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고신사회복지위원회 전문위원장 고명길 목사
전) 고신사회복지위원회 전문위원장 고명길 목사

지금까지 복음병원 설립자는 장기려 박사로 알려져 왔다. 때로는 한 상동 목사가 설립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실제 복음병원 설립자는 전영창 선생이다. 몇 년 전 고신총회 사회복지위원회가 고신사회복지역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복음병원의 역사가 상당 부분 왜곡된 사실들을 확인하고 2015년 고신사회복지 포럼 및 세미나(경주 코오롱호텔)에서 복음병원 설립자는 장기려도 한상동도 아닌 전영창임을 발표하고 그동안 교단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이번 고신총회에 복음병원 역사 수정 건이 상정된 상태다.

그런데 최근 나 삼진 목사가 복음병원 설립자 3인 설을 주장했다. 그는 기독교보 '고신교회 70년 역사 산책'에서 복음병원 설립자가 누구인가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려는 고명길 목사의 시도가 있지만, 병원의 설립은 전영창 선생의 자본, 한상동 목사의 신앙, 장기려 박사의 의술이 하나가 된 것이라 보는 것이 정확하다.”(2022. 2. 23)고 했다.

물론 나 삼진 목사의 이런 주장이 고신 초기 한 상동 목사의 위상과 역할을 고려한 정치적 수사일거라 생각은 하면서도 또 다른 역사 왜곡이 될 수 있어 이에 대한 반론을 준비했다.

좌로부터 전영창 선생, 한 상동 목사, 장기려 박사
좌로부터 전영창 선생, 한 상동 목사, 장기려 박사

나삼진 목사의 복음병원 설립자(전영창, 한상동, 장기려) 3인 설은 사실일까?

1. 의료법상 병원설립 3인 설은 불가하다.

대한민국 의료법 제 33조에 의하면 의료기관은 의사 또는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의료법인, 비영리법인만이 설립할 수 있다. 즉 의료기관(병원)설립 주체는 의사 또는 법인뿐이다. 비의료인인 일반인은 병원을 설립하거나 운영할 수 없다. 여러 사람이 병원설립에 협조하고 조력해도 설립자는 의사 또는 법인대표 1명으로 한정한다.

전영창은 미국 유학 중 귀국 시 이미 미국의 기독교구제회 한국지부 책임자로 임명받아 왔고 귀국하자마자 대한기독교 경남구제회와 복음진료소를 설립했다. 전영창은 비영리법인격인 대한기독교 경남구제회의 대표자로서 의료기관(복음진료소)을 설립한 것이다. 따라서 의료법상 비의료인인 한 상동 목사는 협력자, 조력자는 될 수 있어도 설립자는 될 수 없다. 복음병원 설립 3인설이 불가한 이유다.

 

2. 복음병원 설립일로 볼 때 3인 설립설은 불가하다.

복음진료소는 전영창이 1951. 1. 15()일 차봉덕 원장을 모시고 제3영도교회 창고에서 개원했다. 전영창은 1951. 1. 9일 미국에서 미 군용기를 타고 수영공항에 도착하여 불과 1주일 만에 피난민들과 전상자를 위한 대한기독교 경남구제회와 복음진료소를 설립하고 개원했다. 이때 한상동은 초량교회 담임목사일 뿐 병원개원에는 전혀 관여치 않았다. 장기려도 제3육군병원 외과과장으로 근무 중이었고 이런 구호병원이 설립된다는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한상동이 복음진료소에 최초로 관여한 것은 전영창이 외과의사를 찾는 과정에서였다. 산부인과 의사인 차봉덕으로서는 전란 중 전상자 등 외과환자 치료나 수술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전영창은 자신이 출석하던 초량교회 담임인 한 상동 목사를 찾아가 외과 의사를 수소문했고, 한상동 목사는 마침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함께 신앙 생활했던 장기려 박사가 제3육군병원 외과 과장으로 와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이에 전영창은 1951. 6. 21()일 한상동 목사를 모시고 복음진료소 원목인 김상도 목사와 함께 제 3육군병원 장기려 박사를 만났다. 자초지종을 들은 장기려 박사는 평소에 가난하고 병든 환자들을 치료해 주는 것이 하나님께 한 약속이었다며 흔쾌히 복음진료소 원장직을 수락했다. 그리고 6월 말 제3육군병원에 사표를 제출하고 1951. 7. 2() 복음진료소 제2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이와같이 한상동과 장기려는 전영창이 복음진료소를 설립한 6개월 후에 등장한다. 115일 설립에 전혀 관여치 않았던 한상동과 장기려가 복음병원 설립자가 될 수 없는 이유다.

고신역사관 한상동홀의 연혁에 복음진료소를 한상동목사가 설립했다고 되어있다. 또한 제 3영도교회를 제 2영도교회로 오기하고 있다. 마땅히 수정되어야할 기록들이다​​​​​​​
고신역사관 연혁에 복음진료소 설립일을 52. 6.21일로, 제 3영도교회를 제 2영도교회로 오기하고 있다. 마땅히 수정되어야 할 기록들이다.

3. 병원설립자본금으로 볼 때 3인 설립설은 불가하다.

예나 지금이나 병원은 자본금을 준비한 자가 설립자가 된다. 복음진료소는 전영창이 준비한 5천불로 개원했다. 나삼진 목사는 복음병원은 전영창 선생의 자본, 한상동 목사의 신앙, 장기려 박사의 의술이 하나가 되어설립했다고 한다. 그러나 의료기관은 신앙이나 의술만으로 설립할 수 없다. 아무리 신앙이 좋고, 의술이 있어도 자본금이 없으면 병원설립은 불가능하다. 의사도 비영리법인(의료법인)도 자본금(seed money)을 준비하는 자가 설립자가 되고 이사장이 된다. 병원설립의 절대 조건은 자본금이다.

