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 민족이 되고 말았다. BC721년에 앗수리아 제국에 패망하여 대부분의 귀족들이 포로로 잡혀갔다. 그들의 대부분은 귀족계급, 직능계급, 지식계급, 정치가 등 혁명의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을 모두 포로로 잡혀 갔기 때문에 민족의 재기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의 유능한 인재들이 포로로 잡혀가서 앗수리아의 한적한 곳으로 강제 분산시키었다. 추방당한 이스라엘 벡성 중에는 도망자도 있었고, 앗수리아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집단 이동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앗수리아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민족이 그대로 그 땅에 머물지 않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방을 감추고 말았다.

또한 BC586년에는 남아있던 유다나라가 바벨론에 패망하여 모든 귀족들과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다.

이들은 70년 후에 다시 자유를 얻어 본토로 귀국하게 되었는데 42천명이 귀환하여 제2의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다. 이때에 귀국한 사람들은 유다의 2지파(유다지파, 베냐민 지파) 뿐이었고 나머지 10지파는 역사 속에 사라지고 말았다. 앗수리아에 잡혀간 10지파의 종족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아직도 숨겨진 베일 속에 쌓여 있다. 오늘날까지 그들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지만 그들의 행방은 모연하다고 한다.

아마도 포로로 잡혀간 그들은 강제적으로 개종을 강요당하는 일이 없는 땅, 학살이 없는 거주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곳, 지상의 낙원을 찾아서 세계 각 지역을 찾아 유랑한 디아스포라 민족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지상의 낙원을 찾아서 대 모험의 여행을 감행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유대인들은 앗수리아와 바벨론에 패망한 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평화로운 지역을 찾아서 점점 더 먼 나라에까지 여행을 감행했을 것이다.

그들은 아시아의 깊은 곳으로 찾아 들어갈수록 사람들의 마음이 관용하고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같은 기독교인들은 서로 사랑하지만 이교도에 대해서는 냉정하고 미워하여 배척할 뿐만 아니라 박해를 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인도의 힌두교는 유대인에 대하여 어떤 박해도 가하지 않았다. 실크로드에 따라 동으로 가면 갈수록 관용도가 높았고, 평화로운 땅이 많았고, 우호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비유대인으로서 크리스챤이었던 스코트란드 상인 마구레오드(N. Mcleod)는 명치유신의 초기에 요코하마에 내일한 후 일본역사를 조사 연구했다.

그는 일본고대사를 연구한 후에 일본 고대사의 축소판이란 귀한 책을 출판하였다. 그는 일본 각지에서 행하는 제식(祭式)을 조사하고 생활풍속, 식물, 의복, 그 외 여러 가지 전통적인 행사에 대하여 조사하였다.

그는 동양의 많은 나라가운데 일본인만 갖고 있는 독특한 문화와 행동양식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2500년 전 유대인의 12지파가운데 10지파가 동방 세계에 추방되어 흩어져 버렸는데 그 종적을 알 수 없었지만 일본인들의 문화와 생활양식 속에서 유대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중요한 발견은 실크로드의 발생지인 유대와 실트로드의 제일 마지막 땅 일본에서만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중간지역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중근동지방이나 중앙아시아 지방에서는 유대적인 공통점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일본인은 유대의 잃어버린 10지파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믿었고, 또한 유대인의 순수한 혈통이 일본인들 속에 흐르고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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