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미래교회포럼에서 강의하는 강대훈 교수
2021 미래교회포럼에서 강의하는 강대훈 교수

 

인류의 보편적 고통과 그리스도인의 고통

- 요한계시록의 인 심판 시리즈(6:1-17)를 중심으로 -

 

강대훈

(개신대학원대학교)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늘보좌 우편에 앉아 성부와 더불어 우주를 통치하고 계신다는 것은 초기 교회의 공통적인 믿음이었다(, 4-5; 110:1; 참고. 12:35-37; 2:33-35; 5:31; 7:55-56; 8:34; 고전 15:25; 1:20; 3:1; 1:3, 13; 10:12-13; 벧전 3:22).1) 그리스도의 통치는 지상에 있는 원수들의 세력을 제압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했다. 요한도 계시록의 도입부에서 그리스도를 땅의 왕들의 머리가 되시는 분으로 소개했다(1:5).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우주와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사실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고통이 심화되고 있었다.2) 고통은 지진과 전쟁과 같은 재앙을 통해 세상 전역에 나타났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믿는 신자들에게는 더욱 심하게 다가왔다. 이와 같은 고통은 계시록에서 네 마리의 말과 네 명의 기수가 집행하는 재앙을 통해 표현된다. 요한은 6:1-17의 인 심판 시리즈를 통해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사이의 기간에 살고 있는 신자들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재앙과 고통을 하늘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경고와 소망 가운데 살도록 돕는다.

 

1. 구조와 배경

 

(1) 첫째 심판 시리즈

 

계시록 6:1-17은 일곱 인 재앙 중 첫째부터 여섯째를 다루고 있다. 문맥을 넓혀 보면 6장은 요한이 성령 안에서”(ἐν πνεύματι 엔 프뉴마티, 1:10; 4:2; 17:3; 21:10) 본 환상의 둘째에 포함되고 일곱 재앙의 세 시리즈 중 첫째다.

 

요한의 둘째 환상(4-16)

A. 하늘 보좌 환상(4-5)

B. 세 개의 일곱 재앙 시리즈(6-16)

B1 첫째 심판 시리즈: 일곱 인(6:1-8:5)

a 여섯 인 재앙(6:1-17)

b 삽입(7:1-17)

c 일곱째 인(8:1-5)

B2 둘째 심판 시리즈: 일곱 나팔(8:6-11:19)

a 여섯 나팔(8:6-9:21)

b 삽입(10:1-11:14)

c 일곱째 나팔(11:15-19)

X 삽입(12:1-14:20)

a , 여자, 여자의 후손(12:1-17)

b 두 짐승(13:1-18)

c 보증의 일곱 표적(14:1-20)

B3 셋째 심판 시리즈: 일곱 대접(15:1-16:21)

 

(3) 4-5장과의 관계

 

세 재앙 시리즈는 4-5장에 묘사된 하늘보좌 장면에 근거한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손에 있는 책을 열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어린 양이 인을 열었고 일곱째 인을 열었을 때는 일곱 나팔 재앙이 시작된다. 주제 면에서도 6장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 4-5장과 연결된다. 4-5장에서 요한은 보좌 장면을 돋보이게 함으로써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 우주를 주권적으로 통치하시는 사실을 강조했다. 6장은 고통과 비극이 끊이지 않는 역사에 하나님의 주권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이미지 언어를 사용해 설명한다. 인 재앙과 나팔 재앙의 결론(8:5; 11:19)4장에 묘사된 보좌 환상과 연결된다(4:5).

 

(2) 6:1-17의 구조

 

세 심판 시리즈는 4+3의 구조로 구성되고 인과 나팔 시리즈는 4+2+삽입+1이다.3) 처음 네 개의 인은 각각 말과 기수를 포함한다(6:1-8).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인 심판은 앞의 네 심판과 마찬가지로 매우 짧은 도입부 공식으로 시작하고(6:9, 12; 8:1) 여섯째와 일곱째 인 심판 사이에는 삽입의 기법이 사용된다(7). 7(특히 7:9)6:17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A 첫째부터 넷째까지의 인: 네 마리 말과 네 명의 기수(6:1-8)

a1 첫째 인: 흰 말과 활을 들고 있는 기수(6:1-2)

a2 둘째 인: 붉은 말과 칼을 들고 있는 기수(6:3-4)

a3 셋째 인: 검은 말과 저울을 들고 있는 기수(6:5-6)

a4 넷째 인: 황록색 말과 사망의 이름을 가진 기수(6:7-8)

B 다섯째와 여섯째 인(6:9-17)

b1 다섯째 인: 순교자들의 질문(6:9-11)

b2 여섯째 인: 하나님의 응답(6:12-17)

 

1-8절의 네 마리 말과 네 명의 기수는 예수의 재림 전까지 역사에 일어나는 재앙을 상징한다. 요한은 4-5장에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의 주권과 통치를 강조했다. 어린 양이신 예수는 우주의 통치자다(1:5-6, 9, 13-14, 16; 2:18, 27; 3:7, 9, 14, 21; 참조. 1:5, 13-14; 2:26-28; 3:21). 그러나 지상의 상황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성품과 관련이 없는 악의 세력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여섯째 인이 열릴 때 등장하는 순교자들의 질문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어린 양의 통치를 확신하는 신자들은 역설적으로 고난 받고 심지어 목숨을 빼앗기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보좌에 앉으셨는데 왜 재앙과 고난이 오는가? 9-17절은 순교자들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서 역사의 끝에 일어날 우주의 붕괴와 사람들의 반응을 묘사한다. 1-8절의 시간과 달리 9-17절의 우주 붕괴는 역사의 마지막에 일어날 사건을 묘사한다.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에 삽입된 7장은 여섯째 인 재앙에서 나온 질문, “누가 견딜 수 있는가?”(6:17)에 대한 대답이다.

 

(4) 구약과 공관복음 전승

 

계시록 6장은 네 말과 기수, 우주적 붕괴를 묘사하기 위해 구약의 이미지 언어를 광범위하게 활용한다. 또한 공관복음의 종말 강화 전승(, 24; 13; 21)과 평행 관계에 있다. 마태복음 24:6, 7, 9a, 29(전쟁, 나라들의 충돌, 지진, 핍박, 우주의 붕괴), 누가복음 21:9-12a, 25-26(전쟁, 나라들의 충돌, 지진, 기근, 핍박, 우주의 붕괴), 마가복음 13:7-9a, 24-25(전쟁, 나라들의 분쟁, 지진, 기근, 핍박, 우주의 붕괴), 계시록 6:2-17(전쟁, 나라들의 분쟁, 기근, 전염병, 핍박, 우주의 붕괴).4) 독자는 6장에 나타난 종말의 시나리오와 공관복음 전승에 나타난 종말의 시나리오를 연결할 필요가 있다.

 

 

계시록

6:1-17

구약

공관복음의 종말 강화

첫째 인

(1-2)

흰 말

승리의 야욕

흰 말들의 병거(6:3a)서쪽으로

 

전쟁/야욕/미혹?(24:5-6)

재난의

시작

(24:8; 13:10)

기수-

둘째 인

(3-4)

붉은 말

전쟁

붉은 말들의 병거(2a)(동쪽으로)

(14:21)

전쟁(24:6-)

기수-

셋째 인

(5-6)

검은 말

기근

검은 말들의 병거(2b) 북쪽으로

기근

기근(24:7)

기수-저울

넷째 인

(7-8)

황록색 말

전염병

얼룩말들의 병거(3b) 남쪽으로

전염병, 사나운 짐승

전염병(21:11); 신자들의 환난과 죽음(24:9)

기수-사망

다섯째 인

(9-11)

언제까지입니까?”

숫자가 채워지기까지

6:3; 13:1; 74:10; 79:5; 80:4; 89:46; 90:13; 94:3; 6:11; 1:12 .

하늘나라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기까지”(24:14);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13:7; 21:9)

여섯째 인

(12-17)

우주의 붕괴

(큰 지진, 해와 달과 별의 추락 등)

2:31; 13:10 .

지진(7), 인자의 임함(27-29), 산으로 도망(16), 빛을 잃은 해와 달, 별들의 추락(29)

 

 

2. 첫째 인 - 넷째 인(6:1-8)

 

요한은 1-8절에서 구약의 본문과 이미지 언어를 복합적으로 활용한다. 1-8절에 등장하는 네 마리 말은 스가랴 1장과 6장에 네 마리의 말과 비슷하다. “지난밤에 내가 환상을 보니, 붉은 말을 탄 사람 하나가 골짜기에 있는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고, 그 사람 뒤에는 붉은 말들과 밤색 말들과 흰 말들이 서 있었다”(1:8, 새번역). “첫째 병거는 붉은 말들이 끌고 있고, 둘째 병거는 검은 말들이, 셋째 병거는 흰 말들이, 넷째 병거는 얼룩말들이 끌고 있었다. 말들은 모두 건장하였다”(6:2-3, 새번역). 인이 열릴 때 나타나는 재앙의 종류는 네 가지 중한 벌을 언급한 에스겔 14:21의 그림과 비슷하다. 또한 화살을 쏠 때 재앙이 나타나는 장면을 설명하는 신명기 32장도 본문의 배경이다(32:23-24).

