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창대(한밭교회 담임목사)
곽창대(한밭교회 담임목사)

'4월' 하면 TS 엘리엇의 시구(詩句)가 자꾸 떠오릅니다. 엘리엇이 1922년에 쓴 433행의 긴 시 <황무지>1<죽은 자의 매장>에서 이렇게 시작합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 겨울은 따뜻했었다 /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렸다

1922년에도 4월이 어김없이 찾아와 대자연이 생기를 발하고 있는데 엘리엇은 겨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4년이 흘렀지만, 유럽의 땅은 여전히 동토와 같았습니다. 회복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두 잔인했던 날들의 잔상에 고통받고 있는 듯했습니다. 자신의 결혼생활도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자신과 유럽인들의 정신적 혼미와 황폐에 가슴앓이하며 쓴 시가 <황무지>입니다.

2년 넘게 코로나로 전 세계의 백성들이 염려와 두려움을 안고 살았습니다. 의료 전문가들이 4월 말이면 마스크를 벗고 다닐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고 하니 살짝 희망이 생깁니다. 이전처럼 보고 싶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나 담소하고 식사하고 여행도 같이 가는 그런 날이 오기를 우리 모두는 희망합니다. 그래야 4월다운 4월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4월다운 4월을 맞으려면 세월을 마냥 염려와 두려움으로 지내다가 그저 찾아오는 자유의 날을 맞는 것이 아니라 엘리엇처럼 더 깊이 고뇌하고 탄식하는 시간을 보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들의 탐욕과 방종으로 인한 만물의 고통과 탄식을 깊이 느끼고 아파하며, 전염병과 전쟁과 기아와 같은 인류와 세상의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우리들의 한계를 절감하고 탄식하는 시간을 제대로 보내야 하리라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부활절 전에 사순절과 고난주간이 4월에 있다는 것이 큰 축복입니다. 이제 사순절의 막바지입니다. 두 주 남았습니다. 다음 주일(10)이 종려주일이고 고난주간(11~16)이 이어집니다. 417일이 부활절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기독교 최대의 명절에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주신 예수님께 매료되어야겠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겠다고 다시 겸허하게 다짐하고 또 다짐해야겠습니다. 교만과 탐욕을 버리고 예수님의 삶을 본받고자 몸부림쳐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4월다운 4월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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