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승호 선교사/ KPM이주민지역부 & OMF DRM 협력선교사, 울산경남세계선교협의회(UGWMA) 사무총장
손승호 선교사/ KPM이주민지역부 & OMF DRM 협력선교사, 울산경남세계선교협의회(UGWMA) 사무총장

202224~34일까지 한 달간 일정으로 코로나 기간 중이지만 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방문의 주목적은 태국 전역-중부(방콕), 남부(수랏타니), 동북부(콘깬), 북부(치앙마이)-을 돌면서 태국 내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 선교사들을 지역별로 모아 신학 세미나를 인도하기 위함이었다. 세미나의 내용은 불교 이해와 어떻게 상좌부불교권에 있는 영혼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인지를 나누는 것이었다.

2년 이상 진행된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얼마나 많이 바꾸어놓았던지 혹자는 역사의 중심을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나누었던 BCAD의 의미를 ‘Before Corona’‘After Disease’로 빗대어 표현하기도 한다. 코로나로 인한 국내 목회 환경의 변화는 말할 것도 없고 해외선교 환경도 급변하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해외선교는 코로나로 인하여 강제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당한 것이다.

선교학 교과서에 선교 이양의 단계를 영어의 머리글자를 따서 4P라고 한다. 4P는 개척자(Pioneer)단계, 부모(Parent)단계, 동역자(Partner)단계, 참여자(Participant)단계이다. 모든 선교사는 자신이 끝까지 선교사역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 지도자를 동역자로 세우고 마지막은 현지인 지도자를 참여자로 인정하여 모든 것을 맡기고 또 다른 사역지를 개척하는 것을 선교사역의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선교지 현실은 제3단계인 동역자 단계에 도달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런데 코로나는 선교사가 현지인 동역자 준비의 유무에 관계없이 선교 이양의 마지막 단계인 참여자 단계로 강제적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도록 작용한 면이 있다. 코로나가 선교 지형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앞당기기 위하여 그렇게 역사하신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선교사는 나이가 많아 은퇴할 때만 선교지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미처 예상하지 못한 위기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선교지를 떠날 수도 있다는 교훈을 코로나를 통하여 얻은 교훈이다. 선교사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비자발적으로 선교지를 철수해야만 하는 것은 비자가 거부된 이슬람권이나 중국 같은 공산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 팬데믹이 닥치면 세계의 모든 선교지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선교사가 떠나도 선교지에 남는 사람은 당연히 현지인이다. 코로나를 통하여 한국 선교사는 선교사가 평소에 현지인 리더십을 세우지 않고 독불장군식으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식으로 선교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재생산하는 교회를 세우려면 교회 개척할 때부터 재생산을 목표로 해야 하듯이 선교사는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현지인에게 이양하고 떠날 출구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 사실은 필자가 코로나 기간 1개월간 태국을 방문하여 현지인 제자들을 만나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태국 주재 한국 선교사들을 위한 신학 세미나를 인도하는 중간에 5일 동안 태국과 말레이시아 국경에 인접한 3개의 짱왓(에 해당)인 얄라, 빠따니 그리고 나라티왓에서 제자들의 사역지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지역의 면적은 10,936로 남한의 1/10에 해당하며 인구는 약 180만 명이다. 전체 교회 수는 18개이며 교인 수는 400명 정도에 이른다. 이 숫자에 태국 북쪽에서 짱왓 얄라로 이주하여 노동하는 라후족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100명 넘는 라후교회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 지역 크리스천의 비율은 0.02%에 해당하는데 인구 약 5,000명당 한 명인 셈이다. 숫자를 놓고 보면 무슬림이 다수인 이 지역의 크리스천은 한 줌도 되지 않을 만큼 소수에 해당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필자가 태국의 다른 지방에서 만났던 크리스천들과는 믿음의 결이 달랐다는 것이다. 태국 선교사의 일반적인 고민은 현지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을 내놓고 예수를 믿는 경우를 잘 볼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런데 태국남부는 달랐다. 무슬림 분리주의자들의 잦은 폭동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의 위협을 늘 경험하는 가운데 죽음이 눈앞에 다가와도 예수를 부인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의가 있었다. 원래 태국 남부는 OMF가 오랫동안 중점적으로 사역해왔지만 많은 열매를 거둘 수가 없었다. 현재 이 지역에 사양 선교사들은 거주할 수 없고 태국 최남단에서 제법 떨어진 나콘시탐마랏 등 후방에 거주하며 최전방에는 현지인 리더십이 거주하며 사역하고 있다.