 

2.1. 첫째 인, 흰 말과 첫째 기수(6:1-2)

 

[6:1] 나는 어린 양이 일곱 인 중 하나를 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네 생명체 중 하나가 우렛소리처럼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오라!” [2] 나는 보았습니다. 흰 말이 있었습니다. 말을 타고 있는 자가 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면류관이 주어졌습니다. 그는 나가서6) 이기고 이기고자 했습니다. [1] 1절의 보았다들었다는 요한이 경험한 순서를 반영한다. 요한은 어린 양이 일곱 인 중 하나를 여는 것을 보았고 네 생명체 중 하나가 우렛소리로 부르는 것을 들었다. 4-5장은 보좌에 앉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책을 열 자격이 어린 양에게 있음을 강조했다. 역사의 주권이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음을 강조했다. 하늘에서는 영광존귀가 하나님(4:9, 11), 어린 양(5:12), 하나님과 어린 양(5:13)에게 드려졌다. 어린 양은 보좌에 앉은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셨다(5:7). 어린 양은 책을 받았다. 하나님은 책을 주셨고 어린 양은 책을 받았다. 말하자면, 신앙 공동체의 운명과 인류의 역사를 담고 있는 책이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달려 있다.7) 이는 세상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주체는 로마 제국의 주권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알린다. 6장의 첫 구절, 어린 양이 일곱 인 중 하나를 여는 것은 역사의 주권자인 어린 양이 역사의 배후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6-16)의 첫째에 해당한다.

요한은 네 생명체 중 하나가 우렛소리처럼 부르는 것을 들었다. 하늘보좌 장면(4-5)에서 하늘보좌 주위에는 24장로들(4:4)과 네 생명체(6b-8a)가 있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이 역사의 주관자로 세상의 모든 상황을 보고 계시는 사실은 네 생명체의 앞뒤에 눈이 가득한 모습으로 내포된다. 살육당한 어린 양이 보좌에 앉은 분의 책을 받자(5:7) 네 생명체와 24장로들이 어린 양을 찬송했다(8-10). 많은 천사들이 어린 양을 찬송하고(5:11-12)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과 어린 양 찬송하자(13) 네 생명체는 아멘으로 응답했다(14). 4:7의 설명을 고려하면 네 생명체 중 하나는 첫째 생물로 사자와 같았다. 네 생명체는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있었으므로 천사들 중에서 보좌에 가장 근접한 천사들이다(4:6-8). “보좌 가운데라는 위치는 첫째 생명체가 보좌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속성과 뜻을 가장 확실히 반영한다. 덧붙여서, 요한은 인을 여는 사건의 배경이 되는 4-5장의 하늘보좌 장면에서 우렛소리가 보좌에서 나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4:5). 그러니 네 생명체 중 하나가 “-처럼부르는 것은 그의 목소리가 우렛소리가 아니라 보좌의 명령을 반영하고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첫째 생명체는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뜻을 반영한다. 어린 양이 첫째 인을 열고 첫째 생명체가 우렛소리처럼 부르는 것은 이 생명체가 역사의 주관자인 어린 양의 계획을 실행하고 있음을 암시한다.8) 또한 우렛소리는 하늘에서 들리는 큰 소리이므로 요한은 엄청나게 큰 소리를 들었다(참고. 14:2; 19:6; 참고. 삼하 22:14; 37:2-5; 18:13; 29:3-9; 29:6; 30:30-31; 25:30; 1:2).9) 정리해 보면, 첫째 생명체의 명령은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뜻을 반영하고 재앙을 실행한다.

오라는 명령은 누구에게 주어진 것인가?10) 이 명령을 계시록 22:17의 명령과 연결하면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한 요청, “오소서!”가 된다. 이 관점에서 생명체의 요청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역사를 완성해 주실 것을 간청하는 의미가 된다. 만일 생명체의 명령이 요한에게 주어졌다면 묵시적 광경을 보도록 요한을 초청하는 소리가 된다.11) 그러나 문맥을 고려하면 이 명령에 이어 말과 기수가 등장하므로 말을 탄 기수가 명령을 받는다.

한편, 첫째 생명체가 흰말을 탄 기수에게 오라!”고 명령을 내리는 부분에서 요한의 묵시를 듣는 청중에게는 의구심이 생길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땅으로 가는 기수들이 악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구심과 질문은 거대한 바벨론의 세력 아래 살고 있는 일곱 교회에게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요한은 내러티브가 전개되면서 악한 세력의 활동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드러낼 것이다.

[2] 요한은 흰 말을 보았다. 기수는 활을 들고 있고 면류관을 받았다. 계시록에서 흰 색은 여러 본문에 사용된다. 계시록에서 흰 색은 주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님의 보좌는 흰 색이다(20:11). 그리스도의 머리와 머리카락은 흰 색으로 묘사되고(1:14) 그리스도는 흰 말을 타고 있다(19:11, 14). 흰 돌은 신자들의 신실한 삶을 보증하는 역할을 한다(2:17). 흰 옷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실하고 순결한 신앙을 대변한다(3:4, 5, 18; 4:4; 6:11; 7:9, 13). 그러나 흰 말과 기수의 역할은 부정적이다. 독자는 네 말과 네 기수의 역할을 묶음으로 이해해야 하므로 나머지 세 마리 말과 세 명의 기수가 재앙을 일으키는 것처럼 첫째의 역할도 재앙과 관련이 있다.

흰 말의 기수는 누구이고 무슨 일을 행하는가? 크게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 흰 말과 기수는 계시록 19:11-21에 등장하는 대상과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만일 기수가 그리스도라면 그의 승리는 복음을 성공적으로 전파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참고. 24:14; 13:10). 그리스도는 면류관을 쓰고(14:14) 받으며(2:10; 3:11; 4:4, 10; 12:1), 왕관을 쓰고 있다(19:12). 그러나 첫째 기수가 활을 들고 있는 것과 달리 그리스도는 입의 칼로 전쟁을 한다(1:16; 2:16; 19:15, 21).12) 메시아인 어린 양이 인을 열고 생명체를 통해 메시아를 부르거나 보내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네 마리의 상징성을 함께 해석할 필요가 있다. 둘째 말부터 넷째 말까지 부정적인 역할을 하므로 첫째 말의 역할도 부정적이다.

둘째, 그리스도를 패러디함으로 속이는 자. 비일의 주장에 따르면 첫째 기수는 사탄의 권세로 속임과 핍박으로 신자들을 영적으로 공격하는 자들을 상징하며(참고. 11:7; 13:7), 이들은 적그리스도,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정부(의 관계자들), 마귀의 종들을 포함한다.13) 드 빌리어스는 본문은 세상과 교회를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등장하는 때를 가리키고 있다고 이해한다.14) 거짓 메시아와 거짓 선지자들 외에도 속주의 제사장들이나 관료들을 상징하는 둘째 짐승은 거짓말로 속여 황제를 숭배하도록 만든다. 거짓 메시아 또는 적그리스도는 짐승을 이기고(11:7; 13:7) 면류관을 쓰고 승리한 것처럼(참고. 19:11-16) 흉내를 낸다. 이 견해는 복음서에 기록된 종말론과 연결되는 장점이 있다.15) 예수는 거짓 메시아(24:5)와 거짓 선지자들의 등장을 예고하셨고(24:11) 미혹되지 않도록 경고하셨다(24:4-5, 24-26).

셋째, 재앙을 가지고 오는 자. 셋째 견해가 설득력이 가장 높다.16)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네 기수는 한 묶음으로(, 1:8-15; 6:1-8) 부정적인 역할을 하므로 첫째 기수는 나머지 세 기수처럼 지상에 재앙을 몰고 온다. “은 전쟁을 상징하는 은유다. 구약에서 활은 화살과 더불어 하나님의 징벌을 상징할 때 사용된다(32:42; 34:6; 3:9; 3:12-13; 7:13-14).17) 앗시리아와 바벨론 군대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정복할 때 말을 탄 궁수들을 동원했다(6:23; 50:42; 유딧 2:15).18) 특히, 기수가 흰 말을 타고 활을 들고 있는 모습은 요한의 첫째 청중에게는 전쟁의 공포를 떠오르게 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로마의 동쪽에 위치했던 파르티아 군대는 카르타고의 한니발 군대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로마를 패배시켰고 흰 말을 탄 궁수를 중심으로 BC 55, AD 62년에 로마를 두 차례 이겼다.19) 죽은 네로 황제가 죽지 않고 파르티아 군대와 함께 로마를 공격하러 올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20) 유대문헌도 파르티아 사람들은 로마 제국의 종말론적인 원수들로 표현된다(에녹156:5-7; 시빌의 신탁 5:438).

첫째 기수가 쓰고 있는 면류관”(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은 승리자의 표시다. 고대 사회에서 전쟁이나 운동경기의 승자나 도시의 영예를 빛낸 사람에게 면류관(또는 화관)이 주어졌다(참고. 고전 9:24-25; 벧전 5:4; 딤후 2:5).21) 계시록에서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신실한 서머나 교회(2:10)와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해를 옷 입은 여자”(12:1)가 면류관을 쓰고 있다. 이제까지 승리는 어린 양(3:21; 5:5; 참고. 17:14)과 신자들(2:7, 11, 26; 3:5, 12, 21; 참고. 12:11; 15:2; 21:7)의 것이었다. 그런데 재앙을 집행하는 악한 기수가 승리의 상징인 면류관을 쓰고 이기려고 한다. “이기고 이기려고 나갔다”(ἐξλθεν να νικν κανικήσῃ)는 기수의 강력한 의지를 강조하는 표현이다.22)

