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헌옥 목사
천헌옥 목사

 

요즘 같은 겨울철엔 330분이면 반드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운동시간이기 때문인데, 빨라야 2시간 더디면 2시간 30분이 걸리기 때문이다. 벌써 530분이나 6시면 어둑어둑해지기 때문이다.

왜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냐 하면 우선은 당뇨가 있어서 운동은 필수적이고 또한 척추협착증으로 수술해 달라고 의사에게 떼를 쓰며 거의 2년 가까이 치료와 회복을 위한 모든 노력을 했을 정도로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비수술이었기에 더욱 힘들었었다.

운동은 만 보 걷기 운동이다. 만 보면 대게 8Km 정도 되는 거리인데 대체로 9Km 정도를 걷는다고 기록에 나온다. 나이가 있고 날마다 해야 하기에 힘들게 할 수 없어서 등산은 못 하고 평지를 걷게 되는데 지루하지 않게 여러 가지 색다른 코스를 지날 수 있게 한다.

그 구간 동안에 전철을 두 개 정도 지나게 되어 있고 그 전철역 앞에 펼쳐지는 난장을 보는 재미가 있기도 하다. 대체로 어디서 가져왔는지는 모르지만 제법 괜찮은 식료품들을 턱없이 싼 값에 팔기 때문에 언제나 손님들로 시끌벅적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큰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도심의 소공원을 네 개 정도 통과하는데 각기 다른 풍경과 꾸밈이 있을 뿐 아니라 숲길로 조성되어 있어서 좋다. 그리고 공원에는 여러 가지 운동기구들이 있어 열 가지 정도의 운동을 하게 된다. 그러면 심심할 틈이 없이 걷기 운동을 마칠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을 기다리게 하는 또 하나의 이벤트가 있는데 그것은 어느 집 개와의 소통 문제이다. 그 개는 나와 눈인사를 한 지가 벌써 5년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처음 그 개를 만났을 때는 자기 집 대문 앞 2층 계단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지나가는 나와 눈이 딱 마주치면서 우리의 줄 달이기는 시작되었다.

나는 어릴 때 강아지를 길러 본 경험이 있는데 혀를 차는 방식으로 강아지를 부르면 대번에 꼬리를 치며 달려오는 강아지가 뇌리에 박혀 있어서 역시 그 개에게도 그대로 적용하여 혀를 차며 그를 불러 보았다. 개가 꼬리를 흔들어 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 개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그는 이빨을 한껏 드러내며 으르릉대며 위협을 주더니 내가 한발 떼니 달려들 듯 계단을 쫓아 내려오면서 짖어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첫 만남은 그랬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다음날 그리고 그다음 날도 역시 개를 불렀고 개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나를 대응하는 것이었다. 그러기를 한 달이나 계속하니 어떻게 하면 짖지만 않게 할까 고민하며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날은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아예 외면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걸어갔더니 이 녀석 그런 나를 알아보았는지 멀리서라도 짖어대는 것이 아닌가? 나를 속이려고? 어림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래서 다음날은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 갔다. 설마 먹을 것을 주는 사람에게도 적대감을 드러낼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그 녀석은 쳐다보지도 않고 짖어대는 것이다. 실패였을까?

간식 효과는 분명 있었다. 그 효과는 다음날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간식을 주지 않았음에도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기만 하였을 뿐 짖지는 않았다. 그것만 해도 반은 성공한 셈이었다. 전날 던져준 간식을 내가 가고 난 다음 먹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5년 동안이나 줄 달이기를 했다.

나는 그것이 재미있었다. 오늘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행여 꼬리라도 한 쳐 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한 번씩 간식을 던져주는데 이제는 손만 주머니 쪽으로 가져가도 벌써 자리에서 일어나 받을 태세를 취한다. 그래도 물론 꼬리는 흔들지 않는다.

한번은 그 녀석이 어디에 정신이 팔렸는지 꼬리를 한껏 흔들고 있었다. 가만 보니 마당에 주인이 있었다. 그러다가 나를 보더니 꼬리 흔들기를 딱 멈추는 것이다. 이런 괘씸한.

그렇게 5년 동안 그 녀석의 꼬리는 한 번도 나를 위해 흔들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그의 경계 대상이었으리라. 그런데 오늘 나는 정말 희한한 광경을 목도하였다. 그 집을 지나면서 눈은 계단 위를 고정하고 있었는데 그 개는 내가 걸어오는 쪽을 향하여 귀를 쭝긋이 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비록 꼬리는 흔들지 않았지만, 녀석은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의 태도는 내심 기다렸다는 것이 아닐까? 과연 개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5년이라는 긴(개에게는 너무나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위해를 가한 적이 없는 사람, 자기를 혀 차는 소리로 불러주는 사람, 가끔 달디 단 간식을 던져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었기에 오늘은 어떤 모습으로 지나갈 것인지가 궁금하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개의 표정도 악의는 없어 보였다.

정말 악의라고는 하나도 없는 분이 계시다. 늘 혀 차는 소리로 불러주시는 분이 계시다. 일용할 양식뿐 아니라 하늘의 만나를 던져주시는 분이 계시다. 사람의 살아가는 일생 동안 한 번도 강요하지 않고 그냥 사랑만 주시는 분이 계시다.

반면에 한 번도 꼬리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도 여전히 그분이 보이기만 하면 그분의 이름을 듣기만 하여도 으르릉대며 짖어대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생각했다. 하나님이 알 수 없는 언어로 우리를 부르실 때 일어서서 마구 꼬리를 흔들어 댄다면 하나님은 어떠하실까?

갑자기 누가복음 15장의 말씀이 떠올랐다. 잃어버린 양을 찾은 목자는 이웃들과 함께 즐거운 잔치를 벌였다. 또한 돌아온 탕자 이야기도 있다. 아버지는 멀리서도 그를 보며 뛰어나가 아들을 맞았고 그를 위해 잔치를 베풀어 주셨다. 그것이 그분의 진심이다.

그러면서 이 찬양을 더듬어냈다. <예수 이름 온 땅에>이다. 우리는 꼬리를 흔들어 대고 하나님은 기뻐서 춤을 추시는 장면이 그려지는 행복한 하루이다.

예수 이름이 온 땅에
온 땅에 퍼져가네
잃어버린 영혼 예수 이름
그 이름 듣고 돌아오네.

예수님 기뻐 노래하시리.
잃어버린 영혼 돌아올 때
예수님 기뻐 춤추시네.
잃어버린 영혼 돌아올 때

예수 이름이 온 땅에
온 땅에 선포되네.
하나님의 나라 열방 중에
열방 중에 임하시네.
 
하나님 기뻐 노래하시리.
열방이 주께 돌아올 때
하나님 기뻐 춤추시네.
열방이 주께 돌아올 때

 

예수 이름이 온땅에 / 도노마리아, 정현식, 이승하 - YouT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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