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대 국제문화 선교학과 이병수 명예교수
고신대 국제문화 선교학과 이병수 명예교수

417일 주일은 부활주일입니다. 410일이 종려주일 및 고난 주일입니다. 고난 주간의 마지막 주일 예수님께서 죄와 사단과 사망의 권세를 부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부활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삶에 주는 현재적 의미도 있습니다. 필자는 오늘 그 부활의 현재적 의미를 몇 명의 학자들을 통해 두 가지 차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부활에는 정치적(political) 차원이 있습니다. 영국의 신약학자 톰 라이트(N. T. Wright)그리스도가 다시 사셨다는 메시지가 과거에도 그랬고 여전히 현재에도 정치적인 다이너마이트”(political dynamite)라고 주장함으로써 이목을 끈 바 있습니다. 부활한 예수님이 주님이라는(고전 12:3, 20:28) 이 선언은 세상의 정사와 권세들의 정당성을 의문시합니다. 만약 그리스도가 세상을 다스리는 부활한 주님이라면 죄와 죽음의 압제뿐 아니라 예수님 당시 로마 황제와 제국의 포악한 주장과 폭력적 체제도 당연히 그 정당성을 잃고 전복되게 됩니다.

남미 신학자 존 소브리노(Jon Sobrino)도 그리스도의 부활이 지닌 정치적 차원을 강조합니다. 소브리노는 부활 메시지를 모든 불의와 폭력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 선포로, 역사의 모든 희생자에게 새롭고도 영속적인 소망을 주는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그에 따르면 역사 속에서 십자가에 달렸던 모든 사람들의 고난과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예수의 부활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배경을 제공한다고 주장합니다. 소브리노는 가장 초기의 부활 이야기에서 부활한 예수가 발견된 곳이 갈릴리였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갈릴리는 가난하고 멸시받는 자들이 사는 곳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역사 속의 갈릴리와 같은 곳에서 사역할 때 부활한 예수를 만날 것입니다. 이 모든 사항은 소브리노에게 매우 실천적인 의미를 환기시킵니다. 십자가에 달리고 부활한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죄와 악과 불의에 대한 투쟁과 갈등을 초래합니다. 죽은 자들로부터 예수를 일으키신 생명의 하나님은 죽음의 우상들에 대적하며, 따라서 그의 제자들도 또한 그렇게 해야 마땅하게 살 것을 촉구합니다,

부활 메시지는 무력을 사용하라는 부름이 아니라 모든 불의와 폭력에 영구적으로 저항하라는 부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사실 뗄 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리적 사건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희생자와 함께 하는 하나님의 연대성을 표시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의 효력을 표현합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십자가는 더 이상 무력한 사랑의 표출이 아니며, 부활은 사랑 없는 힘의 표출이 아닙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부활에는 우주적(cosmic) 차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우주적 차원을 또한 그리스도 부활의 종말론적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이 썼듯,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의 시작,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임박한 여명을 처음으로 알리는 광채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도래하는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의 표지이고 약속이며 시작입니다. 특별히 몰트만의 부활 신학은 이 부활이 포함하는 우주적 범위를 강조합니다. 그에 따르면, 적어도 서구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너무나 협소하게, 다만 인간의 미래에 소망을 제시하는 정도로 간주되었습니다. 부활 메시지가 이런 인간적 차원을 포함함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기대하고 시작하는 새로운 세계는 우리 인간의 운명으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개별적 인간과 공동체를 위한 소망뿐만 아니라, 구속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며 신음하는 온 우주 전체를 위한 소망을 의미합니다(8:18-25). 그리스도는 죄인과 연대할 뿐만 아니라 폭력을 당하는 모든 인간과 연대하면서 죽으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죽음의 통치에 사로잡혀 있는 모든 살아 있는 피조물들과의 연대 속에서 죽으셨습니다. 따라서 올바르게 이해하자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도래하는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의 첫 열매이며, 온 창조세계를 위해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생명의 도래를 시작하는 사건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 역사에 군림하는 폭력적인 죽음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동시에, 현재 모든 생명이 굴복하고 있는 비극적 죽음에 대해서도 승리하실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종합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선포는 복음이며 참으로 기쁜 소식입니다.

오늘 우리는 국내·외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화와 미국 대선과 한국 대선 이후 정치적 양극화, 전 세계적 경제적 양극화 그리고 코로나19 및 기후 위기와 생태학적 전 지구적 위기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영적 구원만 아니라 정치 및 경제의 불의와 악, 그리고 창조 세계의 신음의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복음이며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한국교회가 부활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파할 뿐 아니라 이런 부활의 현재적 의미를 인식하여 정치, 경제 및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앞장서고 이것을 실천하는 교회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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