첫째 기수는 어떤 재앙을 상징하는가? 기수가 활을 사용하고 흰 말을 타고 전쟁에 참전했던 파르티아 군대와 연결된다면 둘째 말과 기수의 처럼 전쟁을 상징하게 된다. 이 경우 우리는 네 말과 기수의 역할을 요약하는 8b절의 ”(=전쟁), “기근”, “사망”(또는 전염병), “땅의 짐승들을 고려해야 한다. 요약의 내용이 첫째 기수의 이나 면류관의 이미지를 거론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활과 면류관이 일차적으로 전쟁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첫째 기수는 소개되는 재앙의 배경이나 동기를 제시한다. 기수는 로마 제국의 군대도 두려워하지 않고 정복 전쟁에 나선 파르티아 군대처럼 이기려고 한다. 즉 승리를 위한 야욕에 불타올랐다. 이런 점에서 흰 말과 기수는 죄와 욕망에 물든 인간의 이기려는 탐욕과 경향성을 상징한다.23) 왕의 야욕은 전쟁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이런 견해는 신명기 32:23-2524) 에스겔 5:16-1725) 있는 과 재앙들의 관계와도 연결된다. 두 본문에서 하나님의 화살들은 기근, 전염병, 들짐승, 칼의 재앙을 야기한다.26) 즉 활은 하나님의 재앙이나 징벌을 가리키는 역할을 했다. 활의 역할과 우리의 본문과 연결해 보면, 기수가 활을 쏠 때마다 재앙이 등장하는 것과 같이 첫째 말과 기수는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의 재앙을 예고하고 시작한다.27)

면류관을 쓰고 철저히 이기려는 기수의 의지는 재앙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이런 야욕은 로마와 같은 국가를 통해 표출되면 엄청난 규모의 비극이 지상에 일어날 수밖에 없다. 첫째 기수의 의지는 악의 세력이 승리하고 더 강력하게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는 역사, 초기 교회가 겪은 역사의 현실을 반영한다. 지상에 재앙을 들고 오는 세력이 승자의 모습을 하고 세상과 하나님의 백성을 이기려고 했다. 그러나 면류관은 주어진 것이다. 신적 수동태인 주어졌다”(ἐδόθη 에도떼)는 하나님이 주셨다는 뜻이다. 이는 첫째 기수가 스스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첫째 생명체(하늘보좌 방의 천사)오라!”는 명령에 따랐던 것과 같은 논리다. 첫째 재앙의 원인은 악이고 하나님은 악을 조장하지 않는 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악에 의한 재앙을 통제 밖에 두시는 분도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재앙을 허용하시는 동시에 제한하신다. 이런 점에서 주어졌다는 현실 역사에 대한 하늘의 해석과 같다.

 

2.2. 둘째 인, 붉은 말과 둘째 기수(6:3-4)

 

[3] 그가 둘째 인을 열었을 때 나는 둘째 생명체가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오라!” [4] 붉은 색의 또 다른 말이 나왔습니다. 말을 타고 있는 자는 땅에서 평화를 제거하는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서로를 살육했고 그에게는 큰 칼이 주어졌습니다. [3-4] 요한은 어린 양이 둘째 인을 열었을 때 둘째 생명체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오라!”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붉은 색 말이 나왔다. 스가랴 1:86:2에는 붉은 말이 등장하지만 말의 특징이나 역할이 소개되지는 않는다. 반면 4절의 살육하다큰 칼은 붉은 색이 피의 색임을 암시한다. 붉은 말을 타고 있는 자가 땅에서 평화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서로를 죽였다. 기수는 큰 칼을 받았다. 이는 둘째 기수가 평화를 제거하는 방식이 사람들 간의 살육과 칼, 즉 전쟁임을 뜻한다. 붉은 색과 큰 칼은 전쟁의 결과로 피를 흘리는 현장을 표현하기에 자연스런 조합이다. 말하자면, 둘째 기수는 칼을 들고 전쟁에 임하고 평화를 제거한다. 이는 계시록 12:3에서 사탄이 붉은 색을 띄고 있는 사실과 연결된다. 붉은 옷을 입은 음녀 바벨론의 붉은 색은 사치와 피의 색이다(17:4; 18:16). 음녀 바벨론은 사람들의 피를 포도주로 마셨고 땅의 왕들이 음행의 포도주에 취했다(참고. 17:2; 18:2). 피는 전쟁과 정복의 결과로 흘려지므로 음녀 바벨론은 전쟁으로 사람들의 피를 흘렸고 유흥을 즐기는 음녀의 포도주는 백성이 피였다.

둘째 기수가 빼앗는 평화1세기 당시 로마 제국의 대표적인 선전 문구,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나)를 떠오르게 한다. 요한의 청중에게 일차적으로 둘째 기수는 로마의 군대였을 것이다. 로마는 자신의 평화를 강요하고 속주의 평화를 제거했다. 로마의 평화는 다른 나라와 속주의 백성이 흘린 피의 대가였다.28) 로마의 평화는 로마 공화정의 최종 전쟁을 끝낸 아우구스투스로 시작된 것이므로 아우구스투스의 평화’(팍스 아우구스타)로도 불렸다. 아우구스투스가 스페인과 고울 원정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원로원은 비아 플라미니아에 그를 위해 제단(BC 9130)을 세웠다(1903년에 발굴).

 

동시에 원로원의 결의로 백성의 법무관들과 호민관들, 집정관과 퀸투스 루크레티우스와 국가의 지도자들이 나를 만나려고 캄파니아에 왔다.내가 이런 속주들에서 성공적인 작전을 마치고스페인과 고울에서 돌아왔을 때 원로원은 나의 귀환을 기념해 팍스 아우구스타(Pax Augusta) 제단을 봉헌하기로 결의했다. 이 제단에는 판사들과 제사장들과 베스타의 처녀들이 매년 제사를 드리라는 명령이 있다. (Augustus, Res 12)29)

 

역설적으로 로마는 로마의 평화를 선전했으나 속주 백성에게는 그들의 평화를 제거한 것과 같은 거짓말이었다. 타키투스의 기록에 따르면 로마의 평화는 피지배층에게는 평화가 아니었다. “세계의 강도들이 전 지역의 약탈로 땅을 초토화시켰다.그들은 강도, 살육, 약탈에 제국의 거짓 이름을 붙였으며, 그들은 초토화시켰고 이를 평화로 불렀다.”30) 로마의 평화에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백성은 유대인들이었다. 예루살렘은 유대 전쟁으로(AD 66-70) 약탈당하고 초토화되고 말았다.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한 것을 콜로세움을 건설하는 자금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첫째 기수에 이어 둘째 기수에게도 권세가 주어졌다. 전쟁의 비극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일어난다. 이는 하나님이 전쟁을 조장하신다는 뜻이 아니다. 어린 양, 그리스도는 살육을 당했고 피가 뿌려진 옷을 입으셨다(5:6; 19:13).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어린 양으로 살육당하셨고 어린 양을 따르는 신실한 신자들도 칼의 희생자들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정복 야욕과 탐욕에 따른 전쟁을 목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재를 확신하거나 신정론의 질문을 던질 것이다. 요한은 전쟁의 참혹한 현실에서도 독자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시간과 개입을 믿고 인내하길 원했을 것이다. 공관복음 전승에서도 예수는 전쟁을 예고하셨다(13:7).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2.3. 셋째 인, 검은 말과 셋째 기수(6:5-6)

 

[5] 그가 셋째 인을 열었을 때 나는 셋째 생명체가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오라!” 나는 보았습니다. 검은 말이 있었습니다. 말을 타고 있는 자는 그의 손에 저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6] 나는 네 생명체 가운데서 음성 같은 것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이며, 올리브기름과 포도주에 해를 끼치지 말라.” [5] 요한은 어린 양이 셋째 인을 열자 셋째 생명체가 부르는 소리, “오라!”를 들었다. 음성에 이어 요한은 검은 말이 등장하는 것을 보았다. 기수는 손에 저울을 들고 있었다. 저울은 기근이 들었을 때 음식, 기본 식량을 배급할 때 평가하는 도구다(참고. 26:26).31) 본문에서는 기근과 가격의 정도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유대교에서 검은 색은 어두운, 좋지 않은 의미를 예고하고 검정 옷은 슬픔을 나타냈다. 말하자면, 검은 색 말은 어두운 사건을 암시한다. 6절은 검은 색이 기근을 상징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기근은 구약(, 26:26; 4:16) 뿐 아니라 예수의 종말 강화에도 강조된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24:7). 요한이 4, 5절에서 피와 기근을 의도하는 것처럼 마태복음 24:7도 전쟁()과 기근의 순서로 역사에 일어나는 비극을 언급한다.

[6] 요한은 네 생명체에서 나오는 음성을 들었다. 음성은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 보리 석 되가 된다고 알리며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를 해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구약과 미쉬나에는 밀이 보리보다 두 배 비싼 것으로 기록된다(왕하 7:1, 16, 18; m. Ketub. 5.8). 영양분이 밀보다 낮고 식감과 맛이 떨어졌기 때문에 로마 시대에는 가난한 자들의 음식이었다.32) 일반적으로 밀의 절반 값이었고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음식으로 사용했다.33) 노동자의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으로 밀을 8-16되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데나리온으로 밀 한 되를, 보리 석 되만을 살 수 있다는 것은 곡물 가격이 급등했다는 경제 현실을 보여준다. 곡물이 이처럼 비싸게 거래되는 현상은 기근 상태임을 말해준다. 자연 재해 외에 전쟁이나 제국의 착취도 기근의 원인이다.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를 해하지 않은 것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올리브기름과 포도주가 사치품이 아니라 생필품인 경우다. 성경에도 밀, 기름, 포도주는 생필품으로 언급된다.34) 이 경우 올리브기름과 포도주에 해를 끼치지 말라는 생필품을 보호하라는 명령이 된다. 가격 상승에서 두 품목을 제외시키라는 뜻이다. 만일 기근의 원인이 전쟁이라면 이 명령은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가 전쟁의 피해를 않게 하라는 것이다. 군대가 침공해서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를 불태워버리면 새로 나무를 심어 열매를 맺기까지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이는 밀과 보리와 같은 곡식을 불태워도 이듬해에 심고 열매를 맺는 것과 다르다.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를 보호하는 것은 소유주들이 생산할 수 있게 한다. 92년 도미티안 황제가 곡식을 기경하도록 하기 위해 포도원의 절반을 철거하도록 명령한 적이 있다(Suet. Dom. 7.2; 14.2).

