실존의 허무를 상징하고 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벧전 1:24)라고 증언하고 있다. 우리말에도 예로부터 '화무십일홍'이라고 꽃의 붉은 아름다움은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고 말해온 것을 기억한다.

성경은 꽃의 이미지와 반대되는 열매의 의미를 아주 특별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선택된 사람으로 사는 것 자체가 바로 열매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 15:16)고 말이다.

요한복음 15장은 유명한 포도나무 비유의 장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포도나무로, 우리들과 그의 제자들은 가지로 상징된다. 그리고 가지 된 우리의 유일한 존재 목적은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라고 가르친다. 이 텍스트의 가르침에서 열매는 예수님의 사랑이나 기쁨 같은 그의 인격을 지시하고 있다. 우리의 존재 목적이 참으로 사랑이시고 기쁨이신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감이라는 것이다. 가을의 보람찬 거둠을 위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봄은 일시적 쾌락을 위해서 투자되는 그 순간성에 함몰되지 않고 봄에서부터 가을의 열매를 준비하는 계절이어야 하겠다.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신 그분 앞에 서는 날 그분의 기준으로 진정 부끄럽지 않기 위하여 그분의 인격과 사역을 흉내라도 내는 '꽃보다 열매'를 구하는 우리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누가 '꽃보다 열매'라는 드라마라도 만들었으면 하는 맘이다. 아니 우리 인생이 그런 드라마의 열매 인생 주인공이 되면 어떨까.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