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헌옥 목사
천헌옥 목사

아내는 재래시장을 좋아한다. 구경거리도 많고 싸고 질 좋은 식료품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아내로서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재래시장을 갔다 오는 날은 꼭 검은 봉지 하나를 들고 온다. 그 검은 봉지 안에는 반드시 통닭이 들어 있다. 우리는 통닭을 나눠 먹으면서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옛날을 추억한다.

나의 둘째 아들은 창녕에서 태어났다. 교회당을 짓는 과정에 우선 사택 쪽만 마무리하였는데 그래서 한 동네에서 세 번이나 이사해야 했던 것을 끝낼 수 있었다. 교회당은 아직 가마니를 깔고 사과 상자를 강대상 삼아 예배를 드리는 형편이었다.

어느 날 찾아온 천사의 기도 덕분에 신대원 입학금은 마련할 수 있었지만 먹고 사는 문제는 늘 굶어 죽지 않을 만큼 달랑달랑하였다. 아내는 둘째를 출산하고 몸조리도 다 하지 못한 채 남편이 학교에 가고 없는 교회당에 혼자 새벽기도를 하였는데 그래도 명색이 교회당인데 새벽에는 불은 켜야 한다는 레위인의 의무감 때문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인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누가 왔나 싶어 둘러보니 다람쥐 한 마리가 들어와 마구 뛰어다니고 있더란다. 출산을 하고 음식이 마구 당기는 때인지라 다람쥐가 마치 통닭처럼 보이더라는 것이다. 잡아야겠다는 마음에 들어온 구멍을 잽싸게 가마니로 막고 다람쥐를 쫓았다고 한다. 그러나 다람쥐가 얼마나 빠른지를 몰랐던 아내는 교회당 안을 몇 바퀴나 돌고 난 뒤 어느새 사라져 버린 다람쥐를 무척이나 아쉬워하며 사택으로 돌아왔는데 아침에 격한 운동을 하여 배만 더 고프더라는 것이다.

하루 종일 다람쥐가 눈앞을 뱅뱅 돌면서 통닭을 놓쳤다는 아쉬움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려 나가보니 새로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교인이 진짜 통닭을 사 들고 왔더라는 것이다. 마침 그날은 금요일이어서 내가 집에 오는 날이었다.

아내는 먹고 싶은 통닭 냄새만 맡으면서 남편이 오면 사다 주신 분을 위해 기도하고 먹자고 기다렸다고 한다. 이윽고 내가 집에 도착하자 정말 기쁜 마음으로 통닭을 내놓으면서 얼마나 기뻐하는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우리는 공평하게 반으로 나눠서 먹기 시작했는데 눈 깜짝할 새 통닭은 사라져 버리고 뼈다귀만 쌓여 있었다. 손으로 뜯어 먹었기에 손가락에 발려진 기름을 핥으면서 내 눈은 아직도 살점이 붙어있는 뼈다귀에 눈길이 쏠렸다. 그리곤 아내에게 부끄러운 제안을 했다.

저 뼈다귀를 푹 삶아서 국물로 먹으면 안 될까?” 저녁 반찬을 걱정하던 아내는 말없이 뼈다귀를 들고 나가 냄비에 물을 가득 붓고 끓이기 시작했다. 뼈가 물렁해 질 때까지 삶았더니 제법 뽀얀 국물이 되었고 거기다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파를 송송 썰어 넣으니 냄새까지 근사하였다.

거기다 밥을 말아 먹으니 한 끼 식사는 거뜬히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저녁을 먹은 후 아내는 그날 아침에 일어났던 무용담을 이야기하면서 통닭을 먹고 싶어 하는 것을 아신 하나님이 진짜로 통닭을 선물로 주신 것이라며 감사하는 것이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통닭을 먹을 때마다 그때 일을 추억하며 서로가 의미 있는 웃음을 웃게 되었다. 물론 뼈다귀를 삶는 일은 하지 않는다. 통닭의 추억은 한편으로는 부끄러워 감추고 싶은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서로에게 행복의 끈을 이어주는 소중한 추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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