필자의 제자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18년째 얄라에 위치한 OMF ACT 센터(2,000평 규모)를 책임지며 3개의 교회를 돌아보고 있다. 6~7년 전에 무슬림 남자 3명이 각자 권총을 차고 죽이기 위해 제자를 찾아왔다. 제자는 한 명의 무슬림 복장을 한 남자와 마주 앉고 나머지 2명은 제자 뒤에 서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지켰다. 두려운 상황 가운데 제자는 그들과 대화하기 전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였다. ‘성령님, 지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르쳐주세요.’ 비록 제자가 눈을 감고 소리를 내어 기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대화가 시작되었다. 무슬림 남자가 묻기를 당신은 태국인인데 왜 서양 종교인 기독교를 믿는가?”라고 질문했다. 제자는 총을 들고 자기를 죽이려는 그 세 무슬림들 앞에서 담담하게 간증을 나누었다. “나는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기 위하여 불교에 귀의하여 승려가 되어 착하게 살려고 노력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승려가 되어도 술, 노름, 마약 등 악한 습관을 도무지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아주머니가 예수를 믿으면 인생이 변화를 받을 수 있다고 하여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나가 당신들이 선지자 중 하나라고 믿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고 나는 모든 악한 습관을 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첫 조상은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씀하는데 우리 모두는 종교가 달라도 사실은 한 부모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원수가 아니라 형제요 자매입니다.” 우리는 원수가 아니라 한 형제요 자매라는 말에 무슬림 남자들은 긴장을 풀고 장시간 대화하며 그리스도인은 자신들의 적이 아니라 친구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손 선교사 제자 파노몬 목사 부부
손 선교사 제자 파노몬 목사 부부

제자의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제자는 조금 후에 무슬림의 손에 죽더라도 예수님 이야기는 하고 죽어야겠다는 작정을 단단히 한 것이었다. 나보다 믿음이 더 강한 제자의 말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맞아. 선교사는 때가 되면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 하는데 결국은 현지인들에 의하여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는 것이야! 선교사가 괜히 주도권을 잡고 현지인을 영적 어린아이 취급하며 한 장소에 끝까지 눌러앉아야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하는 것이다.”는 마음을 다시 한번 가지게 되었다.

그 제자는 나이 61세가 된 파노몬인데 그는 나에게 어떻게 주위의 무슬림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었는지 자신의 간증을 나누었다. 파노몬이 얄라 OMF ACT센터에 도착했을 때 현지인들이 건물의 창문, 집기 등 쓸 만한 모든 것들은 다 가져가 버리고 폐허가 된 상태였다.

제자는 처음부터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자기를 소개하였다. “저는 이 센터를 책임지는 목사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과일 등을 동네 사람들과 나누어 먹고 이웃과의 관계를 소홀하지 않게 한 결과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저 사람은 기독교 목사이지만 좋은 사람이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센터의 모든 물건들을 훔쳐 갔던 이웃들이 이제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소를 먹이는 이웃에게는 센터 내의 잔디밭에 소를 먹일 수 있도록 친절을 베풀었고 며칠씩 먼 출장을 가면 이웃에게 먼저 알리고 그들 스스로가 외부인들로부터 센터를 지켜주는 단계로까지 관계가 발전하였다. 태국 남부는 언제 폭발물이 터지고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내하며 이웃과 친밀한 관계에 성공한 현지인들만이 그런 형편 가운데서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남아 하나님나라를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선교사가 아무리 잘 준비되고 우수한 실력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코로나를 비롯한 비상 상황이나 생명의 위험이 있는 곳에서는 선교사역이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잘 준비된 현지인 지도자는 꿋꿋하게 남아 계속하여 하나님니라를 확장해갈 수 있다.

얄라 ACT센터
얄라 ACT센터

코로나 기간 동안 태국 남부의 3개 짱왓을 다니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약 하나님께서 다시 필자를 태국 선교지로 부르셔서 사역을 하게 하신다면 옛날 젊었을 때처럼 앞에서 일방적으로 뛰지 않고 현지인을 뒤에서 최대한 돕고 몇 명이라도 현지인 지도자들에게 성경 전체를 차근차근 깊이 가르쳐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워 그들이 전면에 나서서 자기 백성들에게 복음을 더 잘 전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선교사에게 가져다준 선물 중 하나는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선교는 선교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이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것이다. 필자는 늦기 전에 한 명의 제자라도 더 세워 선교 현지를 든든히 지키며 계속하여 하나님나라를 세워갈 수 있도록 하는 일에 힘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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