둘째, 올리브기름과 포도주가 사치품 또는 주요 교역품인 경우다. 이 경우 로마 시(바벨론, 음녀) 또는 부자들이 사치를 위해 두 품목 생산을 늘리게 만들었고 식량 재배지(또는 생산량)가 줄었다. 도미티아누스...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를 보호한 결과로 속주의 백성은 로마의 권세에 눌려 식량을 공급받지 못하는 피해를 입게 된다.

둘째 견해가 타당하다. 본문에는 땅의 4분의 1에 재앙을 한정시키는 명령 외에 개별 재앙을 소개할 때 해당 재앙을 제한하는 명령이 나오지는 않는다. 또한 18:12-13에 언급된 로마의 주요 교역 물품에 올리브기름, 포도주, 밀이 포함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보컴의 연구에 따르면35) 세 가지 물품이 사치품은 아니었지만 로마의 거주민 전부를 위해 필수적이었으므로 로마는 대량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속주의 생필품 부족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었다. 로마의 속주 국가에게는 로마와의 올리브기름, 포도주, 밀 교역이 상당한 소득을 확보해 줄수록 일반 백성은 식량난에 시달리게 될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1세기 당시 로마에 수입되는 감람유의 주요 공급처는 이탈리아에서 아프리카와 스페인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AD 1세기 말엽에 로마 제국은 포도주 과잉과 식량의 부족으로 심각한 문제를 겪었다. 포도주 교역에서 오는 이득이 더 많았기 때문에 부유한 로마인들은 속주의 광대한 소유지에서 곡식 대신 포도나무를 재배했다. 이 때문에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칙령으로 포도나무 재배를 절반으로 줄이려는 시도를 했으나 상업의 여건 때문에 충분한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현실을 고려하면, 올리브기름과 포도주 생산을 감축하지 못하게 하는 명령은 식량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재앙이었다. 덧붙여서 우리는 18:12-13의 교역 품목에 밀이 포함되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AD 1세기 로마 시의 인구(80-100만 명)를 위해 식량을 공급하는 거대한 경제 시장이 형성됐다. 보컴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36)

 

로마로 향하는 수 천 개의 선박이 곡식을 싣고 지중해를 통과했다.속주들에게서 곡물을 일종의 세금으로 받아내 자국의 무료 식량 공급 문제를 해결했다.로마의 부자 시민들이 제국으로부터 얻은 부를 지나친 사치를 위해 사용한 교역 상품과 달리 밀수입은 로마의 일반 시민이 제국의 나머지 백성을 희생시켜 생존했음을 알린다. 100만 명의 로마 시는 이곳을 지원하는 제국 전체의 자원이 없이는 성장하고 생존할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음녀(로마 시)가 짐승(황제 권력)을 타고 있는 모습이 의미하는 것 중 한 부분이다. 계시록이 기록된 시기에 소아시아의 도시들에서 빵을 구하는 폭동이 여러 차례 일어난 증거가 있다.가난한 자들은 로마로 곡식을 공급하는 시스템에 저항하고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에서 계시록의 경제적 배경은 계시록 6:5-6에 생생하게 묘사된다. 즉 가장 기본적인 식료품(밀과 보리)이 부족한데도 포도주와 기름이 넘쳐났다.

 

2.4. 넷째 인, 황록색 말과 넷째 기수(6:7-8)

 

[7] 그가 넷째 인을 열었을 때 나는 넷째 생명체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오라.” [8] 나는 보았습니다. 황록색 말이 있었습니다. 말 위에 있는 자의 이름은 죽음이었습니다. 음부가 죽음을 따랐습니다. 죽음과 음부에게37) 땅의 4분의 1에 대해 칼로, 기근으로, 전염병으로, 땅의 짐승들로 죽이는 권위가 주어졌습니다. [7-8] 요한은 어린 양이 넷째 인을 열자 넷째 생명체의 오라는 소리를 들었다(7). 요한은 어두운 녹색 말을 보았다. 클로로스(χλωρός)는 황록색에 해당한다. 원래 황록색 말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 색은 본문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연한 녹색은 핼쑥한’, 질병의 색이었다.38) 아프거나 죽어가는 또는 공포에 질린 사람의 얼굴색이다.39) 앞의 세 기수와 달리 넷째 기수에게는 이름이 있다. 말이 질병의 색을 띄고 있었으므로 기수의 이름은 죽음이다. 8절에 두 번 사용된 죽음은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70인역은 전염병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데베르를 자주 죽음’(θάνατος)으로 번역했다.40) 레위기 26:25과 에스겔 14:19-21은 이를 입증하고 본문의 배경이다. 따라서 죽음으로 번역된 θάνατος(싸나토스)는 죽음의 구체적인 형태, “전염병을 포함하고 있고 8b에서 죽음의 구체적인 예를 열거하기 위해 사용된 죽음”(θάνατος)은 전염병으로 번역될 수 있다. 죽음에 이어 죽은 자들의 영역인 음부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요한은 두 마리의 말을 본 것이 아니라 죽음과 음부를 연결한다. 구약 본문에도 죽음음부가 함께 언급되기도 한다. 호세아 13:8, 14에는 죽음”, “음부”, “들짐승이 우상숭배의 죄를 범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이후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원과 관련해 사용된다.41) 지하세계를 가리키는 음부”(lAav. 스올)는 관사 없이 구약에 66회 고유명사로 사용되고 죽은 자들이 거하는 땅 속 깊은 곳을 가리킨다.42)

8b절은 네 마리 말과 네 기수의 역할을 요약하고 있다. 첫째 기수가 이어지는 기수들의 역할을 예고하고 악한 역할의 원인을 의도한 반면, 넷째 기수는 모든 재앙을 요약하는 역할을 한다. 재앙의 화살로 칼(전쟁, 4)과 기근(5)과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들이 있다. 구약에서도 칼, 기근, 전염병은 땅에 임하는 고통을 3중으로 표현한 방식이었다(참고. 26:23-26; 5:12, 17; 14:21; 33, 27; 14:12; 15:2; 21:7; 24:10; 27:8; 29.17이하; 32:24; 34:17; 38:2; 42:17; 44:12이하).43) 한편, 앞에 거론된 적이 없는데도 죽음의 원인으로 땅의 짐승들이 추가된 것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할 때 이미 사용된 네 가지 요소와 관련이 있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네 가지 원인은 에스겔 5:1714:21과 비슷하다.44)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예루살렘에서 사람과 짐승이 사라지게 하려고 나의 네 가지 맹렬한 재앙들 곧 전쟁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을 거기에 보낼 때에, 그 해가 얼마나 크겠느냐”(14:21, 새번역); “내가 너희에게 기근과 사나운 짐승들을 보내어, 너희 자식들을 앗아가도록 하겠다. 너희는 전염병과 유혈사태를 너희 한가운데서 겪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전쟁이 들이닥치게 하겠다. 나 주가 말하였다”(5:17, 새번역). “땅의 짐승들”(θηρία τς γς 테리아 테스 게스)은 약탈자들을 가리킨다.45) 그러나 시편 79:2에서는 땅의 짐승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자들을 지칭하는 용어였다(70인역은 78:2).46) “그들이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의 짐승에게(‘땅의 짐승들에게’, τος θηροις τς γς 토이스 떼리오이스 테스 게스) 주며.” 만일 요한이 이와 같은 구약의 인유를 의도했다면, 짐승들에게 또는 짐승들과 같은 자들에게 목숨을 잃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주어졌다”(ἐδόθη)의 동사가 사용된다. 기수의 행위는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것이다. 또한 넷째 생명체는 네 종류의 재앙이 집행되는 범위를 1/4로 제한한다. 하늘의 관점에 따르면 죽음에 이르는 네 가지 재앙은 제한적으로 일어나고(땅의 1/4) 죽이는 권세는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재앙을 주도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은 재앙이 일어나는 범위와 시간을 제한하신다.47)

 

3. 다섯째와 여섯째 인(6:9-17)

 

어린 양이 다섯째 인을 열자 하늘에 있는 성도들의 모습이 나온다(9-11). 복음을 증언한 이유로 죽은 순교자들은 거룩한 제물로 드려졌기 때문에 제단 아래 있다. 순교자들은 하나님께 자신들의 순교를 신원해 주시길 간구한다(10). 하나님은 순교자들에게 흰옷을 주신다. 이는 그들이 승리자들이고 영적으로 순결한 자들임을 의미한다. 순교자들의 질문에 대해 하나님은 그들의 동료 종들과 그들의 형제들의 수가 채워질 때 신원하실 것이고 그동안 안식을 선사하신다. 역사의 끝에 하나님은 순교자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최후심판을 집행하신다(12-17). 하나님의 심판은 우주 전체에 내려진다. 특히 땅에서 권력과 부에 의존해 살았던 자들은 어린 양이신 예수께서 내리는 진노의 심판을 견딜 수 없게 된다. 본 단락에는 두 가지 질문이 등장한다.

