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더 가까워진 해입니다

 

정주채 목사(본사 이사장)
정주채 목사(본사 이사장)

2022년 새해입니다. 지난날들을 코로나19로 야단스럽게 지내다 보니 세월이 더욱 빠르게 흐른 것 같습니다. 세상은 늘 요란하고 이상한 일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언제나 소망을 가지고 삽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62:5)

희망이 일반적인 용어라면 소망은 기독교적인 용어입니다. 같은 뜻의 말이지만 우리 크리스천들이 소망이란 말을 주로 쓰는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 때문입니다. 희망이 막연히 뭔가를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라면 소망은 약속을 믿고 바라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언약을 통해 미래를 바라고 믿고 기대하게 하십니다.

시간과 역사를 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순환적인 역사관이고 다른 하나는 직선적인 역사관입니다. 순환적 역사관으로 보면 연대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는 어떤 시점이란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대란 직선적 시간관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기독교는 역사를 직선으로 봅니다. 그리고 이 직선은 창조와 구속과 종말이라는 중요한 시점(카이로스 - 하나님이 정하신 때)들을 갖는 역사입니다.

시간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심으로 함께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강생하실 때 새롭게 되었습니다. 장차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또 다른 차원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시간의 주관자이시며 역사의 통치자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시간 통치를 가시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아주 중요한 예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연대입니다. 현재 모든 나라와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연대를 사용합니다. 우리는 역사의 때를 논할 때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점으로 해서 ADBC로 나눕니다. 아시는 대로 ADAnno Domini After Christ이고 BCBefore Christ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맞이한 새해는 그리스도 탄생 후 2022년입니다.

독일의 역사가 오스카 쿨만은 이것은 우연이 아니며 또한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고대나 혹은 왕정 시대에는 대개 그 나라의 국조나 왕이 즉위한 때를 기년으로 삼아 연대를 계산합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단군을 국조로 생각해서 단기를 사용했습니다. 2022년을 단기로 하면 4355년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나라가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년으로 해서 연대를 계산합니다.

오스카 쿨만은 이것은 우리의 역사가 그리스도 중심의 역사요,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이며 전 인류의 주가 되심을 나타낸다고 하였습니다. 아전인수 격의 해석일까요? 비기독인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구세주로 이 땅에 강생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의 중심이요 생명의 주인이시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그가 모든 생명의 주가 되심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를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였는데 이는 역사의 시작과 끝이 그분의 통치하에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지구촌은 막상 역사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AD 2022년이건만 AD가 무엇인지? 거기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습니다. 새해의 해돋이는 특별하게 여기면서 해를 창조하신 분이실 뿐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인류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여신 그분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합니다.

이것은 바로 2천여 년 전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때의 상황과 매우 흡사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다윗 왕의 동리인 베들레험에서 탄생하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까지 모두 암송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리스도가 탄생했을 때 항상 깨어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시므온과 안나 등 몇 사람 외에는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천하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 호적 하라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명을 따라 베들레헴을 찾았던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은, 호적을 하려고 밀려든 사람들 때문에 여관은 이미 다 차 버렸고 민박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구세주요 만왕의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마구간에서 탄생하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새해를 맞는다고 서로 축하하고 기뻐하는데 막상 이 새해의 주인공은 축제의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올해는 방역 때문에 많은 행사가 취소되었습니다만). 이것은 하나의 큰 아이러니입니다. 새해를 맞는다는 사람들이 새해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역사의 중심이 무엇이며, 이 역사는 어디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새해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더 가까워진 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실 때에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때와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밝혀주지 않으셨지만, 그가 정하신 때에 오실 것이라고 수백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앞으로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연대를 헤아리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바로 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습니다.

2022년은 그리스도의 대망 2022년입니다. 그가 오시면 이제 세상 역사는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역사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그날과 그때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언약의 날이 있고 이때가 있으므로 시간과 역사의 흐름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소망이 없고 기다림이 없는 시간 계산은 별 의미도 없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있으므로 시간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십니다. 그가 떠나시면서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다시 올 것이다. I will come again. I will come soon.” 이 약속의 말씀을 듣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대답했습니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Μαρανα θα.”(고전 16:22)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0)

주님께서 다시 오십니다. 그날은 주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합니다. 악인들은 심판을 당하고 성도들은 영생 복락에 들어갑니다. 이것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이날을 바라보며 연대를 계수하는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지가 벌써 2천 수십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오시지 않는 것을 보면 그것은 믿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이런 의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의 재림을 의심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은 물론 오늘날 우리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8,9)

우리가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을 하나 더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인류가 지나온 2천 수십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그의 아들을 보내신 지 2천 년이요, 지금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의 2천 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베푸신 은혜와 구원의 2천 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 같이 기다리시며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구원받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관심마저 거의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관심은 1, 2차 대전이 끝난 후에 급격히 고조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전쟁이란 비참과 죽음을 겪으면서 인간의 악함과 약함을 처절히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제 강점과 6.25를 겪으면서 재림신앙이 크게 고조되었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시한부 종말론이 득세하여 세상을 소란케 한 일들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재림에 대한 신앙과 소망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어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인류는 한 세대가 지나면서 벌써 지난 역사를 잊고 있습니다. 과학의 발전에 도취하여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생각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미련함은 바닥이 없는 구덩이처럼 깊습니다. 그러나 종말은 누구에게나 있고 최후의 종말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사람들에게 이를 조금이라도 깨닫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으면서 다시 한번 역사의 주인이시오,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의 연대로 세월을 계산하면서도 예수는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새해를 대망한다고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는 하지 않는 미련한 사람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십시다. 깨어 준비하십시다. 그리고 믿음과 소망으로 그의 구원과 영생의 은혜에 참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라나 다. 주 예수님 어서 오시옵소서. 아멘

 

Photo by Zac Duran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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