그렇다면 전영창은 복음진료소 설립 자본금을 어떻게 준비했을까?

그가 미국 유학시 웨스턴 신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195113일 맥아더 장군이 한국에서 철수한다는 소식을 듣자 뮬더 학장을 찾아가 지금 바로 조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전영창의 고집을 꺾을 수 없음을 깨달은 뮬더는 귀국을 허락하고 졸업시험을 치르지 않더라도 졸업장을 줄 수 있도록 배려하여 1951. 1. 8일 저녁 학장실에서 뮬더 박사의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졸업장을 수여했다. 이때 게리드윗 목사가 항공권값은 물론, 전란 중의 조국을 도우려는 전영창을 위해서 미화 5,000불을 별도로 모금해 주었다.

전영창은 이 5천 불로 대한기독교 경남구제회와 복음진료소를 설립했다. 따라서 설립자본금 준비에 전혀 관여치 않은 한상동 목사나 장기려 박사는 복음병원 설립자가 될 수 없다.

 

장기려 박사도 전영창 선생이 복음병원 설립자라고 밝혔다

장기려 박사는 한 번도 자신이 복음병원 설립자라고 말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여러 번 복음병원은 전영창 선생이 설립했음을 밝혔다.

그는 복음병원 잡지 <유아와 영아의 찬미(1976.6.23.일자)>에서 복음병원의 설립자이며 총무일을 보아주셨던 전영창 선생이라고 했다.

복음병원 설립 20주년 기념식에서도 우리병원 설립자는 저 장기려가 아닙니다. 저기 계시는 조금순 여사님의 남편 전영창 선생이 설립하였습니다”<배평모, ‘거창고등학교이야기’>고 했다,

또한 그는 한국일보(1976. 7. 6)에 전영창과 같이 찍은 사진을 게재하면서 "복음병원 설립자 전영창 씨와 함께, 거창고 교장을 지낸 전 선생은 나의 이력서가 시작될 무렵 세상을 떠났다라고 쓰며 복음병원 설립자는 자신이 아니라 전영창임을 밝혔다.

그가 복음진료소에 처음 부임해 갔을 때 "이곳에는 이미 서울의전 출신의 여자 의사 차봉덕이 진료소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었다“<지강유철, ‘장기려 그 사람’,홍성사>고 함으로 자신이 초대 원장도 아님을 밝혔다.

그러므로 장기려박사 본인이 자신은 복음병원 설립자도 초대원장도 아님을 밝혔다면 더 이상 장기려나 한상동을 복음병원 설립자로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 외에도 전성은 선생(전영창 아들), 맹숙희 권사(당시 간호사), 황영갑 목사(차봉덕남편), 차진실 사모(차봉덕의 조카, 박희천 목사 부인), 이재술장로(이정건 선교사 부친), 성소균 장로(신흥교회)등 당시 함께했던 여러 증인이 전영창을 복음병원 설립자라고 밝히고 있다. (자세한 것은 고명길 블로그 참조)

좌우에 이근삼 박사 내외, 중앙에 복음병원 초대원장 차봉덕 원장과 남편 황영갑 목사
좌우에 이근삼 박사 내외, 중앙에 복음병원 초대원장 차봉덕 원장과 남편 황영갑 목사

전영창은 복음병원을 설립한 지 3년만인 1953년 가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부정 축재자라는 누명을 쓰고 축출당했다. 전영창은 자신의 억울함을 3일간의 단식으로 항변했지만, 교권에 의한 탄핵에 힘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1953년 가을 복음병원을 떠나 도미 후 거창고등학교(19564)로 부임해 갔다. 그는 불과 20여 년 만에 거창고등학교를 지방의 대표적인 사학 명문으로 발전시켜 가던 중 과로가 겹쳐 197659세의 짧은 나이로 소천했다. 지금까지 고신은 한 번도 전영창과 그 가족에게 사과도 복권(명예 회복)도 해 드리지 않았다. 복음병원 연혁에 설립자, 초대원장, 개원일의 왜곡도 70년간 그대로다.

 

복음병원 설립자, 초대 원장, 설립일은 수정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장기려 박사나 한 상동 목사는 복음병원 설립자가 아니다. 전영창만이 유일한 설립자이다. 전영창이 설립했던 '대한기독교 경남구제회'는 복음병원이 1965. 9. 6'고신총회 유지재단에 편입되기까지 15년간 존속했었다.

전영창이 복음병원 설립 시 원훈으로 내걸었던 1. 치료하는 병원 2. 전도하는 병원 3. 교육하는 병원의 꿈과 비젼은 부산 굴지의 종합병원으로, ’원목실, ’의과대학설립으로 발전했고 우리 고신의 중추 기관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복음병원 연혁에는 전영창을 설립자로 표기하지 않고 있다. 초대원장 차봉덕은 연혁에서 아예 빠졌다. 개원일도 오기하고 있다. 그 당시 병원의 재산권 문제로 전영창을 탄핵한 분들이 복음병원 연혁에서 전영창을 지우려다 보니 이같은 역사왜곡이 일어나고 말았다.

마침 서울남부노회(노회장 강영진목사)와 김해노회, 부산서부노회 등에서 복음병원 설립자, 초대원장, 개원일 수정건을 고신총회 정식 안건으로 상정했다고 한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오기된 복음병원 초기 역사를 바로잡고 선조들과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고신교단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 곧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19:14)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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