 

첫째 질문: “얼마 동안입니까?”(10)

대답: “동료 종들과 그들의 형제들의 수가 채워질 때까지”(11)

둘째 질문: “진노의 큰 날이 왔기 때문에 누가 설 수 있겠는가?”(17)

대답: 하나님의 인을 받은 144,000명과 셀 수 없는 큰 무리(7)

 

6:12-17은 성도들의 간구(6:10)에 대한 답변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는 자들에게 심판으로 응답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미치는 범위는 우주 전체다. 11절에서 하나님은 순교자들의 숫자가 채워질 때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12-17절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11절의 응답으로 묘사한다. 12-14절은 하나님의 심판이 창조 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15-17절은 피조 세계의 인간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주의 마지막 날(심판의 날)이 창조가 뒤집혀질 것이라고 내다보았으며, 2성전기 유대 문헌에도 이와 같은 묵시적 표현이 사용된다. 본문은 공관복음 전승과도 비슷하다(24:29; 13:24-25). 15-17절은 최후 심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며, 17절의 질문은 7장의 응답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3.1. 다섯째 인(6:9-11)

 

[9] 그가 다섯째 인을 열었을 때 나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받은 증언 때문에 죽임당한 자들의 영혼들을 제단 아래서 보았습니다. [9] 요한은 어린 양이 다섯째 인을 열자 하나님의 말씀과 증언 때문에 죽은 자들의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는 장면을 보았다. 영혼은 히브리어 네페쉬의 헬라어 번역어인 프쉬케(ψυχή)로 사람의 절반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가리킨다. 절반인 육체는 음부에 가고 영혼은 하늘에 가는 것이 아니다. 본문은 당시 유대교의 순교자들과 내세사상을 반영한다. 제단 아래의 위치는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따르고 죽은 순교자들이 안식하고 새 창조의 완성을 기다리는 곳이다(참고, 16:22; 23:43; 고후 12:2-4). 구약에서 모세가 하늘의 성전을 보고 만든 땅의 성전에는 두 제단이 있었다(4:7). 하나는 희생 제물을 위한 제단(20:24; 1:5)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 앞에 분향을 위한 제단이었다(30:1; 1:11). 레위기 4:7에서 희생 제물의 피는 번제단 아래에 뿌려진다(참조. 4:18; 8:15). “제사장은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들에 바르고 그 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막 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4:7). 예루살렘 성전에서 희생 제단은 성소 밖, 제사장들의 뜰에 있었고, 분향단은 성소에 있었다. 요한은 지금 하늘 성전에서 하나의 제단만 본다. 하늘의 제단은 지상의 두 제단을 성취하고 두 제단의 기능(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희생 제사와 향과 같은 그들의 기도)을 연결하고 있다. 따라서 순교자들이 제단 아래 있는 모습은 그들의 죽음이 하나님께 드려진 희생제물인 것을 상징한다. 이들은 죽임당한 어린 양의 길을 따랐고 승리한 어린 양처럼 이긴 자들이다(5:5). 이들은 기독교 순교자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옛 언약과 새 언약 두 시대에서, 아벨로부터 하나님을 위해 죽은 의인들 모두를 가리킨다.50) 흥미롭게도, 순교자들이 죽은 이유는 밧모 섬에 있는 요한의 생애와 같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그가 본 모든 것을 증언했다”(1:2 사역); “나 요한, 예수 안에서 환난과 나라와 인내에 있어 너희의 형제요 동료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언 때문에 밧모로 불리는 섬에 있었다”(1:9 사역)

 

[10] 그들은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거룩하고 참되신 주여,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우리의 피를 심판하고 보복하시기까지 얼마 동안입니까? [10] 또한 기도의 단과 연결해 보면, 순교자들은 신원을 위해 기도한다. 제단 아래 있는 순교자들은 하나님이 신원하실 때에 대해 질문한다.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우리의 피를 심판하고 보복하시기까지 얼마 동안입니까?” “주여”(δεσπτης 에스포테스)는 황제에게 흔히 사용된 칭호였다. “거룩하고 참되신주는 제국의 권세를 가진 황제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로마 황제와 구별된(=거룩한) 분이고 진리이시므로 어린 양의 길을 간 순교자들의 희생을 반드시 신원하실 것이다. 순교자들의 질문은 구약의 의인들이 던진 것과 같다. 구약에서 언제까지입니까?”는 언제 하나님이 핍박하는 자들을 징벌하시고 압제받는 의인들을 신원하실 것인지 묻는 질문이다(6:3; 13:1; 74:10; 79:5; 80:4; 89:46; 90:13; 94:3; 6:11; 1:12). 이 질문은 하나님의 의롭고 신실하심을 믿기 때문에(“거룩하고 참되신 주여!”) 탄식하는 의인들의 기도를 대변한다.51) 흥미롭게도, 피 흘림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을 촉구하는 기도는 시편 79:10에 강조된다.52) “이방 나라들이 어찌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나이까? 주의 종들이 피 흘림에 대한 복수를 우리의 목전에서 이방 나라에게 보여 주소서.” 덧붙여서, 스가랴 1:12에서는 얼마동안입니까?”는 네 종류의 말들,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1:10)이 땅을 다니고 보고한 내용에 대해 나온 질문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핍박한 땅이 평화롭게 지낸다고 여호와의 천사에게 보고한다(1:11). 보고를 들은 여호와의 천사는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하나이까?”라고 질문한다.53)

 

[11] 그들 각자에게는 흰옷이 주어졌으며, 그들처럼 죽게 될 그들의 동료 종들과 그들의 형제들의 수가 채워질 때까지 잠시 쉬라는 말이 들렸습니다. [11] 순교자들에게 흰옷이 주어졌다. 흰옷은 계시록의 다른 본문에 자주 언급된다. 이기는 자들은 흰옷을 입고 있다(3:4, 5). 어린 양의 군대(7:9, 13, 14), 24장로들 또는 천사들(4:4)과 하늘 군대는 흰옷을 입고 있다(19:14). 11절에서 흰옷을 입은 사람들은 순교자들이므로 그들의 옷은 신앙의 순결에 대한 하늘의 보상, 즉 하늘의 거룩한 지위를 상징한다.54) 그들의 흰옷은 어린 양의 피로 옷을 희게 씻은 하늘의 셀 수 없는 무리의 모습과도 연결될 수 있다(7:14). 이는 순교자들의 죽음이 복된 죽임인 것을 입증한다. 유대교에서 물질적인 복은 하나님의 축복을 의미했고 불행은 하나님의 형벌을 뜻했다(. 욥기, 솔로몬 지혜서). 복된 죽음은 의인들의 죽음이며 장수 하다 죽는 것이다(30:19-20; 112, 127). 그런데 이방인들의 박해 속에서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다가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하고 죽어갔다. 순교자들은 불행한 자들인가? 어린 양의 죽음은, 어린 양의 증인으로 죽는 것은 불행인가? 이들의 죽음은 악인들의 죽음이 아니라 의인들이 받은 고난의 결과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들을 신원해 주시는 사실은 흰옷이 주어지는 문구로 표현된다.

순교자들은 안식으로 초대를 받는다(참고. 11:28). 안식의 초대가 등장하는 14:13주 안에서 죽는 자들의 의로운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이해한다. 순교자들은 하늘성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며 안식하고 있다(참고. 3:7-19). 안식의 기간은 그들처럼 동료 종들과 그들의 형제들의 수(144,000)가 채워지기까지다. “동료 종들형제들은 동일한 대상을 지칭하는 용어다. 계시록에서 이 기간은 42개월(11:2; 13:5), 1,260(11:3; 12:6), 3일 반(11:9, 11)으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1,260일 동안 증언하는 교회의 상징인 두 증인에 순교자들과 동료 종들이 포함된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사이에 지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신자들은 고난을 받고 어떤 증인들은 죽게 될 것이다. 하늘의 제단 아래에 있는 순교자들처럼 동료 종들과 형제들 중에는 순교의 피를 흘릴 사람들이 있다. 순교자들은 용, 곧 사탄과 괴물에 의해 죽음을 당할 것이다. 요한이 거하던 시기에 사탄은 바벨론으로 상징되는 로마를 박해자로 사용한다. 박해자들은 자신들이 받을 진노의 심판을 차곡차곡 쌓아 갈 것이다. 순교의 피를 흘리게 하는 로마는 심판을 더욱 강하고 빨리 준비하고 있다.

 

3.2. 여섯째 인(6:12-17)

 

[12] 그가 여섯째 인을 열었을 때 나는 보았습니다. 큰 지진이 있었습니다. 해가 머리카락으로 짠 상복처럼 검게 되고 보름달이 피처럼 됐습니다. [13] 하늘의 별들이 강풍으로 설익은 열매가 무화과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땅에 떨어졌습니다. [14] 하늘은 말리는 두루마리처럼 사라졌습니다. 모든 산과 섬이 있던 데서 옮겨졌습니다. [12-14] 12-14절의 묵시 그림은 주로 구약의 언어에 근거한다. 우주 붕괴에 대한 묘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요한은 어린 양이 여섯째 인을 열 때 큰 지진이 일어나는 장면을 보았다(12a). 구약에서 지진은 하나님의 신현이 시작되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 자주 사용됐다(19:18; 24:18-20; 29:6; 2:10; 3:16; 1:4; 1:5).55) 특히 시내산 시현의 경우처럼 지진은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 일어나는 현상이다(참고. 19). 계시록에 등장하는 큰 지진 중 첫째는 예비적 심판이 아니라 역사의 끝에 나타나는 최후의 지진을 가리킨다(참고. 8:5; 11:13, 19; 16:18).56) 지진은 지축을 뒤흔들고 순식간에 도시를 파멸하고 사람들을 죽이는 재앙으로 1세기 소아시아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한 것이었다. 사데는 AD 17년의 대지진으로 초토화되고 말았고 이때의 대지진으로 빌라델비아를 포함한 아시아의 열두 도시는 제국의 원조를 요청했다.57) 라오디게아(AD 60), 키프로스(76), 폼페이(79)가 연이어 지진의 피해를 입었다(참고. 16:21). 유대 문헌 <시빌의 신탁>은 하나님의 심판이 지진의 파괴력으로 바벨론에 임할 것을 예고했고(5:438) 지진을 하나님 백성의 원수들에 대한 최후 심판으로 이해했다(3:675-693).58) 본문에서 하나님은 순교자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역사의 종말에 심판으로 임재하실 것이다.

