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헌옥 목사
천헌옥 목사

의욕이 앞서는 사람이 있다. 일을 저질러놓고 보는 성격의 소유자다. 저지른 다음 수습하는데 정의로운 일은 수습이 잘될 수도 있지만, 아무리 공의로운 일이라 할지라도 만만치 않을 때가 있다. 그렇게 되면 좋은 뜻으로 일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결국 의욕이 앞서는 바람에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요즘 핫이슈로 떠오른 경찰국 신설이 그중 하나다. 경찰을 통제하는 기구가 이전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었다. 법에도 없는 일을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 대통령은 민정수석실을 폐지해 버렸다. 경찰을 통제할 기구를 없애 버린 것이다. 가뜩이나 검수완박을 해버려서 모든 권력이 경찰로 넘어가 비대해진 경찰인데 통제하고 지휘할 기관이 없다면 문제는 심각하게 된다.

결국 행안부 내에 경찰국을 신설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일을 강하게 추진했다. 이는 본래의 자리에 갖다 놓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더 좋다고 생각되는 것은 대통령이 관리하면 국민이 들여다볼 수 없지만, 장관이 관리하면 국민을 대신하여 국회가 얼마든지 들여다볼 수 있고 감독할 수 있으니 그것이 오히려 여러 모양으로 합당한 일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의도와는 정반대로 흐르는 것 같아 보인다. 제 자리로 갖다 놓으려는 정당성은 사라지고 경찰을 마음대로 지휘하기 위해 경찰국을 신설하는 것으로 오해만 난무하고 있다. 잘 모르면 오해할 수밖에 없고 그 오해를 풀기 위해 설명하다가 한마디 삐걱하면 오해는 더욱 풀기 어려운 난맥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모든 일은 순리로 푸는 것이 정답이다. 대통령은 일단 민정수석실 폐지를 1~2년 정도 보류하고 운영하다가 주요한 업무인 인사검증과 치안관련 업무를 민정수석실에서 하는 것이 정당하지 못하니 국회가 기구를 만들어 달라고 했어야 했다. 국회가 안 하거나 못한다면 그때는 행안부 장관과 법무장관에게 맡겨 일을 진행하였더라면 그 누구도 오해하거나 시비를 걸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평생 칼 같은 정직을 달고 살아온 분이기에 민정수석실이 대통령실에 있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덜렁 폐지부터 해버리고 그것을 행안부와 법무부에 맡겨 버렸으니 일이 꼬인 것이다. 그런데다 행안부 장관의 쿠데타 발언은 울고 싶은 자의 뺨을 때린 격이 되었으니 더욱 어렵게 되어 버린 것이다.

아무리 민정수석실 폐지가 정당하더라도 그리 급하게 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유지하면서 하나하나 풀어나갔더라면 오해나 공격을 받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국이 혼란을 겪지도 않았을 것이다. 선한 의욕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죽을죄를 범하는 일이 아니라면 순리대로 일을 풀어가야 함이 옳다.

 

아무리 옳은 일에 의욕이 앞서더라도 덜렁 의욕대로 일을 저지르지 말고 모든 사람이 합의하는 시점에 이를 때까지 무르익혀 결과를 내놓아야만 연약한 인간을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그랬다. 타락한 직후에 바로 구원 액션을 취하신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 5천 년이 지난 다음에야 하나님의 뜻이 비로소 십자가에서 밝혀졌다.

교회의 일도 그러하다. 개 교회뿐 아니라 교단의 중요한 일들도 그렇다. 헌법개정위원회가 헌법개정안을 내고 전국 공청회를 했다. 역시 완벽할 수는 없었음이 지적되고 있다. 의욕이 앞서 덜렁 결정해 버리지 말고 더 많은 논의를 거치고 약점을 보완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을 듯 보인다. 법은 개정하면 그리 쉽게 다시 개정할 수 없다.

몇 년 동안 시행해 보고 나서야 다시 개정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개정하는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 손실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한 해 동안만이라도 더 연구하고 토론하면서 무르익도록 숙성시키는 것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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