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태 목사(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이은태 목사(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90년대 초에 뉴질랜드 정부가 이민 문을 연 후로 한국으로부터 이민자들이 몰려왔다그와 더불어 영어연수와 현지 학교 입학을 위해서 초. . 고생들도 대거 들어왔다.

외국에서 공부하면 영어도 빨리 배우고 여러 가지 좋은 점도 있으나 부모의 간섭이 없다 보니 탈선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특별히 사춘기인 10대들은 자칫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신앙 안에서 성공적인 유학 생활을 할 수 있는 영어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그래서 내가 근무하는 영어 학교 오너와 의논해서 탈선할 환경이 적은 로토루아라는 조그만 도시에 학교를 오픈했다.

첫해에 한국에서 약 40여 명의 중. 고생이 들어 왔다. 이들 중 삼 분의 일은 좋은 아이들이고 삼 분의 일은 부모가 이혼 한 결손 가정 아이들이었으며 나머지 삼 분의 일은 학교에서 도저히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 아이들이었다.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했으나 상황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문제가 컸다. 매일 술. 담배는 기본이고 마을 아이들과 패싸움으로 경찰이 하루가 멀다고 출동하고 심지어 구치소에 갇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이 묵고 있는 홈스테이 집에서는 밤마다 전화가 와서 이 괴물들 당장 데리고 나가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더욱 고통스러웠던 것은 문제가 생기면 함께 의논하며 해결해야 할 부모들이 오히려 이곳에서 아이를 망쳐놓았다고 밤낮없이 전화로 삿대질을 해댔다. 심지어 고발하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내 힘으로 이 아이들을 돌본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 밖에 없었다. 3일간 금식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했다.

원래 이 영어연수 프로그램은 6개월간 영어교육을 시킨 후에 현지 학교에 입학시키는 프로그램이었다. 처음에는 큰 꿈을 가지고 시작했으나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내 입에는 이 기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 “제발 학교일 그만하게 해 주세요놀랍게도 내 기도는 응답이 되었다. 6개월 과정이 마칠 무렵 IMF가 터졌다. 더 이상 한국에서 학생이 오지 않았다. 학교는 문을 닫게 되었다. 그 당시 로토루아에서 학교를 시작할 때 거처할 조그만 집을 은행에서 80% 융자를 얻어 마련했다. 학교 문을 닫게 되니 제일 안타까웠던 것은 학교일을 통하여 재정적인 도움을 주려 했던 신학대학이었다.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바로 학교가 문을 닫게 되어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든 신학대학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가진 돈이 없었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집을 처분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IMF로 인해 뉴질랜드 경제도 치명타를 입었고 빈집들이 즐비했다. 집을 팔려고 해도 살 사람이 없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3주 안에 팔릴 것이라는 응답을 받았다. 기도의 응답대로 3주 만에 기적처럼 집이 팔렸다. 은행 빚을 갚고 나니 얼마 남지 않았으나 3개월 치 생활비를 빼고 나머지 돈을 신학대학과 어려운 선교사 한 분에게 보내었다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기는 했으나 얼마라도 신학대학을 지원하고 나니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있었다.

(11:28)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AEC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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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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