둘째, 해가 머리카락으로 짠 상복처럼 검게 되고 달이 피처럼 변했다(12b). 이는 이사야 50:3의 이미지와 비슷하다.59) “내가 흑암으로 하늘을 입히며 굵은 베로 덮느니라.” 상복은 슬픔과 탄식의 표시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피처럼 변하는 장면은 요엘 2:31을 근거로 한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해와 달과 별의 붕괴는 이사야 13:10에 나타났다.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이지 아니할 것이로다.” 이 배경을 고려하면, 해와 달의 변화된 빛은 주의 날, 곧 심판의 날에 대한 전형적인 묵시적 묘사라고 할 수 있다.

셋째, 하늘의 별들이 강풍으로 설익은 열매가 무화과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땅에 떨어졌고 하늘이 말리는 두루마리처럼 사라졌다(13-14a). 해와 달과 별은 천체를 지칭하는 대표적인 3중적 요소다(1:16; 8:4; 148:3; 31:35; 고전 15:41). 하늘의 붕괴를 무화과나무 열매가 떨어지는 것으로 묘사한 것은 이사야 34:4과 비슷하다.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 유대 문헌은 이 표현은 시대의 끝을 가리키는 이미지 언어로 사용했다(시빌의 신탁 3.83; 8.233, 413).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은 하늘이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

넷째, 모든 산과 섬이 그것들의 장소에서 옮겨졌다(14b). 이 표현은 16:20에서 최후심판을 묘사한 내용과 비슷하다. 6:12에서 지진을 가리키는 구약 본문에는 하나님이 심판하러 오실 때 산들이 흔들리는 내용이 함께 사용된다(, 97:5; 38:20; 1:5; 시락서 16:19; 유딧서 16:15; 모세의 유언 10:4). 산과 섬이 제 자리를 옮긴 것은 바다의 혼돈으로 땅이 쪼개진 모습과 같다(창조의 모습과 반대). 그 살륙 당한 자는 내어던진바 되며 그 사체의 악취가 솟아오르고 그 피에 산들이 녹을 것이며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34:3-4). 요한의 목격한 현상은 우주의 기능이 무너지는 종말의 상황이며(참고. 벧후 3:7, 10), 하나님이 얼마나 강력하게 임하시는지 예고한다.

12-14절의 우주 붕괴는 비유적 의미인가 아니면 문자적 의미인가? 만일 문자적 의미라면 15-16절의 반응 역시 실제 행동에 해당하게 된다. 첫째, 구약의 여러 본문은 나라의 멸망을 우주의 요소들이 붕괴되는 이미지 언어로 묘사한다. 바벨론(13:10-13), 에돔(34:4), 이집트(32:6-8), 이스라엘의 원수들(3:6-11), 이스라엘(2:10, 30-31)의 몰락이 이런 예에 해당한다.63) 우주적 현상은 다윗의 원수들(삼하 22:8-16; 18:7-15)이 받을 심판을 강조하기 위해서도 사용된다.64) 둘째, 구약의 여러 본문은 문자적 의미로 우주 붕괴의 언어를 사용한다(, 102:25-26; 24:1-6, 19-23; 51:6; 64:1; 38:19-20; 2:6-7).65) 12-14절이 최후 심판의 시작을 묘사하는 점을 고려하면 요한이 여기서 사용한 우주 붕괴의 언어는 문자적 의미에 해당한다(, 20:11-22:5). 요한은 실제로 일어나는 우주의 붕괴를 비유의 언어로 묘사하고 있다.66) 중요한 것은 요한이 우주에 임하는 최후 심판을 강조하기 위해 구약에 사용된 우주 붕괴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실이다.67)

또한 요한의 묘사는 공관복음의 종말 강화와 비슷하다(24:29; 13:24-25; 참고. 2:19-20). 요한과 공관복음은 이런 구약 본문에서 적어도 네 가지 요소, 즉 해와 달과 별들과 하늘이 어두워지거나 흔들리는 것, 피가 부어지는 것을 사용한다.

 

[15] 땅의 왕들과 큰 자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힘 있는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동굴들과 산들의 바위들 가운에 스스로 숨었고 [16] 산들과 바위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 위에 앉으신 분의 얼굴과 어린 양의 진노로부터 우리를 숨겨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왔기 때문에 누가 설 수 있겠는가?” [15] 숫자 7의 상징성을 고려할 때 15절에 등장하는 일곱 종류의 사람들은 모든 인간을 포괄한다(참고. 19:18). 15절은 고도로 계층화되고 권력과 부와 정치-군사력이 소수에게 집중된 로마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 일곱 종류의 사람들은 심판이 내려질 때 땅에 살아있는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서 땅의 왕들과 큰 자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힘 있는 자들”(참고. 34:12)은 세상의 악한 체계를 힘입어 권력과 부를 누린 자들이다. “땅의 왕들”(참고. 24:21; 2:2; 89:28)은 계시록에 7회 등장한다(1:5; 17:2, 18; 18:3, 9; 19:19; 21:24). 이들은 로마 황제를 섬긴 속주의 왕들이다. 어린 양의 원수들이며 주로 바벨론의 동맹들로 후반부에 다시 언급된다(16:14; 17:2, 18; 18:3, 9; 19:19). “큰 자들”(참고. 39:18-20; 34:12)은 왕들의 권위에 근거해 백성을 다스린 관료들에 해당한다(참고. 3:24-27). 이들은 현세에서 정치, 군사적인 힘을 가졌고 부요한 자들이다(참고. 18:23). “장군들은 로마 군대에서 천 명의 군인들을 통솔한 지휘관들이다. 부자들은 왕과 힘 있는 자들과 장군들과 연대해 부를 획득하는 자들이다. 로마 사회는 자유인들과 종들로 이루어졌으므로 자유인들과 종들은 모든 백성을 포괄하고 있다.

일곱 종류의 사람들은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었다(15b). 보좌 위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의 진노를 피할 수 있도록 산들과 바위들을 향해 자신들 위에 떨어져 달라고 간청했다(16).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 무서워 살아야 하는 소망이 사라지기 때문에 한 순간에 죽고자 한다(, 23:30). 하나님의 얼굴은 긍휼(6:25-26; 4:6)이나 분노(17:10; 13:1)를 의미하는데, 여기서 심판에 해당한다. 하늘보좌에 앉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4-5)은 역사의 끝에 심판으로 반응하실 것이다. 그들은 또한 어린 양의 진노를 두려워한다. 이미 5장에서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권위(δύναμις 뒤나미스), (ἰσχύς 이스퀴스), 권능(κράτος 크라토스)을 가진 존재로 묘사됐다(참고. 14.1; 17.14; 19:16; 21.27). 권세를 사용하지 않고 죽은 어린 양이 역사의 끝에는 그와 신자들에게 고통을 안겨 준 자들을 심판할 것이다.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산과 바위를 향해 외치는 내용은 구약에서 우상숭배자들의 공포심과 관련이 있다(10:8; 10:1-3, 8; 11:2; 4:29; 참조. 4:23-30; 5:7). “이스라엘의 죄 곧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 그 때에 그들이 산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이요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10:8). 따라서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한 것과(참조. 33:1-34; 34:13; 35:-4; 6:9-12) 우상숭배의 죄로 인해 심판 받는다.70) 이들은 심판의 날에 이들은 자신들에게 내려지는 우주적 붕괴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참조. 21:26). 우주적 재앙은 사람을 회개로 이끌기도 하지만(참조. 9:20; 16:11), 이들이 숨는 것은 회개의 모습이 아니다.

그들이 공포에 질린 이유는 진노의 큰 날이 왔기 때문이다(17). 진노의 큰 날은 반역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켰다(, 2:11, 31; 1:14-16; 4:1, 5). 어린 양과 그를 따르는 자들을 반대한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17절은 하나님의 진노와 질문을 연결하는 점에서 요엘 2:11과 비슷하다.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나훔 1:6과 말라기 3:2에도 같은 의미의 질문이 등장한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사람은 당연히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은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어지는 7장은 하나님의 백성이 보호받는 사실로 17절의 질문에 답할 것이다.

 

4. 결론과 함의

 

네 말과 네 기수의 등장으로 지상에는 네 종류의 재앙이 임한다(6:1-8). 우리는 다음과 같이 네 말과 기수의 상징성을 정리할 수 있다. (1) 재앙을 4중으로 표현한 것(, 8)은 인류가 겪는 고통이 크고 보편적인 것을 의미한다. 이는 지상에는 네 종류의 재앙만 있다는 것이 아니다. 재앙은 전쟁, 기근, 전염병의 순서처럼 네 인을 여는 순서대로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요한은 땅을 포괄하는 숫자 4를 사용해 재앙을 4중으로 표현함으로써 재앙의 보편성을 의도한다.

(2) 네 말과 네 기수로 집행되는 재앙은 종말의 현상이 아니라 예수의 재림 전까지 주어지는 것이다. 4중 재앙을 통한 인류의 고통은 역사의 종말, 예수의 재림 전에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공관복음 전승과 같이 재앙은 역사의 끝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재난의 시작”(24:8)이다.

