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참으로 아쉬운 이별을 하였다. 그러나 더 좋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면 좋지 않겠냐며 스스로 위로를 하면서 아쉬운 마음 구석을 채운다. 다름 아닌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최초로 그린 최후의 만찬을 그린 그림을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최후의 만찬은 나와 30여 년을 함께 하였다. 많은 이사를 하는 가운데서도 흠집 하나 없이 고이 간직하였고 나에게 많은 위로를 주었다. 물론 그림에서 주는 위로도 있었지만, 그것을 손수 그려서 선물해 준 그 화가 성도를 기억하면서 받는 위로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가로가 230cm 세로가 130cm의 대형 그림이었다. 그것을 아주 근사한 액자에 넣어서 가져왔다. “목사님 너무 감사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을 드립니다.”
가로가 230cm 세로가 130cm의 대형 그림이었다. 그것을 아주 근사한 액자에 넣어서 가져왔다. “목사님 너무 감사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을 드립니다.”

30여 년 전 인천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하였을 때 아내를 통하여 전도를 받은 한 가정이 교회에 등록하였다. 새신자 가정이었는데 너무나도 순종적인 분들이었다. 가르치는 대로 살려고 애쓰는 분들이었다.

부부가 동인천 지하상가에서 일한다고 하여서 심방을 갔다. 남편은 조그마한 가게에서 화방을 하고 있었고 아내는 그 곁에서 포장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선물을 예쁘게 포장해 주는 일이었는데 꽤나 바빠 보였다. 상가 특성상 그리고 하는 일이 주일 교회에 출석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울 듯 보였지만 그들은 주일예배만은 빠지지 않았다.

바쁘게 사는 그들을 지켜보던 나는 남편에게 이제 기도할 터이니 바라는 것이 있는가?”고 물었다. “목사님 제 가게가 겨우 반 평인데 딱 한 평만 되었으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하는 것이다. 나는 바쁜 중에도 기도하자고 하고는 진심어린 기도를 드렸다. 기도의 중요한 내용은 반 평을 한 평으로 늘려 주십시오.”였다.

그리고는 일 년이 지났을까 어느 한 날에 그는 커다란 그림을 싣고 사택을 찾아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그림이었다. 가로가 230cm 세로가 130cm의 대형 그림이었다. 그것을 아주 근사한 액자에 넣어서 가져왔다. “목사님 너무 감사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을 드립니다.”

선물이었다. 그가 이 대형 그림을 선물한 것은 내가 반 평이, 한 평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이 응답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목사님이 기도해 주셨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지났는데 정말 꿈이라고만 생각했던 한 평의 가게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이뤄주셨다는 것보다는 그렇게 기도해 준 목사가 너무 고마워서 무엇으로 보답할까 하다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자고 결심하였다고 한다.

가게가 직사각형으로 되었는데, 가게 길이만큼 화폭을 정하였다고 한다. 그리는 데만 꼬박 열흘이 걸렸다면서 목사님의 평생, 아니 그 이후라도 변하지 않는 물감을 골랐는데 수입산 물감을 사용하였고 액자 역시 가장 고급으로 해서 제작하였다.”고 했다.

그런 그의 정성을 받았기에 그림을 볼 때마다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그림이 내게 온 지 얼마 후 그 가게가 불이 났다. 몰려오는 손님들로 인하여 불이 난 것이다. 그는 가게를 늘려나가기 시작하여 그 주변의 가게들을 거의 다 인수하는 기적을 이루어냈다.

몇 년이 지나 나는 부산으로 교회를 옮기게 되었다. 이들 부부는 눈물을 글썽이며 목사님도 전근을 갑니까? 누가 가라고 하나요?”라며 항의하듯 따져 물었다. “사람이 가라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가는 겁니다.” 그렇게 겨우 그들을 달랬다. 그의 연세 많은 어머니는 목사님 어디 계시더라도 내가 죽었다는 부고를 들으면 오셔서 제 시신은 목사님이 꼭 수습해 주세요.”라며 부탁할 정도였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어느 날 부산에 있는 나에게 이들 부부가 불쑥 찾아왔다. 캠핑카를 몰고 왔다. 그들은 내가 보고 싶어서 이점 저점 핑곗거리를 만들어 온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거실에서 자기가 그린 그림을 한참이나 보더니 목사님 이 그림을 이렇게 소중히 간직할 줄 알았더라면 더 꼼꼼히 정성을 다해 그렸어야 했는데 그때는 제가 먹고사느라 바빠서 이 정도밖에 안 되어서 죄송합니다.”하는 것이다.

우리가 볼 때는 아무 흠 잡을 데가 없어 보이지만 전문가가 볼 때는 부족함이 보였는가 보다. 그러나 우리는 그림의 완성도나 전문성, 가치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림을 그린 사람의 정성과 인품, 신앙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를 그토록 사랑한 것은 이미 그에게 주신 축복으로 증명되었다고 할 것이다.

참빛교회 안동철 담임목사와 함께
참빛교회 안동철 담임목사와 함께

그런 깊은 역사를 지닌 그림이 30년 동안이나 내 곁에 있었지만 이제 떠난다. 집을 이사하면서 그림을 떠나보내기로 아내와 의논했다. 어디로 보내야 오랫동안 잘 간수할 수 있을까? 그런 주제로 의논하며 기도하다가 마침 안동철 목사가 담임하는 부천 참빛교회로 보내자고 결정을 하였다.

안 목사님도 기뻐하며 흔쾌히 받아 주셨다. 그림은 당회실에 걸렸다. 나와는 30년을 같이 해 온 그림인지라 참으로 아쉬운 작별이지만 더 좋은 곳에 걸려서 그림이 가치를 발휘하는 것 같아 위로를 받았다. 아듀(adieu) 나의 30년 지기여! 이제 더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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