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헌옥 목사
천헌옥 목사

 

[1]
한 눈은 외눈이다. 외눈은 하나만 알고 한쪽만 고집하는 편견이다. 그런 편견을 가진 사람을 사시(斜視)로 본다고 말한다. 육신적으로 한눈은 외눈이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편견이지만은 않다. 그러나 두 눈을 가지고서도 한쪽만을 본다면 편견이라 할 것이다.

평생 시골을 벗어나 보지 못한 노부부가 있었다. 서울 가면 눈뜨고 있는데도 코 베어 간다고 하는 말을 명심하고 살았다. 서울이 살벌한 곳이라는 것쯤은 안다는 것이다. 그의 딸이 서울로 시집을 갔다. 그러나 코 베어 가는 서울이 싫어서 딸의 집에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딸이 죽기 전에 한 번만 오시라는 간청에 못 이겨 노부부는 서울을 다녀오기로 했다. 마음만 단단히 먹으면 절대 속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결심한 것이다. 그런데 시골의 가축 등 여러 사정이 있는지라 한 사람씩 다녀오기로 하고 먼저 할아버지가 기차를 탔다.

서울역에 내려 불광동까지 택시를 탔다. 요금이 만 원 나왔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오천 원을 운전사에게 내미는 게 아닌가?

"할아버지 만원인데요."
"이놈아 누굴 속이려고?"
"아니요 할아버지 여기 미터기에 만 원 나왔어요."
"이놈아 경찰 부르기 전에 받아 가."
"여기 만 원 나왔잖아요?"
운전사가 기가 막혀서 소리쳤다.
그러자 할아버지 하시는 말씀
"이놈아 택시 나만 타고 왔냐? 너하고 둘이 타고 왔잖아?"

이 할아버지는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자기중심으로 생각한 것이 정답이고 진리라고 우기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렇게 할아버지가 서울을 다녀가고 이번엔 할머니가 서울에 왔다. 그런데 할머니는 더욱더 가관이다. 역시 택시 요금이 만원이 나오자 할머니는 8,600원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 만원인데요."
"뭐라고? 누굴 속이려고?"
"여기 미터기에 만 원 나왔잖아요?"
"내가 그거 딱 꺾을 때 1,400원으로 시작하는 거 봤어! 왜 그래"

세상을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한쪽 면만을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한눈으로는 길을 똑바로 걸어가기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이제 막 시작한 윤석열 정부에 대해 말들이 많다. 통령실 주요 보직, 금융당국 인사 중 검사(검찰 수사관 포함) 출신이 무려 15명이나 되었다. 벌써 검찰 공화국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상황이 된 것이다. 모든 언론이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볼멘소리가 터지고 있다.

자신은 능력자를 세웠으니 공정한 인사라고 강변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도 너무 한쪽만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한쪽 눈으로만 보지 말고 다른 쪽을 보는 눈도 열어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정치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2]
두 눈은 양 눈을 말한다. 육신적으로 두 눈은 정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신적 두 눈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생각하는 두 눈을 뜻하는 말이다. 그것은 적어도 내 입장만이 아니라 타인의 입장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너와 내가 어우러져 사는 세상이다. 어우러지는 곳에 자유와 평안이 있다. 어우러지기 위해서는 양 눈으로 보아야 한다. 부부지간에도, 부자지간에도, 사제지간에도, 이웃지간에도 항상 나의 입장이 아니라 너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사는 동네가 행복한 동네이다.


[3]
그런데 나 자신이 실망치 않고 성공적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양 눈만으로는 부족하다. 사 눈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사는 가 아니라 를 말한다. 사눈(四目)은 적어도 모든 사건을 사면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눈(四目)
첫째, 나를 볼 수 있는 눈이고(네 자신을 알라)
둘째, 이웃을 볼 수 있는 눈이고(네 이웃을 사랑하라)
셋째, 자연을 볼 수 있는 눈이고
넷째, 영적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이다.

또한 사각적 눈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은
첫째, 지금의 불행이 불행으로 끝날 수 있다는 것
둘째, 그러나 지금의 불행이 나중엔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것.
셋째, 지금의 행복이 행복으로 끝날 수 있다는 것.
넷째, 그러나 지금의 행복이 나중엔 불행이 될 수 있다는 것.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역대의 정치인들, 연예인들, 재벌들을 살펴보면 그렇게 분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지금의 불행으로 슬퍼하고 낙담하지 말아야 한다.

그 뒷면에 숨어 있는 행복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지금 행복을 기뻐하여 너무 빨리 축포를 터트려서는 안 된다. 행복 뒤에 도사리고 있는 불행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거기에 더 얹어 영적인 사람은 영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역사 속에 있기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하나님이 꾸려가시는 역사에 순응하는 그리고 대비하는 자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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