(3) 재앙의 대부분은 근본적으로 목적을 반드시 성취하려는 야욕에서 출발하고 확장된다. 첫째 인이 열려 등장한 흰 말과 기수는 승리의 상징인 면류관을 쓰고 반드시 이기려고 한다. 이는 역사에 벌어지는 많은 재앙이 인간의 야욕에 근거하는 것임을 내포한다. 넷째 말과 기수가 상징하는 전염병을 제외한 둘째 기수와 셋째 기수에 의한 전쟁과 기근은 인간의 악(, 야만성, 야욕, 탐욕, 사치)으로 생긴다. 말하자면, 재앙의 주된 원인은 인간의 악이다. 요한이 1-8절에 지진과 같은 자연 재해를 목격하지 않은 것도 인간의 죄가 재앙으로 귀결되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함일 것이다.72)

(4) 본문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주권은 악의 중개자들에게 권위가 주어졌다는 동사로 입증된다(, 6:2, 4, 8). 일곱 인 시리즈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제기할 수 있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하나님과 어린 양이 하늘보좌에서 통치하는 사실과 현실의 재앙, 특히 신자들의 고난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기 때문에 신자들은 신정론에 대한 질문을 던질 것이다. 재앙 자체만 보면 하나님의 부재를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 본문은 인을 여시는 분을 어린 양으로 밝히고 재앙을 집행하는 기수가 하늘보좌 주변에 있는 생명체들, 곧 천사들의 명령을 받는 사실을 기록한다. 그러나 인간의 악이 재앙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고 재앙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도 아니다. 하나님은 재앙을 허용하시고 제한하시는 것으로 긍휼을 보이신다. 하나님의 주권은 재앙이 미치는 범위와 정도를 1/4로 제한하시는 데서도 나타난다. 하나님의 제한은 사탄의 세력에 대한 주권을 의미한다.

(5) 계시록 전체에서 재앙이 집행되는 기간은 교회가 증언하고 사람들이 회개로 이끄는 기회다. 근본적으로 증언하는 교회의 고난을 통해 사람들이 회심하지만(11:13) 재앙의 고통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들이 나올 수 있다. 신자들의 경우 재앙을 통해 평안을 보장하는 주체를 하나님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네 명의 기수들은 사람들을 깨우는 자명종의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외의 존재(, 로마의 평화)가 안정과 미래를 보장할 줄로 생각하고 생존을 위해 하나님의 주권에서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아시아의 신자들은 로마가 평화를 선사하는 주체가 아니라 땅에 재앙을 몰고 오는 악의 화신임을 기억해야 한다.

다섯째와 여섯째 인(6:9-17)은 하늘의 보상을 받는 순교자들(9-11)과 심판을 받는 일곱 종류의 사람들(12-17)에 초점을 맞춘다. (6)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증언한 이유로 죽은 신자들(순교자들)은 하늘에서 안식하고 있다. 그들이 땅에서 증언한 생애는 하나님께 드려진 희생 제물과 같았기에 하늘의 제단 아래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최후심판을 기다리며, 그때 부활을 경험할 것이다.

(7) 예수의 승천과 재림 사이의 기간은 하늘에서 성도들이 안식하는 기간이고 땅에서는 주를 위해 죽는 종들의 수가 채워지는 기간이다. 이 기간에 땅에 있는 신자들은 하늘이 침묵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탄식할 수도 있다. 땅에 있는 신자들의 고통과 탄식은 하늘의 제단 아래서 언제까지입니까?”라고 묻는 순교자들의 질문을 통해 반영된다. 하나님의 침묵처럼 보이는 승천과 재림의 기간에 하나님은 기도를 듣고 계시고 심판으로 반응하실 준비를 하고 계신다(참고. 8:1, 3-5).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은 성취될 것이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까지는 기간이 있으며, 이 기간은 성도들이 고난과 죽음의 순간까지 견뎌야 하는 인내의 시간이다. 응답이 지연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시간에는 순교자들의 수(quota)가 채워지며 순교자들의 증거는 하나님의 목적, 곧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 된다.”

(8) 위의 내용과 연결되는 것으로, 계시록의 더 넓은 문맥을 고려하면, “언제까지입니까?”의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지상 성도들이 살아가는 이 기간에는 교회의 신실한 증언을 통해 심판의 대상이 될 자들이 회개하게 된다(11:13; 참고. 24:14). 이런 점에서 6:1-8의 네 재앙은 회개로 이끄는 기회다. 그러나 계시록에서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은 심판으로는 회개에 이르기 어렵다(, 16:9, 11). 16:11에 따르면 회개는 악한 행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데, 이런 회개는 11:13에 나타난다. 9:20-21에서 심판만으로는 사람들을 회개로 이끌지 못하지만 삽입 본문(10-11)에서 교회를 상징하는 두 증인의 고난은 회개로 이끈다(11:13).75) 심판의 강도가 제한되고(, 6:9; 8:7-12; 9:18) 최종 심판이 지연되는 과정은 교회가 고난과 희생 가운데 증언하는 기간이며, 이 기간에 하나님은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 인내하신다(, 7:1-17; 10:1-11:13).

부록: 마태복음 24장의 구조

1. 제자들의 질문(24:1-3)

2. 예루살렘의 멸망과 종말의 사건들(24:4-31)

2.1. 세상 끝이 오기 전에 일어날 사건들과 예루살렘의 멸망(24:4-28)

2.1.1. 세상과 관련된 종말의 사건들(4-14)

a) 일반적 사건들(6-8)

b) 교회와 관련된 사건들(9-14)

2.1.2. 끝을 가리키는 표적들(24:15-28)

a) 유대에 일어날 일(24:15-22)

b) 교회와 세상에 일어날 일(24:23-28)

2.2. 세상 끝: 인자의 재림(24:29-31)

3. 재림(파루시아)과 준비(24:32-25:30)

3.1. 그 날에 대해서(24:32-35)

3.2. 알려지지 않은 재림의 시기(24:36-44)

3.2.1. 그 때를 알지 못함(24:36)

3.2.2. 그 때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동과 운명(24:37-41)

3.2.3. 그 때를 알지 못하는 제자들의 태도: 깨어 준비하라(24:42-44)

3.3. 재림의 준비를 위한 세 비유(24:45-25:30)

3.3.1. 신실하고 현명한 종과 악한 종의 비유(24:45-51)

3.3.2. 열 처녀의 비유(25:1-13)

3.3.3. 달란트 비유(25:14-30)

4. 최후 심판(25:31-46)


1) George B. Caird, The Revelation of St. John (London: A & C Black Limited, 1966), 78-79.

2) Caird, The Revelation of St. John, 79. 파르티아인들에 의한 로마의 치욕적인 패배(AD 62), 로마의 대화재(64), 유대전쟁과 예루살렘의 멸망(66-70), 연이어 일어난 지진.

3) Richard Bauckham, The Climax of Prophecy: Studies on the Book of Revelation (Edinburgh: T. & T. Clark, 1993), 10-11.

4) R. H. Charles,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St. John (Edinburgh: T. & T. Clark, 1920), 1:158.

5) 붉은 말을 탄 사람(8), 붉은 말들, 밤색 말들, 흰 말들이 기수 뒤에 있었다(1).

6) 계시록에서 엑세르코마이(ἐξρχομαι)는 어떤 공간에서 밖으로 나오는 또는 나가는 의미에 가깝다. 이 단어가 사용된 본문의 용례는 다음과 같다. 성전에서 나가지 않을 것이다(3:12).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왔다(14:15, 17). 천사가 제단에서 나왔다(14:18). 포도주 틀에서 피가 나왔다(14:20). 천사가 성전에서 나왔다(15:6). 큰 음성이 성전에서 나왔다(16:17). 하늘과 보좌에서 음성이 나왔다(18:4; 19:5). 말 탄 자의 입에서 칼이 나왔다(19:21). 사탄이 무저갱에서 나왔다(20:8).

7) 참고. 강대훈, “하늘 보좌 환상: 요한계시록 4-5장 석의”. 개신논집(2021): 57-111.

8) 15장에서는 네 생명체가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15:7).

9) D. E. Aune, Revelation 6-16 (Dallas: Word, Incorporated, 1998), 393.

10) 에르케스타이(ἔρχεσθαι)오라!” 또는 가라!”로 번역된다.

11) 요한은 묵시자로서 이 광경을 보았지 재앙의 집행자가 아니다.

12) C. R. Koester, Revelation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2014), 394.

13) G. K. Beale, The book of Revelation (Grand Rapids, MI; Eerdmans, 1999), 377.

14) Pieter G. R. de Villiers, “The Role of Composition in the Interpretation of the Rider on the White Horse and the Seven Seals in Revelation,” Hervormde teologiese studies 80 (2004): 125-153.

15) S. K. Tonstad, Revelation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19), 121. 톤스태드는 공관복음의 묵시록에서 전쟁, 기근, 핍박, 우주의 붕괴보다 미혹 또는 속임의 경고가 가장 중요하다고 이해한다.

16) Koester, Revelation, 394.

17) Aune, Revelation 6-16, 394.

18) Koester, Revelation, 394.

19) Koester, Revelation, 394: Plutarch, Crass. 24.5-25.5; Plutarch, Ant. 34.3-5; Tacitus, Ann. 15.1-19.

20) Koester, Revelation, 394: Tacitus, Hist. 1.2; 2.8f; Suet. Nero 57; Sib. Or. 4:119-24, 137-39; 5:137-52; 361-85

21) Collins J. Hemer, The Letters to the Seven Churches of Asia in Their Local Setting (Sheffield: JSOT Press, 1986), 59.

22) Aune, Revelation 6-16, 395.

23) Grant R. Osborne, Revelation: Verse by Verse (Bellingham, WA: Lexham Press, 2016), 124.

24) “내가 온갖 재앙을 그들에게 퍼붓고, 나의 화살을 모조리 그들에게 쏘겠다. 나는 그들을 굶겨서 죽이고, 불같은 더위와 열병으로 죽이고, 짐승의 이빨에 찢겨서 먹히게 하고바깥에서는 칼에 맞아 죽고”(32:23-25 새번역).

25) “내가 너희에게 쏘는 기근의 화살과 재난의 화살 곧 멸망시키는 화살은, 너희를 죽이려고 쏘는 것이다.내가 너희에게 기근과 사나운 짐승들을 보내어너희는 전염병과 유혈사태를 너희 한가운데서 겪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전쟁이 들이닥치게 하겠다. 나 주가 말하였다”(5:16-17 새번역).

26) Aune, Revelation 6-16, 394.

27) Aune, Revelation 6-16, 395. 온의 주장에 따르면 첫 번째 기수는 일차적으로 전쟁을 상징하고 이어지는 세 기수는 전쟁의 정형화된 악(, 기근, 전염병)을 상징한다.

28) Ian Boxall, The Revelation of Saint John (London: Continuum, 2006), 109.

29) https://penelope.uchicago.edu/Thayer/E/Roman/Texts/Augustus/Res_Gestae/2*.html#ref46

30) Sara Bryant, Complete Works of Tacitus (New York: Random House, Inc, rep. 1942).

31) 참고. G. Maier, Die Offenbarung des Johannes: Kapitel 1-11 (Giessen: Brunnen Verlag, 2015), 324.

32) Bruce J. Malina and Richard L. Rohrbaugh, Social-Science Commentary on the Synoptic Gospels (Minneapolis: Fortress, 1992), 62.

33) Ian Paul, Revelation: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London: Inter-Varsity Press, 2018), 146.

34) , 7:13; 11:14; 28:51; 대하 32:28; 5:11; 104:14-15; 31:12; 2:8, 22; 1:10; 2:19; 6:15; 2:12. G. K. Beale and S. M. McDonough, “Revelation,” in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use of the Old Testament, eds. D. A. Carson and G. K. Beale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7), 1103.

35) Bauckham, The Climax of Prophecy, 361-362.

36) Bauckham, The Climax of Prophecy, 362-363

37) 원문은 그들에게이다.

38) Maier, Die Offenbarung des Johannes: Kapitel 111, 326.

39) Paul, Revelation, 146.

40) Maier, Die Offenbarung des Johannes: Kapitel 111, 328; S. S. Smalley, The Revelation to Joh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of the Apocalypse (London: SPCK, 2005), 115.

41) Beale & McDonough, “Revelation,” 1103.

42) 음부에 대한 상세한 논의로는 Philip S. Johnston, Shades of Sheol: Death and Afterlife in the Old Testament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2002), 71-81을 보라. 음부에 대한 존스톤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구약에서 스올은 특정 시기가 아니라 전시대를 걸쳐서 사용된다. 주로 저자 개인의 심정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스올이 죽음을 설명하는 본문에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특이하다. 사형 판결과 같은 법정적인 주제를 다루는 본문이나 주술을 언급하는 본문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스올은 지하세계를 가리킨다. 죽은 자들이 거하는 땅 속 깊은 곳이다. 스올은 하늘의 반대 개념이기도 하다(11:8; 139:8; 7:11; 9:2; 참조. 32:22). 음부는 구더기와 지렁이가 사는 곳이다(14:11). 지하세계의 존재들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기억할 수도, 찬양할 수도 없다(6:6; 38:18; 2:5). 그래서 스올은 망각의 땅으로 불린다(88:12). 이런 점에서, 지하세계는 하나님을 잊은 악인들에게 해당되는 곳이며(9:17; 31:17; 55:15), 의인들이 (하나님의 기억에서 지워지면 안 되므로) 가기를 두려워하는 영역이기도 하다(16:10; 30:3; 49:15; 86:13). 한편, 스올은 하나님께 알려졌고 하나님께서 가실 수 있는 장소로 표현된다(9:2; 139:8; 26:5; 15:11). 스올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할 수 없다(7:11; 11:8). 스올에는 문이 있지만(38:10; 2:6), 갇히면 문이 다시 돌아갈 수 없다(16:22). 스올은 어둠의 장소이며(10:21; 88:6, 12; 참조. 143:3; 3:6; 시락 22:11), 움직임이 없고 조용하다(94:17; 115:17). 스올의 존재는 실재이며, 활동 없이 있다. 움직임을 나타내는 두 본문: 이사야 14:9 이하; 에스겔 32:21.

스올은 다양한 문맥에서 쓰이기 때문에 그 용법을 이해하려면 문맥의 의미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1) 우주의 끝(32:22; 11:8; 139:8; 7:11; 9:2); (2) 지하세계: a. 일반적인 용어(삼상 2:6; 17:13, 16; 26:6; 15:11; 57:9); b. 갇히는 곳(삼하 22:6=18:6; 7:9[14:13; 17:16]; 116:3); c. 지하세계 존재(6:6; 14:11; 38:18); (3) 지하세계: a. 의인화(1:12; 27:20; 30:16; 8:6; 13:14[2]; 2:5); (4) 탈출: a. 스올로 이동(16:10; 30:3; 49:15; 86:13; 2:2); b. 스올을 피함(15:24; 23:14); (5) 운명: a. 모든 사람(89:48; 9:10); b. 의인(37:35; 42:38; 44:29, 31; 14:13; 88:3; 38:10); c. 악인(16:30, 33; 왕상 2:6, 9; 21:13; 24:19; 9:17; 31:17; 49:14(2); 55:15; 141:7; 5:5; 7:27; 9:18; 5:14; 14:11, 15; 28:15, 18; 31:15-17; 32:21, 27). 정리해 보면, 대부분의 경우 스올은 인생의 운명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 특별히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운명! 이 특징은 위의 표에서 보는 것처럼 구약의 모든 장르에서 나타난다.

43) Maier, Die Offenbarung des Johannes: Kapitel 111, 323.

44) Maier, Die Offenbarung des Johannes: Kapitel 111, 329; Smalley, The Revelation to John, 115.

45) Maier, Die Offenbarung des Johannes: Kapitel 111, 329.

46) Beale & McDonough, “Revelation,” 1104.

47) Maier, Die Offenbarung des Johannes: Kapitel 111, 328.

48) 13:10-13; 24:1-6, 19-23; 34:4; 32:6-8; 2:10, 30-31; 3:15-16; 10:8; 2:10, 30-31; 3:15-16; 3:6-11; 참고. 68:7-8; 4:23-28; 8:8-9; 참고. 68:7-8; 4:23-28; 8:8-9; 에녹1102:2-3; 모세의 유언 10:3-6; 에즈라45:4-8. Beale & McDonough, “Revelation,” 1104; Boxall, Revelation, 117; Smalley, The Revelation to John, 166.

49) Paul, Revelation, 149. 물론 순교자들의 죽음에는 예수의 죽음과 달리 대속의 의미는 없다.

50) Boxall, Revelation, 114.

5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6:11). “여호와의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하나이까?”(1:12; 참조. 79:5-10).

52) Beale & McDonough, “Revelation,” 1104.

53) 하나님은 평화를 땅에서 제거하고 나라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반응하신다(1:13-16). 스가랴 6:1-8의 말들은 땅을 두루 다닌 그 말들로서 심판을 집행할 것이다.

54) Boxall, Revelation, 116.. 복솔은 흰옷을 제사장의 의복으로 이해한다(28:4; 29:21; 44:19; 마카베오23:15). “그들이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이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28:4). 그의 견해에 따르면 주를 위하여 죽은 영혼들은 하늘에서 제사장 역할을 한다.

55) Smalley, The Revelation to John, 166.

56) Bauckham, The Climax of Prophecy, 208.

57) Bauckham, The Climax of Prophecy, 206.

58) Bauckham, The Climax of Prophecy, 206-207을 보라. .<시빌의 신탁> 5:438은 바벨론이 지진으로 초토화될 것을 예고한다. 계시록 직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시빌의 신탁> 4권은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의 내용을 담고 있다(107-113, 128-129).

59) Smalley, The Revelation to John, 167.

60) Maier, Die Offenbarung des Johannes: Kapitel 1-11, 337.

61) Koester, Revelation, 402.

62) Koester, Revelation, 402.

63) Beale & McDonough, “Revelation,” 1105.

64) 이 외의 예(12:1-7; 2:19-21; 5:25, 30; 4:23-28; 30:3-4, 18; 8:7-10; 1:4-6)에 대해서는 Beale & McDonough, “Revelation,” 1105을 보라.

65) Beale & McDonough, “Revelation,” 1105.

66) 비일과 맥도나에 따르면 만일 계시록의 이 장면이 최후 심판의 시작에 대한 묘사라면, “이미지 언어에 대한 보다 문자적이해가 선호될 것이다. 또는 대안적으로는 문자적인 최후 심판의 시작에 대한 비유적 장면이다”(Beale & McDonough, “Revelation,” 1105).

67) Beale & McDonough, “Revelation,” 1105. 이런 점에서 우주 붕괴와 관련된 구약의 언어는 역사의 종말에 대한 전조와 같았다.

68) Osborne, Revelation: Verse by Verse, 133. 이들은 곡과 마곡의 멸망을 설명하는 에스겔 38:2-6에 나오는 목록을 인유한다.

69) Osborne, Revelation: Verse by Verse, 133.

70) Beale, Revelation, 400.

71) Osborne, Revelation: Verse by Verse, 134.

72) Caird, The Revelation of St. John, 83.

73) Boxall, Revelation, 112.

74) Bauckham, The Climax of Prophecy, 56.

75) Bauckham, The Climax of Prophecy, 238-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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